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군부정권 못믿어” 미얀마 현금인출 러시…돗자리·식량까지 들고 줄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가 극심한 정국 혼란에 빠진 가운데 경제 상황도 악화일로다. 특히 현금 부족 사태가 빚어지며 은행 앞에는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서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1일 보도했다.

암시장서 달러·금 환전, 집안에 숨겨 #병사 월급 밀려, 일부 군인 약탈 가담

FT에 따르면 미얀마인들은 은행에서 돈을 찾기 위해 플라스틱 간이 의자와 돗자리·우산까지 챙겨와 줄을 서고 있다. 날이 더워지면서 물과 비상식량, 휴대용 선풍기도 은행 줄서기용 필수품으로 등장했다. 교도통신은 “현금 한 번 뽑으려면 최소 몇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예금자들이 현금 인출에 나선 건 불안한 정국 탓이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사는 작가 겸 의료 봉사자 니키(19)는 “군부 정권이 우리에게 신뢰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며 “우리는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최대 은행인 KBZ 계좌에서 하루 20만 짯(약 16만원)의 인출 한도를 지키면서 매일 현금을 뽑고 있다. 쿠데타 전만 해도 현금 인출 한도는 100만 짯(약 80만원)이었다.

금융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이들은 암시장에서 달러로 환전하거나 집 안에 숨겨둔다고 한다. FT는 “짯을 금이나 달러로 교환하고 있어 금과 달러 모두 쿠데타 이후 기록적으로 가격이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반면엔 미얀마 통화인 짯은 쿠데타 이후 달러 대비 20% 떨어졌다.

예금 인출 러시에 미얀마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충분한 현금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문제는 악화했다. FT는 “미얀마에서 지폐 생산을 위해 원자재와 부품 등을 공급한 독일 기업이 지난 3월 말 영업을 중단했다”면서 “이 때문에 자금 공급이 타격을 입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미얀마 언론에 따르면 현금이 부족해진 미얀마군 당국이 병사들에게 제때 임금을 주지 못해 일부 병사가 약탈에 가담하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는 은행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군부의 경제 운용 능력에 대한 국민 신뢰가 부족해 실물 현금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수입에 의존하는 의약품과 휘발유 등 연료 가격이 올랐다. 마쓰우라 히로마사 미즈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쿠데타 이후 물류에 차질이 빚어지며 미얀마의 상품 가격이 전체적으로 10~15% 이상 상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