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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는 美, 호응한 韓, 버티는 日…머나먼 한·미·일 정상회의

중앙일보

입력

중재자로 나선 미국과 이에 호응한 한국, 그리고 거리두기를 이어가며 버티는 일본.

G7 계기 한·미·일 정상회의 열리나 #'이혼 상담사' 바이든 대통령 주도 #한·미·일 공조 가로막는 한·일 관계 #"한국이 해법 제시해야" 완고한 日

한·미·일 정상회의를 둘러싼 3국의 속내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둘러싼 ‘이혼 상담사’ 역할을 자처했음에도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거두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한·미·일 3국 협력의 관점에서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결국 이제는 일본의 태도가 한·미·일 3국 협력의 층위와 밀도를 정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미·일 정상회의가 개최된다면 그 계기는 오는 11~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가 될 수 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G7 정상회의 기간에 별도의 한·미·일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중이라고 2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바이든 대통령이 새 대북정책과 관련한 협력 방침을 확인하고 북핵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정상회의 개최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핵' 열중한 사이 망가진 한·일 관계 

2017년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3국 정상 업무 오찬을 가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3국 정상 업무 오찬을 가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한·미·일 정상이 마지막으로 한 자리에 모인 건 2017년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 오찬 회의였다. 이후 4년 가까이 한·미·일 3국 정상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3국 안보 협력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는 기제로서 의미가 컸다.
하지만 2018년 북·미 간 대화 국면이 조성되고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멈추며 한·미·일 협력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도는 크게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북핵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총력을 기울이며 상대적으로 한·미·일 협력에 중요성을 두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한·일 관계는 급격하게 악화했다. 2018년 10월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2019년 7월 일본은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수출 규제 등 보복 조치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적대감을 드러낸 것 역시 이 시기다.

과거사·오염수·독도 산적한 난제 

지난 1일 일본이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처럼 표기한 것과 관련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뉴스1]

지난 1일 일본이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처럼 표기한 것과 관련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뉴스1]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일 양국을 둘러싼 악재는 계속됐다. 지난 1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 배상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지난 4월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하며 갈등이 격화했다. 최근엔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땅인 것처럼 표시,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 등이 강하게 항의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일본은 한·일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해법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 배경엔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풀기 위한 대내외적 노력을 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는 사이 일본 측의 배상 책임을 규정한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는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한 불만이 깔렸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의를 주도하고는 있지만, 이를 넘어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다리를 놓는 역할까지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수차례 일본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응답은커녕 입장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한·일 관계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바이든 행정부 중재로 한·미·일 정상회의가 개최되더라도 형식적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미 및 미·일 동맹을 억지로 하나의 울타리 안에 묶어두는 물리적 결합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워서다.
실제 지난 5월 G7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별도의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지만 ‘3국 협력 의지 재확인’이라는 선언적 메시지에 그쳤다. 이어진 한·일 외교장관 회의는 과거사 문제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을 둘러싼 양국 간 이견만 재확인한 채 성과 없이 종료됐다.
G7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의까지는 열려도 한·일 정상회담은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 측에서는 최근 들어 한·미·일 협력 복원과 한·일 관계 개선을 분리해 접근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9년 6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국가 정상들만 만나는 방법으로 한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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