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IT기업 직원의 죽음, 갑질문화 고치는 계기 돼야

중앙일보

입력 2021.06.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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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뉴스1]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뉴스1]

지난주 네이버 본사에 근무하던 40대 직원이 업무상 괴로움을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출발하려던 비행기를 되돌린 ‘땅콩 회항’ 등 잇따른 갑질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관련 내용을 담아 근로기준법을 고쳤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린 이 법이 시행된 지 2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네이버 노조는 해당 직원이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창의와 소통이 장점일 것 같은 국내 대표 IT기업조차 이런 지경이니, ‘직장갑질 119’의 1000명 직장인 조사에서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32.5%나 나오는 게 당연하다.

네이버 직원, 괴로움 호소하며 극단 선택
가해자뿐 아니라 조직에 큰 책임 있어

경찰이 수사 중이니 가해자가 있다면 어떤 피해를 줬는지 등을 밝혀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해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지나쳐선 안 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네이버의 경우 과거 문제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한 인물을 재기용하면서 내부에서 제기된 불만과 건의를 윗선에서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회사 내부에 성희롱·괴롭힘 등을 제보할 수 있는 익명 채널이 있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내부 경고음을 무시한 경영 방식을 꼽는다.

네이버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리스크 관리위원회’에 맡겨 이번 사건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원회 차원에서 수습하고 넘어가겠다는 생각이어선 곤란하다. 당장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인지하지 못한, 또는 알고도 묵인하는 조직의 행태가 여전히 가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진상 규명 수준이 아닌, 조직과 관리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직장 내 갑질 피해가 줄지 않았던 데는 개정 법안의 내용이 미비했던 것도 한 이유다. 신고자 보호 규정이 없어 보복 피해를 우려한 직원들이 회사나 기관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오는 10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괴롭힘 확인 후 노동자의 요청을 받고도 근무 장소 변경 등을 해 주지 않거나,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는 경우 등에 과태료를 물리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법안은 예방이 아니라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후 수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일선에선 노동청 감독관의 태도에 따라 사건 처리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한다. 노동부나 노동위원회가 지금보다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목소리를 국회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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