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기본소득은 해법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0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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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세 가지 점에서 세계, 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 수준의 지표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반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공동체가 잠시 바닥을 기록할 수는 있으나, 반 세대 동안이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최악 수준을 지속하는 것은 정녕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특정 정책과 정권을 넘어 제도 자체와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세계 최악의 불평등국가
기본소득은 불평등해소에 저해적
복지구멍 메울 ‘기본복지’가 해법
정치적 평등이 최고·궁극의 대안

첫째는 세계 최악의 자살과 저출산이다. 재앙적 수준의 이 반생명·반인간 현상에 관한 한 어떤 지표도 제시할 필요조차 없다. 둘째는 최악 수준의 갈등지표다. 집회·시위의 횟수, 제도를 통한 갈등해소 능력, 사회갈등 비용 규모의 어느 기준을 보더라도 한국사회의 갈등은 최악 수준이다. 갈등해결이라는 정치와 정부 본연의 역할 측면에서 한국은 실패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셋째는 최악 수준의 불평등이다. 벼락거지라는 표현에서 보듯 불평등 구조는 점점 악성으로 변모하고 있고 개선의 조짐도 거의 없다.

수많은 지혜들이 언명하듯 불평등은 인간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이다. 한국사회의 최악 수준의 갈등과 반(反)생명현상은 최악의 불평등과 기회상실로부터 연유한다. 한국사회 인간문제의 해결을 위한 해법 중에 최근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 기본소득 방안이 있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무차별적·정기적으로 일정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코로나19 대감염사태라는 예외상태에서의 재난지원금을 제도화하려는 구상일지라도 옳지 않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이 전제하는 무조건성과 무차별성은 기존의 불평등구조를 해소하기는커녕 지속시킨다. 기본소득이 거꾸로 평등과 복지를 악화시킬 요소가 되는 것이다. 미래세대의 기회구조를 저당잡는 선택인 것이다.

둘째 현실 재정조건에 비춘 지급규모라면 복지소외 계층에게는 실질적 소득보장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개인별로 너무 작은 규모가 된다. 반대로 만약 실질적 소득보장의 효과를 가지려면 증세를 포함한 막대한 재정부담이 필수적이다. 두 경로 모두 기본소득은 수단과 효과의 괴리가 너무 크다. 즉 실효성이 없다.

셋째 만약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마련을 위해 기존 복지예산을 이전하기라도 해야한다면 더욱 심각한 분배왜곡과 복지위축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연동형 비례제’가 한국에서는 최악의 ‘불연동형 불비례제’가 되었듯이, 복지구멍은 더 확대될 것이다.

가장 실질적인 해법은 ‘기본복지’의 강화다. 즉 빈곤층·노인·청년·실업·비정규직·자영업·취약계층을 포괄하는, 불평등이 산생한 복지의 구멍들을 섬세하게 찾아내어 촘촘히 메꾸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공급자의 관점이지 수요자의 관점이 아니다. 국가영역의 급격한 확대에 기반한, 즉 기본권리(기본권)를 넘는 기본교육(의무교육), 기본보험(건강보험), 기본유아교육(기본보육), 기본연금(노령연금)도 모두 수요자원리에서 출발한다.

둘째 생애복지체제의 구축이다. 즉 생애교육·생애임금·생애세금·생애노동시간·생애여가·생애연금을, 전체 국가차원에서는 학력과 직종과 성별과 노동형태를 넘어 모든 개인들에게 근사화(近似化)시켜 주는 것이다. 가장 바른 해법이다. 물론 나머지 자율적 성취는 개인과 시장 영역에 맡긴다. 이 길이 오늘날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의회주의와 형평국가를 결합시킨 선진 민주복지국가들의 근본 출발원리였다.

셋째 장기적으로 인간의 복지문제는 국가체제·정부형태의 변경에 달려있다. 공화국과 공동 재화(국부)가 똑같은 말에서 나왔다는 점은 뜻깊다. 기본소득의 기계적·평균적 제공 주장과는 반대로 공화적·비례적 배분이 복지인 것이다. 실제로 민주주의, 경제성장, 형평, 복지를 각각 대표하는 지표들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놀랍다. 해법은 공화적·비례적 정치에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의회책임제와 대통령책임제 국가들을 총합하여 비교할 때 각각 민주주의 지표 8.27 대 7.09, 1인당 GDP 5만468달러 대 3만3113달러, 지니계수 0.30 대 0.41, 공공사회지출 21.41% 대 13.22%로서 모든 면에서 전자가 후자를 압도한다.

한국처럼 대통령과 정치영역과 우리 진영은 자원과 권력을 독점하지만, 시장과 경제영역과 개인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체제와 나라를 만들겠다? 그런 경로를 통해 성공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복지국가는 없다. 그것은 『동물농장』이 조롱하였듯 전연 불가능한 전체주의 독재와 대중기만과 포퓰리즘일 뿐이다. 근대 이후 경로들에 대한 심층 비교에 따르면 정치적 불평등과 독점이 장기적인 경제적 자유·평등·복지로 연결된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장과 복지, 자유와 평등을 함께 갖고 싶다면 정치제도를 먼저 바꿔라. 평등과 비례의 원리 위에 운영되도록.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불평등과 부패, 특권과 불공정의 대명사인 LH사태를 보고도 국가의 기업역할을 주문한다면 한국에서 복지국가는 요원할 뿐이다. 잘못된 기본소득 논의는 기본복지·복지강화 논의로 바뀌어야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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