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애먼 설탕이 졸지에 발암물질 된 사연

중앙일보

입력 2021.06.01 08:00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 살기(103)

건강정보에 대한 가짜뉴스가 빈번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일까, 창작 기사를 자주 본다. 그 극명한 예 하나, 설탕이 졸지에 발암물질이 된 사연이다. 내가 가끔 글을 써온 과학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고 인용했다.

얼마 전 국내 모 대학이 암의 발생기전을 밝힌 논문이 꽤 유명한 학술지에 실렸다. 논문 제목이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 FOXO3에 아세틸글루코사민(GlnNA)이 붙으면 암세포의 비정상적 성장을 유도한다(원제 ; O-GlnNAcylation of the tumor suppressor FOXO3 triggers aberrant cancer cell growth)’였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유수 일간지가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을 뽑았다. ‘설탕에 빠진 당신 암에 걸릴 수 있다’, ‘멀쩡하던 위, 간세포 이 음식 만나면 암으로 변한다’, ‘단것 많이 먹으면 암 생길 수 있다’…. 얼마나 왜곡되었는가 살펴본다.

암의 발생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하나의 실험으로 어떤 성분을 발암물질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사진 pixabay]

암의 발생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하나의 실험으로 어떤 성분을 발암물질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사진 pixabay]

우선 용어부터. ‘FOXO3’는 암세포의 사멸 또는 억제를 유도하는 몸속 단백질이고 ‘GlnNA’는 건강식품의 대명사로 한때를 풍미했던 글루코사민의 일종이다. 이 논문의 요지는 “‘GlnNA’이 ‘FOXO3’에 결합하면 암의 억제기능을 약화해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인데, 여기서 발암물질이라는 ‘GlnNA’가 설탕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잘못 읽은 데서 왜곡이 시작됐다.

그런데 실제 이 논문에는 설탕이라는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당을 암시하는 단어가 설탕으로 둔갑했는지가 의문이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유추했을 게다. ‘논문에서 GlnNA가 암을 촉발하는 물질이라 했다 ⟶ 이 물질은 다름 아닌 포도당에서 나왔다 → 포도당은 설탕의 반쪽이다 → 결과로 설탕을 많이 먹으면 그 포도당이 GlnNA로 될 것이다 → 고로 설탕이 암을 유발한다’는 식으로 발전한 것. 연상논법치고는 기발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사의 억측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 쳐도 우리가 섭취하는 설탕이 GlnNA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 GlnNA가 모두 FOXO3에 달라붙는 것도 아니며, 달라붙었다고 해서 꼭 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 물질, GlnNA은 다름 아닌 우리 몸속에 흔하디흔한 연골의 핵심물질이다.

이 기사에 만약 설탕이 아니라 포도당이 지목되었다면 그나마 이해는 간다. 왜냐하면 발암물질이라는 GlnNA는 포도당으로부터 만들어지니까. 그렇게 보면 설탕보다는 오히려 포도당을 지목했어야 더 맞지 않나 싶다. 하지만 포도당은 우리가 가장 많이 섭취하는 탄수화물이고 특히 뇌의 주 에너지원이라 그렇게 얘기하기는 어려웠을 게다. 왜, 말이 되지 않고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

논문에서 말하는 GlnNA도 실제 발암물질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 물질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400여개의 발암물질 목록에도 들어있지 않다. 흔하디흔한 물질로 우리의 연골부위의 핵심성분이며, 그 좋다던 글루코사민이라는 건강식품 바로 그 성분이기 때문이다.

암의 발생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하나의 실험으로 어떤 성분을 발암물질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이 논문의 결론도 유보적인 가설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많은 후속연구가 따르고 이를 입증해야 GlnNA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학설로 통하게 된다.

최근 들어 설탕이 몹쓸 식품으로 비만과 당뇨, 성인병의 근원으로 지목되면서 동네북이 됐다. 인간 스스로 과하게 먹어 탈을 내놓고 원인을 물질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사진 pixabay]

최근 들어 설탕이 몹쓸 식품으로 비만과 당뇨, 성인병의 근원으로 지목되면서 동네북이 됐다. 인간 스스로 과하게 먹어 탈을 내놓고 원인을 물질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사진 pixabay]

과학이 이렇게 발달했어도 발암의 메커니즘은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 기사로 인해 포도당도 아닌 애먼 설탕이 발암물질이 됐다는 것,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만약 설탕이 기사대로 발암물질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벌써 식품목록에서 퇴출당하지 않았을까.

최근에 와서 왠지 설탕이 몹쓸 식품으로 비만과 당뇨, 성인병의 근원으로 지목되면서 동네북이 됐다. 얼마 전에는 설탕이 들어간 음식에 ‘설탕세’를 도입하자는 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을 정도로 공공의 적이 됐다. 한땐 설탕이 귀한 음식, 가장 좋은 에너지원으로 대접받았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됐을까. 너무 흔하고 맛좋고 싸져서? 인간 스스로 과하게 먹어 탈을 내놓고 원인을 물질 탓으로 돌리는 건 뭔가.

이런 오보가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결국은 설탕이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발암물질이 됐다는 것, 논문 하나를 잘못 읽어 엉뚱한 기사가 나오고 이 기사를 읽은 독자가 사실로 믿는다는 것, 미칠 파장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그냥 지나쳐 버린다는 것,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이제 대중도 과학지식으로 무장해야 하나? 왜곡정보에 속지 않기 위해서. 최근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짜 건강정보, 과연 이래도 되나 싶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