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당규약에서 할아버지ㆍ아버지 흔적 지우기

중앙일보

입력 2021.06.01 19:00

북한이 올해 초 개정한 노동당 규약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이 당의 2인자 격인 ‘제1비서’ 직제를 신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2일차 회의에서 사업총화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2일차 회의에서 사업총화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월 개최한 8차 당대회에서 5년만에 당규약을 개정했는데, 서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총비서 겸)의 할아버지인 김일성ㆍ김정일 부분을 삭제했다. 기존 규약의 서문에 언급했던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조선로동당을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키시고 주체혁명을 최후승리에로 이끄시는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의 위대한 영도자이다”라는 부분 전체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 1월 당규약 개정, 김일성ㆍ김정일 표현 삭제
지난달 청년동맹도 이름 바꾼 것도 같은 맥락
집권 9년 만에 후광정치에서 홀로서기 나선 듯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듬해 집권한 김 위원장이 9년만에 홀로서기 나섰다는 평가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김일성을 흉내내거나 헌법과 당규약에 김일성ㆍ김정일을 언급하며 일종의 후광정치를 해 왔다”며 “올해 들어 ‘김정은의 북한’을 강조하고 나섰다”고 분석했다.

당 규약 서문에서 “당 중앙의 유일적령도체계 확립을 중핵으로 내세우고~”라며 김 위원장을 뜻하는 ‘당중앙’을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청년들로 구성된 노동당 외곽단체인 청년동맹의 이름을 지난달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에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꾸는 등 올해 들어 김 위원장 홀로서기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이번 당규약 개정에서 선군정치를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로 수정한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선군정치는 북한이 식량난ㆍ에너지난ㆍ외화난 등 총체적 난국으로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때 “믿을 건 군대밖에 없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언급 이후 북한 사회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애민정치를 강조하는 김 위원장이 ‘아픈 과거’를 지우고, ‘김정은표’ 정치방식을 표방하고 나선 셈이다.

최고지도자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해 온 북한이 ‘제1비서’ 제도를 도입한 건 ‘당속의 당’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던 조직지도부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당을 국가보다 우선시하는 북한에서 조직비서나 조직지도부장은 내용적으로 2인자 역할을 해 왔다”며 “하지만 최근 북한이 조직지도부의 일부 권한을 떼어내 다른 곳으로 이관하며 권한을 축소했다는 점에서 제1비서를 통해 조직지도부를 견제하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경제ㆍ국방)병진노선을 자력갱생으로, 통일과업부분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으로 수정했는데, 이는 최근 경제난과 2018년 남북 및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정세를 반영한 조치일 수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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