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건 배달 '돈싸움' 붙인 쿠팡···이 전략 뒤엔 '美 17배 추억' [팩플]

중앙일보

입력 2021.06.02 05:00

업데이트 2021.06.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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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그래픽=정다운 인턴

그래픽=정다운 인턴

#1. 쿠팡 ‘한 번에 한 집’이 일으킨 파장 

배달 플랫폼의 경쟁력은 식당-기사-소비자 삼각형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이를 위해 플랫폼은 건당 배달료 이내에서 기사들의 시간당 배달 수입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길을 만들었다. 첫째 음식을 연달아 전달받아(pick) 순차 배달하는 ‘묶음배송’을 허용했고, 둘째, 인공지능(AI)이 기사의 동선을 계산해 콜을 주는 ‘AI 추천배차’다.

팩플레터 106호의 요약본

그런데 쿠팡이츠 ‘한집 배달’이 이걸 흔들었다. 기사가 ‘픽픽픽픽배배배배’ 4~5건 묶어 배송하던 시간에 ‘픽배’ ‘픽배’ 단건배달 2건만 한다. 배달이 빠라진 대신 기사의 수입은 줄어들테니, 시장 논리대로라면 점주-손님이 내는 건당 배달료가 올라야 한다. 쿠팡은 이걸 제 돈으로 메웠다. 건당 많게는 1만원 이상을 ‘프로모션비’로 얹어서 기사에게 배달료를 줬다. 적자를 감수하고 ‘내일 배송’에 고객을 길들였던 로켓와우 때처럼.

쿠팡의 투자자인 소프트뱅크는 미국 배달 업계 순위를 뒤집은 경험이 있다. 미 3위 배달업체였던 도어대시는 소프트뱅크의 7500억원 투자 후 공격적 마케팅으로 미국 내 1위에 올랐고, 지난해 말 도어대시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자 소프트뱅크의 지분 가치는 상장 첫날 17배로 불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학습효과가 쿠팡이츠로 이어졌다고 본다.
결국, 한국 배달 시장 ‘돈 싸움’에 업계 1위 배민도 참전했다. 배민은 이달 내에 기존 묶음배달 외에 단건배달(배민원)도 내놓을 계획.

#2. 모두의 배달

단건배달로 기사 1명이 시간당 소화하는 배달 건수가 줄었지만, 배달 물량은 증가세다. 이는 ‘부업 배달기사’의 증가로 이어졌다. 배민과 쿠팡은 기존 기사가 친구를 초대하면 돈을 주는 프로모션 경쟁을 벌였고,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든 자영업자 등이 빠르게 부업 기사로 유입됐다. 동시에, 산재보험이 없어 배달 중 사고가 나도 산재보험 적용(치료비, 휴업급여 등) 못 받는 기사들이 늘어났다.

배민과 계약한 전업기사(라이더스)와 부업기사(배민커넥트)는 모두 산재보험에 가입한다. 회사와 기사가 각각 주당 3200원 정도씩 보험료를 낸다. 쿠팡이츠와 계약한 ‘배달 파트너’는 일정 조건(쿠팡이츠에서 월 97시간 이상 일하거나 116만원 이상 소득)을 충족할 경우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부업 기사는 대개 해당하지 않는다. 배달기사 단체 라이더유니온은 “쿠팡이 무보험으로 수많은 국민을 라이더로 만들어 비용을 아낀다”고 주장한다.

쿠팡이츠도 할 말은 있다. 회사가 내건 산재가입 조건은 고용노동부가 법에 따라 정한 ‘전속성(한 업체와 주로 일하는가)’ 기준에 따른 것이다. 현행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전속성 있는 기사에 한해 산재보험을 적용한다. 전속성 없는 부업 기사는 어차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승인 안 해주니 가입해도 소용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업 기사인 배민 커넥트가 전원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고, 이들 중 배달 사고 산재 승인을 받은 사례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는 팩플에 “산재보험 적용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3. 넘치는 부업, 긴장한 생업

단건배달은 묶음배달보다 시간에 덜 쫓겨 상대적으로 사고 위험이 적은 편이다. 현재는 배달 앱 업체들이 프로모션비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쿠팡이츠-배민의 기사 모집 경쟁이 일단락돼 프로모션비가 사라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전업기사들은 늘어난 부업 기사와 일감 경쟁을 해야 한다.

지난 4월 배민은 전업/부업 기사의 운행시간 제한(배민라이더 주 60시간, 배민커넥트 주 20시간)을 풀었다. '더 오래 일하겠다'고 기사들이 요구해서다. 쿠팡이츠는 원래 시간제한이 없었다. 전업과 부업의 경계는 더 흐려졌다.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지회는 지난 4월 “단건배달 시행 후 라이더 소득이 줄고 있다”며 회사에 ‘신규 라이더 충원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박사는 “부업 기사들이 많이 유입되면 배달 기사 간 이질성이 커져 조직화가 어렵고 회사를 상대로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배민은 민주노총 배민라이더스지회를 협상대상자로 인정하고 라이더 복지 등에 대한 단체협약을 맺었는데, 앞으론 이런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4. 계산되지 않은 비용, 누군가 낸다?

늘어난 부업 배달기사에 비해 제도는 미비하니, 사회가 위험 비용을 지불하는 중이다.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이용한 부업 배달자가 늘자 관련 교통사고와 민원도 급증했다. 택시회사나 렌터카 회사는 법에 따라 차고지나 주차장 공간을 의무적으로 갖추지만, 배달업 관련 규정은 없다보니 불법 주정차가 잦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서울시 따릉이같은 공공자전거가 배달에 활용되는 것도 문제다. 적자 상태인 따릉이 사업은 서울시가 지난해에만 100억원 가량을 들여 메웠다. 배달 주문이 늘수록 이 비용은 늘고, 혜택은 소수가 입는다. 시민의 발 되라고 지원했더니, 영업의 발이 된 셈. 서울시가 2019년 배달 업체들에 ‘따릉이 배달 금지’ 공문을 보냈고 업체들도 이를 금하지만, 적발은 어렵다.

승용차로 배달 부업을 하는 이들도 안전하지 않다. 이들의 유상운송 특약(돈 받고 물건 나르다 낸 사고 보장) 가입률은 1%가 채 안 된다(2020년 금융감독원, 삼성화재 조사). 이런 차들이 배달하다 사고 내면 상대방 신체 부상에만 보험이 적용되고, 남의 차(대물)나 자기 차, 자기 신체에는 적용이 안 된다.

#5. 법은 지금

지난 1월 국회에서 통과돼 7월부터 시행되는 생활물류서비스법(생물법)은 택배업과 배달업을 다룬다. 새 법은 국토교통부에 등록한 업체만 택배사업을 하고, 시설·안전 감독도 받게 했다. 반면 배달서비스업은 인증제(원하는 업체가 인증 신청)로 남아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심상정 의원실은 배달서비스업도 국토부 등록제로 하는 생물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국토부 심사를 받아 배달서비스업체로 등록하며, 기사 안전교육과 사고 처리, 보험가입 등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 이에 대해 라이더유니온은 “라이더의 보험 같은 기본 안전장치를 갖출 수 있고, 비상식적 업체를 걸러낼 수 있다”며 찬성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배달대행사 임원은 “라이더는 이직 빈도가 매우 높은데,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배달 지사들이 등록제의 행정업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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