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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중독에 13살연하와 결혼한 엄마, 사랑했지만 닮긴싫었다

중앙일보

입력

넷플릭스 '홀스턴'의 라이자 미넬리. 배우 크리스타 로드리게즈가 열연했다. AP=연합뉴스

넷플릭스 '홀스턴'의 라이자 미넬리. 배우 크리스타 로드리게즈가 열연했다. AP=연합뉴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엄마라면?

미국 배우 겸 가수 라이자 미넬리(75)에겐 가정 아닌 현실이다. 미넬리의 엄마가 1939년 작품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열연했던 주디 갈랜드(1922~1969)이어서다.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를 부르던 갈래머리 소녀 이미지로 박제된 갈랜드의 삶은 불행했다. 세 자녀 중 한 명인 미넬리는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평생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 미넬리를 최근 영국 텔레그래프부터 미국 패션지 보그(Vogue)까지 앞다퉈 다루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도 지난 14일 공개한 미국 시리즈 ‘홀스턴’ 때문이다.

넷플릭스 '홀스턴'의 이완 맥그리거와 크리스타 로드리게즈. 각각 홀스턴과 라이자 미넬리르 연기했다. 실사 거의 100%에 가깝다는 호평. 넷플릭스 제공, AP=연합뉴스

넷플릭스 '홀스턴'의 이완 맥그리거와 크리스타 로드리게즈. 각각 홀스턴과 라이자 미넬리르 연기했다. 실사 거의 100%에 가깝다는 호평. 넷플릭스 제공, AP=연합뉴스

‘홀스턴’은 20세기 말 미국 패션계의 아이콘이었던 패션 디자이너이자 성소수자인 로이 홀스턴(1932~1990)의 이야기를 그린다. 홀스턴을 열연한 배우 이완 맥그리거만큼이나 존재감이 강렬한 캐릭터가 라이자 미넬리다. 홀스턴과 미넬리는 실제로 절친했다. 미넬리가 홀스턴의 초기 시절 영감을 주는 뮤즈(muse)였기 때문. ‘홀스턴’ 첫 등장 신에서 미넬리는 이런 요지의 대사를 읊는다.

 “엄마가 아무리 유명했다고 해도 내가 엄마 노래만 부를 순 없잖아. 나는 나라고.”  

‘오즈의 마법사' 중 도로시로 열연 중인 주디 갈랜드. [중앙포토]

‘오즈의 마법사' 중 도로시로 열연 중인 주디 갈랜드. [중앙포토]

미넬리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섰다. 엄마인 갈랜드가 도로시 역할로 스타덤에는 올랐지만 출연료 계약의 불합리 등으로 생활고에 계속 시달렸기 때문이다. 2019년 작인 ‘주디’가 그 여정을 잘 그려냈다. 어린 시절부터 몸무게 관련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조금이라도 살을 더 빼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등 건강도 좋지 않았다. 이혼도 네 번했다. 라이자 미넬리는 이탈리아계 감독이자 제작자였던 빈첸테 미넬리와의 사이에서 낳았고, 마지막 남편과 겨우 안정을 찾는가 했지만 곧 건강이 악화해 숨을 거뒀다. 마지막 남편 미키 딘스는 갈랜드보다 13살 연하였고 뮤지션이자 사업가였다.

미넬리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엄마를 극복해야 했다. 갈랜드의 말년인 60년대 초, 영국 런던에서 함께 무대에 오른 영상도 남아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미넬리가 엄마와 함께 무대에 올라 손을 잡고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함께 해(Wherever we go, we go together)”라는 가사의 노래를 미소 지으며 부른다. 갈랜드는 무대에서 퇴장하는 딸에게 키스를 보낸다.

엄마의 비극적 죽음 이후 미넬리는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당시 미국 뉴욕 등의 유행이었던 고급 레스토랑 겸 콘서트장에도 자주 섰다. 그에게서 갈랜드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을 위해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Z가 붙은 이름, 라이자(Liza With a Z)’라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이름을 ‘리사’라고 자꾸 틀리게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만든 노래로, “내 이름은 라이자라고, 이탈리아계 아빠가 붙여준 이름이라니까”라는 가사를 붙였다.

2011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열창 중인 라이자 미넬리. EPA=연합뉴스

2011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열창 중인 라이자 미넬리. EPA=연합뉴스

패션지 보그는 최근 ‘홀스턴 디자이너와 미넬리의 우정에 대해’라는 제하 기사에서 “미넬리를 보자마자 홀스턴은 원단을 가져오더니 가위로 슥슥 잘라 바로 그에게 입혔다”고 전했다. 보그는 미넬리가 “우리는 보는 순간 바로 친해졌고 홀스턴은 내 패션 소울메이트가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홀스턴은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미넬리에게 “왜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소녀 패션을 하고 있지?”라며 그에게 어른스러운 여성미를 선사한다.

넷플릭스 '홀스턴'의 일부. AP=연합뉴스

넷플릭스 '홀스턴'의 일부. AP=연합뉴스

미넬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주디 갈랜드의 딸’이 아니라 라이자 미넬리라는 브랜드를 당당히 키워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카바레’로 7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타냈고, 이후에도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고 앨범을 냈다. 70대에 접어들어서도 영화 ‘섹스 앤 더 시티2’에 출연해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스’를, 숏팬츠와 검은 스타킹을 신은 채 춤과 함께 리메이크하는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

결혼에선 엄마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미넬리는 갈랜드처럼 꼭 네 번 이혼했다. 임신한 적이 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출산은 하지 못했다.

그의 7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은 이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카바레’ 영화를 찍은 시간은 제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와 관련한 모든 이들, 특히, 함께한 예술 스탭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으로 저는 정말 행복해졌어요.”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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