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한물 간 국민 여배우에 권한 '위스키의 롤스로이스’

중앙일보

입력 2021.06.01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22)

'도전'이란 단어는 도전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끓게 하지만, 도전받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단어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도전하는 이에게 전부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 위의 챔피언은 언제나 도전자보다 표정이 무겁다. 두려움을 보여주기 싫기 때문에 표정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 한 명의 여배우가 있다. 한 때 ‘최고의 여배우’, ‘국민 여배우’라는 평가를 받던 그녀.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봤지만 실제로 보니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취해있다. 앞서 다른 술집에서 꽤 술을 마시고 온 모양이다. 매니저도 없이 이렇게 다녀도 되는 걸까.

가장 앞선 자리에 있는 챔피언의 표정은 언제나 도전자보다 무겁다. '도전'은 도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끓게 하지만, 도전 받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다. [사진 pixabay]

가장 앞선 자리에 있는 챔피언의 표정은 언제나 도전자보다 무겁다. '도전'은 도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끓게 하지만, 도전 받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다. [사진 pixabay]

“술~! 술을 주세요~~~!! 아저씨, 저 알죠? 어디 가서 오늘 저 봤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시구요. 술 좀 주세요.”

“물론 알고 말고요. 한국에 손님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걸요? 실제로 보니 더 아름다우십니다.”

“제가 아름답다구요? 하하. 뭐 일반인에 비하면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요, 그거 알아요? 저도 이제 한 물 갔어요. 작품 의뢰도 잘 안들어오고, 저도 작품에 출연할 용기가 사라져버렸어요.”

“아니, 왜요? 지금이라도 당장 영화에 출연하시면 관객이 엄청날 걸요? 저도 손님이 나오는 영화를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저요, 내년이면 마흔이에요. 저도 늙었어요. 요즘 저보다 예쁘고 어린 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피부도 뽀얗고, 얼굴도 엄청 작고, 운동 열심히 해서 몸까지 예쁘다구요. 저 같은 퇴물은 설 자리가 없어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하긴, 최근에 그녀에 대한 뜬소문이 돌긴 했다. 주름이 많아져 예전같은 청순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없어 전전긍긍한다든지, 젊어지려고 태반주사를 맞으러 다닌다든지, 성형했는데 잘못됐다든지….

한 때 ‘최고의 여배우’, ‘국민 여배우’라 평가 받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최근에 그녀에 대한 뜬소문이 돌긴 했다. [사진 pixabay]

한 때 ‘최고의 여배우’, ‘국민 여배우’라 평가 받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최근에 그녀에 대한 뜬소문이 돌긴 했다. [사진 pixabay]

“위스키는 많이 접해보셨나요?”

“네, 그럼요. 자기 관리한다는 핑계로 밖에선 술을 안마시고 집에서 혼술을 많이 했거든요. 집에서 혼자 마시기엔 위스키만한 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것 저것 많이 마셨어요. 해외 촬영 나갔다 오면 꼭 사와서 마시고…꽤 비싼 것도 많이 마셔봤어요.”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맥캘란을 제일 좋아해요. 맛도 좋지만, 브랜드 이미지가 좋잖아요? ‘싱글몰트계의 롤스 로이스’. 잘나갈 땐 딱 저한테 맞는 위스키라고 생각했거든요.”

백바에서 위스키를 한 병 꺼낸다. 글렌 캐런 잔에 한 잔을 따르고, 병을 그녀가 잘 볼 수 있게 잔과 함께 내놓는다.

더 체스 맥캘란 1995, 20년. [사진 김대영]

더 체스 맥캘란 1995, 20년. [사진 김대영]

“맥캘란입니다. 1995년 증류했고, 20년의 숙성을 거쳐 작년에 병입한 보틀입니다.”

“1995년이요, 제가 처음 데뷔한 해네요. 요즘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길거리 캐스팅이었어요. 광고를 하나 찍었는데 그게 대박이 나서…. 연기는 하나도 할 줄 몰랐는데 이를 악물고 배웠어요. 그랬더니 조금씩 인정을 해주더라구요. 물론 다 옛날 이야기지만요. 그런데 라벨이 좀 독특하네요? 이런 맥캘란 라벨은 본 적이 없는데.”

“이건 맥캘란 정식제품이 아닙니다. 일본 주류판매회사에서 보틀링한 제품이죠. 체스 시리즈라는 건데, 체스의 말을 이미지로 꾸준히 제품을 내왔습니다. 이건 체스 시리즈의 마지막 제품으로 여기 그려진 말은 킹 화이트입니다.”

“맥캘란에 킹이라, 참 어울리네요. 그럼 한 번 마셔볼까요?”

그녀가 천천히 글렌캐런 잔에 입을 댄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그녀가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녀의 이 모습에는 연기가 담겨있을까?

“이거 맥캘란 맞아요? 쉐리 느낌이 전혀 없는데요? 맛은 참 좋은데 맥캘란이라고 하기에는….”

“이건 분명 맥캘란입니다. 다만, 숙성에 쓰인 캐스크가 쉐리 캐스크가 아니죠. 버번 혹스헤드에서 20년 간 숙성시킨 맥캘란입니다.”

“맥캘란이 버번 캐스크를요? 저는 쉐리 캐스크를 사용한 맥캘란만 마셔봤는데…맥캘란 하면 쉐리 아닌가요?”

“맥캘란은 쉐리 캐스크 숙성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그건 어쩌면 옛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요즘엔 쉐리 캐스크 외의 캐스크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렌드로낙, 글렌알라키, 벤리악, 탐듀 등 쉐리 캐스크에서 숙성한 개성 있는 싱글몰트가 많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최근 위스키를 시작한 사람들 사이에선 왜 맥캘란을 그렇게 칭송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죠. 다른 쉐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더 좋다는 사람들도 많고요. 과거에는 맥캘란이 왕좌를 굳건히 지켰지만, 최근에는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죠.”

“하하, 맥캘란도 저랑 같은 처지네요.”

그녀가 천천히 글렌 캐런 잔에 입을 댄다. 왠지 위스키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아까와 다르게 느껴진다.

“아, 그런데 이 위스키는 정말 맛이 좋아요. 쉐리는 아니지만, 맥캘란의 기품있는 맛은 여전한데요.”

더 체스 맥캘란 1973, 43년. [사진 김대영]

더 체스 맥캘란 1973, 43년. [사진 김대영]

“킹 화이트 출시 1년 전에 킹 블랙이 출시됐습니다. 1973년에 증류하고 쉐리 캐스크에서 43년 간 숙성시킨 맥캘란이었죠. 어쩌면 이 킹 화이트는 그런 정통적인 맥캘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도전을 받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왕도 일찍이는 도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도전을 받은 왕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도전자가 될 것인지, 왕위에서 물러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지. 그런 의미에서 이 위스키는 맥캘란의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왕도 일찍이 도전자 중에 한 명이었다?”

“왕은 새로운 도전에 가슴이 떨리지 않을까요? 이 라벨 속 왕을 다시 한번 보세요. 얼마나 위풍당당합니까?”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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