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읽기

주변 사람들이 다 이상해 보인다면

중앙일보

입력 2021.06.0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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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주변 사람들이 다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다면,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다. 노안이 신체적 노화의 신호라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정신적 노화의 신호다.

나이 들면 사람들이 이상해 보여
타인 상황 모르면서 확신만 증가
타인에게는 나도 이상한 존재

나이가 점점 들수록 세상은 극소수의 정상적인 사람과 대다수의 이상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게 된다. 예를 들어 이들은 대학에 딱 두 부류의 교수만 있다고 믿는다. 이상한 교수와 더 이상한 교수. 증세가 심한 사람은 세 부류의 교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한 교수, 더 이상한 교수, 그리고 정말 이상한 교수. 교수뿐이겠는가? 이들에게 회사는 이상한 상사, 더 이상한 상사, 그리고 정말 이상한 상사가 존재하는 곳이다.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구석들이 이상하게 눈에 잘 띈다. ‘솔직히 걔도 참 이상해.’ 중년을 넘긴 사람들이 친구들을 평할 때 내놓는 단골 푸념이다. 얘도 이상하고 쟤도 이상하고. 그런 식으로 한 명 한 명 평하다 보면 이상하지 않은 친구가 없다. 결국에는 친구 품평회를 하던 그들이 서로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너도 이상해.’

친척도, 회사 사람들도, 대권 후보들도 이상해 보인다. 심지어 가족도 이상해 보인다. 이런 ‘이상해 시리즈’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솔직한 평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우리 애니까 참기는 하지만 걔도 참 이상해.’

왜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이상해 보일까? 실제로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이상해지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상대를 아는 데 필요한 정보량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상대를 안다는 확신이 커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상대를 안다는 확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가 오래 교류해온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지금이나 과거나 별 차이가 없다. 정보량은 늘지 않았는데 그를 잘 안다는 확신만 무섭게 늘어났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많은 상황적인 요소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그들의 행동을 쉽게 단정 짓는다. 그런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니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들을 잘 안다는 확신에 속아서 그들의 행동을 너무 쉽게 그들의 캐릭터로 설명해버린다. 그러니 이상해 보일 수밖에.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두 번째 이유는, 상대를 옛날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이미 졸업하고 어엿한 가장이 되었음에도 교수는 여전히 그를 학생 때 모습으로 평가한다. 예전에는 부하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한 조직의 책임자가 된 사람을 여전히 부하의 모습으로 평가한다.

가장은 가장으로서, 책임자는 책임자로서 역할에 맞게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들의 달라진 행동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성장한다. 나이와 함께, 직급과 함께 그들도 성장한다. 그들을 지금의 나이와 직위에 맞게 대접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입에서 ‘저 사람 변했어. 이상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세 번째 이유는, 요새 행복하지 않거나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일 때 타인에 대한 평가는 박해진다. 스트레스가 쌓여 폭발 직전이면 나 빼고 다 이상해 보이기 마련이다. 이도 아니라면, 나이가 들면서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남을 흉볼 여유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관심은 우리의 주의를 결정한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관심의 대상에게만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에 그 외의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모두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면, 당신에게서 목표가 사라졌다는 신호다. 하고 싶은 일과 해내야 하는 일이 사라진 마음의 공간을 ‘이상한 사람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진짜 이상한 사람은 있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임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오해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그들의 눈에는 내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었을까? 나만 정상인 세상은 정말 이상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주변 사람들이 다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다면 자기 자신도 타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추가로, 자신에게 정신적 노안이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을 보는 눈이 흐려진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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