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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하게 물올랐네…초여름 골라먹는 제주의 맛 ‘자리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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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지난달 27일 제주도 모슬포항의 배위에서 어민이 갓 잡은 자리돔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달 27일 제주도 모슬포항의 배위에서 어민이 갓 잡은 자리돔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자리돔이 한참 살이 올랐는데 가격이 떨어져 걱정이야. 맛있는 자리돔을 싸게 먹을 기회지.”

1분기 어획량 지난해보다 35t 늘어 #코로나19로 수요 줄어 가격 반토막 #회는 보목, 구이는 모슬포산이 제격

지난달 27일 오후 제주 최남단인 모슬포항에서 만난 어민 나모(56·서귀포시 대정읍)씨의 말이다. 이날 어민들이 마라도와 가파도 인근 해역에서 잡아올린 자리돔은 배에서 내려지자마자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제철을 맞아 살이 오른 자리돔이 평소보다 보름 정도 이른 지난 4월 중순부터 황금어장을 형성했다. 나씨는 “인근 해역의 바다 수온은 자리돔이 가장 좋아하는 17~18도 내외여서 살이 오른 성체들이 꾸준히 모여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어장이 형성되자 모슬포항에는 자리돔을 구입하려는 관광객도 도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날도 만선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자리돔이 잡혔다. 모슬포항에서는 보통 하루 30여 척이 자리돔 잡이에 나서는데 배 한척당 하루 200㎏~500㎏을 잡는다. 특히 자리돔이 잘 잡힌다는 조금(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시점)에는 하루 1t까지 건져 올리는 배도 있다. 호남지방통계청의 ‘2021년 1분기 제주도 어업생산동향’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자리돔 어획량은 57t으로 지난해(22t)보다 159%(35t) 늘어났다.

어획량은 늘었지만 어민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소비 부진으로 가격이 반토막 나서다. 김경남 모슬포수협 경제상무는 “자리돔이 지난해보다 많이 잡히는 데다 코로나19 악재로 식당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해 가격이 떨어졌다”며 “지난해 ㎏당 2만원 내외를 받았지만, 올해는 1만원 내외로 반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모슬포항과 함께 대표적인 자리돔 주산지인 서귀포 보목항에서도 ㎏당 1만원~1만5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초여름(5~7월) 제주도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자리돔은 잡는 법이 독특하다. 제주에서 다른 생선은 ‘잡으러 간다’고 하지만, 자리돔은 ‘뜨러 간다’고 한다. 물 속 깊은 곳에 살지 않고 바닷물 표면에 서식해 코가 촘촘한 그물을 던져 바닷물에서 떠내듯 건져내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이 방식은 ‘테우’라는 제주도 전통 어선에서 그물을 이용해 자리돔을 떠내는 것에서 유래했다. 과거에는 테우를 타고 나가 국자모양의 ‘사둘’이라고 하는 그물을 이용해 자리돔을 잡았다. 지금은 모선에 딸린 작은 부속보트 두척을 이용해 바닷속에 그물을 투망하고 자리돔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모선에서 일제히 들어 올려 잡는 ‘들망’이라는 어법을 이용해 떠낸다.

회·구이·조림 등 자리돔을 즐기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인기메뉴는 ‘자리물회’다. 자리물회는 본래 제주 뱃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패스트푸드’였다. 일이 바쁘고 일손이 모자란 뱃사람들이 잡은 자리돔을 회 뜬 뒤 된장·채소를 넣고 물을 부어 밥과 함께 먹었다. 3분이면 만들 정도로 간편하지만, 체력을 보강할 수 있는 스태미너 음식이어서 힘을 쓰는 뱃사람들에게 제격인 음식이다. 지방·단백질·칼슘 등 영양가도 풍부하다.

자리돔은 좁은 제주도 안에서도 산지별로 쓰임새가 다르다. 자리물회는 서귀포시 보목동 앞바다에서 잡힌 자리돔을 최고로 친다. 물살이 약한 이 곳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길이가 10㎝ 내외로 작고 연해 뼈째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반면 구이는 모슬포 앞바다에서 잡힌 것이 맛있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 인근의 물살이 센 어장에서 잡힌 자리돔도 길이가 15㎝ 이상인 것이 많아 구이에 적합하다.

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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