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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중심으로 교과과정 확 바꿔야 지방대 위기서 탈출”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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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수업 줄이고, 학생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라”

“위기의 지방대학이 사는 길은 대대적인 교육과정 개편과 국경을 뛰어넘는 ‘모빌리티’(Mobility·사회적 유동성) 혁명 뿐입니다.”

김동원 전북대 총장 “교육과정 개편, 글로벌 혁신만이 살길”

김동원 전북대학교 총장이 최근 직면한 지방대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중앙일보 측에 제시한 해법이다. 그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고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는 교육혁신을 통해 지방의 우수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수십년간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지역균형발전을 외쳤으면서도 수도권 집중현상이 되레 심각해지는 현상을 꼬집은 말이다.

김 총장은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학생’인데도 대학마다 채워야 할 학점만 많지 생각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며 “학과와 교수 중심으로 편성된 기존 교과과정을 학생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마다 유사한 수업이 편중된 교과과정과 암기를 잘해야 높은 성적을 받는 현재의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꾸는 게 골자다. ‘공대의 경영학’이라고 불리는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인 그는 거점 국립대간 학사교류 등을 주도하며 지방대 생존법 전문가로 주목받고 있다.

김동원 전북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북대 총장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동원 전북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북대 총장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위기 지방대 생존법 핵심은 교과과정 개편” 

김 총장은 2019년 취임 후 학생들의 졸업이수학점부터 확 줄였다. 기존 140학점이던 전북대 졸업이수학점을 130학점으로 낮췄다. 대학원의 경우 올해부터 24학점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면 이수학점이 모두 인정돼 12학점만 더 이수하면 된다. 학부생들의 공부시간은 줄이되 관심 가는 수업은 더 듣고 대학원생도 논문과 연구에 집중하라는 취지다.

김 총장은 “요즘 시대에 학생이 혁신적인 사고를 가지려면 공부를 덜 해야 한다”며 “암기가 아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세상에 도전하라는 뜻에서 교과과정부터 손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과과정 개편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 학생 중심의 교과과정 개편을 놓고 “교수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반발이 쏟아졌다. 김 총장은 “교과과정 혁신만큼은 교수 등 학내 구성원의 대타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며 “대학은 교육기관이라는 본질상 교육과정을 개편하지 않고는 혁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졸업학점을 줄이자 눈에 띄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동안 전공과목에만 매달렸던 학생들이 타 학과의 전공 수업을 듣는 일이 늘어났다. 김 총장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이수학점이 줄어든 만큼 다양한 학문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은 확 넓어진다”며 “여기에 공동학위제까지 더해져 2개 이상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면 우수 인재의 수도권 쏠림 현상도 자연스레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전경. 사진 전북대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전경. 사진 전북대

“거점국립대 학사교류…대학 간 장점 공유”

김 총장이 꺼내 든 전국 10개 국가거점국립대 간 ‘학사 교류’도 교육과정을 손질하는 하나의 큰 축이다. 거점국립대 학사교류는 부산에 사는 전북대 학생이 부산대에서 수업을 듣고 졸업 학점을 채울 수 있다. 반대로 전북에 사는 부산대 학생이 전북대에서 수업을 들어도 이수학점으로 인정받는다. 전국 각지의 국립대 학생들이 타 대학의 강점을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윈-윈(Win-Win)’ 모델이라는 게 김 총장의 설명이다. 거점국립대 학사교류는 코로나19 사태로 학생들의 지역 간 이동을 줄이는 ‘언택트 교육’을 예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김 총장은 “대학교끼리 수업만 바꿔 듣는 단순한 발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아가서는 거점국립대의 학생 선발이나 교과 편성 등 학사업무까지 공동 운영해 경계를 허무는 일”이라며 “매년 대학별로 100명 이상 교류를 목표로 ▶학생 선발 기준 ▶학점 부여 방식 ▶지원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총장이 학사교류 논의를 꺼낼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국립대는 지방의 경우라도 대학교별로 특성화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등의 여론이 주류를 이뤄서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대의 신입생 미달 사태 등이 발생하면서 학사교류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이렇게 가다간 지방대가 모두 죽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급속도로 확산한 결과다.

김동원 전북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북대 총장실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동원 전북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북대 총장실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학생들의 ‘모빌리티’가 미래 경쟁력”

전국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들의 지역인재 할당 채용도 학사교류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김 총장의 생각이다. 그는 “전북대를 졸업한 학생은 부산 출신이더라도 전북 혁신도시 공공기관에 지원할 때만 지역인재 채용에 해당된다”며 “이것을 전국 지방대로 폭을 넓혀야 지방대들의 살길이 열린다”고 했다.

김 총장이 학사교류 혁신에 관심을 가진 것은 8년 전이라고 한다. 전북대 공학교육혁신거점센터장 재임 당시 이탈리아에서 열린 학회 때 목격한 현지 학생들의 ‘모빌리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존의 대학교끼리의 학생 교환(Exchange) 개념을 넘어 국경과 지역간 경계가 허물어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김 총장은 “이미 유럽 대학 실험실에서는 펀드를 받아 여러 나라 학생들이 교류하면서 공부하고 있다”며 “이들의 가장 큰 화두는 수년 뒤 학생들의 모빌리티였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앞으로 국제적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지표에 모빌리티가 반영될 것으로 본다. 그는 “해외 실험실을 보면 굳이 유럽 학생이 아니더라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학생들이 섞여서 수개월 동안 협업해 결과물을 낸다”며 “지방대도 해외 사례처럼 국제적으로 연결되는 연구 교류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김동원 전북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북대 총장실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동원 전북대 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북대 총장실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밖에서 자란 인재가 지역발전 동력”

김 총장은 전북 출신 인재들의 창의적인 도전을 강조하면서도 “지역에 돌아와 지역을 먹여 살릴 동력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중 전북대가 해야 할 역할이 ‘지역 발전 플랫폼’이다. 전북대가 기차역이나 터미널처럼 플랫폼으로 역할 해 창의적인 인재와 기업이 모이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대는 2012년부터 지역 우수영재 이공계 고교생을 조기 발굴해 전 세계 우수 교육시설을 경험하고 연구과제에도 참여할 수 있는 ‘오디세우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김 총장은 이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대학이 가진 인적자원, 연구 인프라 등을 결합해 지역발전을 이끌 동력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인재가 나가고 돌아오는 과정에 플랫폼으로서 전북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전북대, 인구·자원 유출서도 혁신 성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정문. 사진 전북대학교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정문. 사진 전북대학교

김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와 인구·자원의 수도권 유출 속에서도 전북대 곳곳에서 다양한 혁신의 결과물이 서서히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립대학교 최고 수준인 524억원의 국가시설 예산을 확보한 게 대표적이다.

전북대는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 지원사업인 BK21(Brain Korea 21) 4단계 사업에도 선정돼 향후 7년간 586억원의 국비를 받는다. 대학원 혁신사업에 배정된 142억원까지 포함하면 728억원을 우수 연구인력 양성에 쏟을 수 있는 투자금을 확보했다. 최근 2년간 외부로부터 지원받은 연구비 규모도 총 3236개 과제 2969억원 달한다.

김 총장은 “최종 목표는 우수 엔지니어 인재의 절반 이상을 배출하는 독일 내 주요 9개 공과대학 협의체(TU9) 같은 대학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며 “주요 거점대학이 플랫폼 대학 역할 수행하고 주변 대학 및 연구기관과 상생 협력 전략을 내놓을 때 지방대의 위기를 돌파할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만난 사람=최경호 내셔널팀장
정리=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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