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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이준석에게 계파만 묻는 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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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30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자와 지도부가 연단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우여 선거관리위원장, 주호영·나경원·조경태·홍문표·이준석 후보, 김기현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연합뉴스]

30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자와 지도부가 연단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우여 선거관리위원장, 주호영·나경원·조경태·홍문표·이준석 후보, 김기현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연합뉴스]

2020년 총선 공천 무렵에 유승민·이혜훈 전 의원 사이 오간 문자가 떠올랐다. 유 전 의원이 김형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이혜훈은 컷오프, 지상욱·민현주는 수도권 경선, 하태경은 경선…. 이런 결과가 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고 하자 이 전 의원이 “지금은 1분 차이로 명운이 갈릴 수도 있다 보니 무도하게 구는 것 용서해 주세요”라고 답하는 내용이었다. 유 전 의원은 당시 미래통합당으로의 합당 직후 불출마 선언과 함께 두문불출했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 의원은 서울 동대문을로 갔고, 자신이 3선 했던 서울 서초갑엔 윤희숙 의원이 공천됐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나 실상은 미묘 #"이젠 갑이 이 전 최고위원" 주장 #세대교체 넘어 정치 달라질 수도

6·11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두고 ‘유승민계’라고 해서 든 생각이다. 전통적으로 계파 작동 원리의 요체는 정치적, 특히 공천 영향력에 있다. 이 전 의원이 SOS 치고 유 전 의원이 구명(救命)에 나선 배경이리라.

그렇더라도 ‘유승민계’는 좀 애매한 데가 있다. 저간 사정에 밝은 당료에게 “유승민계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 역시 “있다는 게 틀린 얘기도, 맞는 얘기도 아니다”고 했다. ‘맞는 얘기가 아니다’란 건 ‘계파’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친이·친박·친문과 같은 점도(粘度)는 아니란 의미다. 유 전 의원과 가깝다고 알려진 한 정치권 인사는 “다들 유 전 의원을 좋아하지만 누가 말을 듣나”라고 했다. 각자 자율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틀린 얘기도 아니다’란 건 이들끼리는 수시로 만나 논의한다는 뜻이다. 탄핵 이후 역정을 같이해 온, 일종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like-minded group)’이어서다. 바른정당계로, 이 중에서도 김무성계를 제외한 이들이다. 김무성계와 달리 자체 대선후보를 내려 했고 결국 유 전 의원이 완주했다. 김무성계와 갈라선 이후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한때 바른미래당을 함께하기도 했다. 이들을 거칠게 표현하면 김무성·안철수와는 거리감 있고, 이념적으론 보수이되 기존 노선으론 안 된다는 쪽이라고 하겠다.

이 전 최고위원에게 계파 꼬리표를 붙이나 실상은 복잡미묘하다는 뜻이다. 이 전 최고위원과 가장 논의를 많이 한다는 하태경 의원의 말도 그랬다.

-출마 과정에서 상의했다고 들었다.
“사실 나도 당 대표를 옵션 중에 하나로 고민했는데 나에게 ‘나오지 말고 대선에 나가라’고 하더라. 말의 포인트는 대선에 나가라는 것보다는 당 대표 나오지 말라는 데 있었다(웃음). 잘됐다. (이 전 최고위원이) 1등이 되어서 이 현상이 생긴 건데 (내가 출마했다면) 표가 나뉠 뻔했다.”

-유승민계 차원의 논의는.
“젊은 층 잡는 노력은 거의 나와 이 전 최고위원이 했다.”

-유 전 의원의 발언권이 있었나.
“적극 반대 안 했지만 수용도 안 했다.”

정치권의 또 다른 인사는 더 나아가 “이젠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이제 갑은 이 전 최고위원”이라고까지 말했다. 하기야 이 전 최고위원은 자신을 발탁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발탁은) 고마운 거고 탄핵에 대한 후회 역시 딱히 없다”고 했다.

덜 부각된 사실 중엔 이 전 최고위원이 사실상 캠프도 꾸리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당료는 “정말 없나 알아봤더니 진짜로 없더라. 주변엔 의견을 묻긴 해도 직접 다 한다”고 했다. 35세의 당협위원장(순천-광양-곡성-구례갑)인 천하람 변호사도 “이 전 최고위원의 개인기”라고 했다. 주요 정당 대표 경선이 이렇게 치러진 적은 없다.

기존 정치 문법으로 보면 이 전 최고위원은 확실히 ‘이단아’다. 한 세대를 건너뛴다는 그 이상이다. 36세의 그가 당선된다면 그 자체로 변화지만, 그가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낼 변화 또한 어디에 이를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에게 묻는 질문이 유승민계 여부에 집중되는 건 정략적 단견일 뿐 아니라 상상력 부족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