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뽑는데 몇시간" 비상식량 챙겨 줄섰다, 미얀마 대혼돈

중앙일보

입력 2021.05.31 11:22

업데이트 2021.05.31 11:30

지난 2월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가 극심한 정국 혼란에 빠진 가운데 현지 경제 상황도 악화일로다.

군인들도 월급 미뤄져…일부는 약탈 가담

특히 현금 부족 사태가 빚어지며 은행 앞에는 꼭두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서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가 31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미얀마인들은 은행에서 돈을 찾기 위해 플라스틱 간이의자와 몸을 기댈 매트, 우산까지 챙겨와 줄을 서고 있다. 날이 더워지면서 물과 비상식량, 휴대용 선풍기 등도 '은행 줄서기' 필수품으로 등장했다. 교도통신은 "현금 한 번 뽑으려면 최소 몇 시간씩은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예금자들이 이처럼 너도나도 현금 인출에 나선 건 불안정한 정국 탓이다. 양곤에 사는 작가 겸 의료 봉사자인 니키(19)는 "군부 정권이 우리에게 신뢰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최대 은행인 KBZ의 가족 계좌에서 하루 20만짯(약 16만원)의 인출 한도를 지키면서 매일같이 현금을 뽑고 있다.

쿠데타 전에는 인출 한도가 100만짯(약 80만원)이었다.

지난 4월 12일 양곤의 한 은행 앞에 돈을 뽑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 [AFP=연합뉴스]

지난 4월 12일 양곤의 한 은행 앞에 돈을 뽑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 [AFP=연합뉴스]

금융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계좌에서 가까스로 돈을 인출한 이들은 암시장에서 달러로 환전하거나 집 안에 숨겨둔다고 한다. FT는 "짯을 금이나 달러로 교환하고 있어서 금과 달러 모두 쿠데타 이후 기록적으로 가격이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통화인 짯은 달러 대비 가치가 20% 급락했다.

4월 12일 미얀마 양곤에서 은행 영업 전부터 길게 줄을 서서 현금 인출을 기다리는 사람들[AFP=연합뉴스]

4월 12일 미얀마 양곤에서 은행 영업 전부터 길게 줄을 서서 현금 인출을 기다리는 사람들[AFP=연합뉴스]

이같은 '인출 러시'에 미얀마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충분한 현금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문제는 악화했다. FT는 "미얀마에서 지폐 생산을 위해 원자재와 부품 등을 공급한 독일 기업이 지난 3월 말 영업을 중단했다"면서 "이 때문에 자금 공급이 타격을 입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지난 5월 13일 양곤에서 현금 인출을 위해 기다리는 이들. 양산을 쓴 이들이 많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13일 양곤에서 현금 인출을 위해 기다리는 이들. 양산을 쓴 이들이 많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현금이 부족해 직원 급여를 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교도통신에 전했다. 미얀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금이 부족해진 미얀마군 당국이 병사들에게 제때 임금을 주지 못해 일부 병사들이 약탈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한다.

5월 13일 은행 현금지급기 앞에 줄 선 미얀마인들 [로이터=연합뉴스]

5월 13일 은행 현금지급기 앞에 줄 선 미얀마인들 [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 군부는 은행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FT는 군부의 경제 운용 능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해 실물 현금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5월 11일 양곤에 위치한 CB뱅크 앞에서 사람들이 현금 인출을 위해 기다리는 모습 [AP=연합뉴스]

5월 11일 양곤에 위치한 CB뱅크 앞에서 사람들이 현금 인출을 위해 기다리는 모습 [AP=연합뉴스]

여기에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수입에 의존하는 의약품뿐 아니라 휘발유와 다른 연료 가격도 올랐다. 마쓰우라 히로마사 미즈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쿠데타 이후 물류에 차질이 빚어지며 미얀마의 상품 가격이 전체적으로 10~15% 이상 상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교도통신에 "미얀마 군부가 중앙은행에 자금 공급을 늘리라고 지시할 수도 있지만, 과거 미얀마에서 인플레이션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전례가 있다"면서 "그래서 군부가 자금 공급을 늘리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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