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1년 6개월, 집이 변하고 있다. ‘집콕’ 생활 장기화로 외부에서 하던 활동이 하나둘 집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이제 집은 재택근무를 위한 사무실은 물론이고 카페·와인바·피트니스센터·영화관·갤러리·PC방·호텔 등 자유자재로 변신중이다. 여러 기능이 한데 모인 ‘레이어드 홈(layered home)’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다.
리빙·가구업계는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28~3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는 연일 긴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많은 방문객이 몰렸다. 집값, 역세권, 아파트 브랜드 등 집의 외부적인 요소에만 관심을 갖던 사람들이 이제 내부 공간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는 업계 분석을 뒷받침하는 현상이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는 “올해는 ‘공간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는 콘셉트로 준비했다”며 “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이란 한정된 공간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전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사물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일상의 행복”
관람객의 발길을 가장 먼저 잡는 곳은 수입타일 전문업체 윤현상재가 준비한 ‘공예가 있는 공간’이다. 예술과 생활 디자인이 공존하는 전시로, 정원, 차(茶), 술, 뜰, 여백 등을 주제로 각종 공예품을 선보였다. 벽면에는 “건축적 위요감(圍繞感)이 있는 전시를 제시한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위요감은 벽이나 나무 등에 둘러싸일 때 생기는 아늑한 느낌을 말한다. 윤현상재 관계자는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다른 사람, 또는 사물과 소통하는 방법을 통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는 법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관에서 만난 대학원생 박예슬(28·서대문구)씨는 “다기를 사용해 직접 차를 내려 마시는 행위, 투박한 유리잔에 와인을 따라는 경험 등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힐링이 아닐까 싶다”며 “TV, 컴퓨터 등 전기·전자 제품이 아니라 나무·흙·돌 등 자연의 요소로 집을 채웠을 때 진정한 휴식의 기능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유럽 가구와 조명을 수입하는 덴스크의 김효진 대표는 벽과 가구 모두 민트색으로 가득 채운 16㎡(5평) 남짓한 공간으로 ‘레이어드 홈’의 예시를 보여줬다. 언뜻 보면 거실 또는 다이닝룸 같은 이 공간은 휴식뿐 아니라 근무, 식사 등을 위한 다양한 역할을 한다. 김 대표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여러 가지 모습과 기능이 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무엇보다 나의 공간 안에서 진정한 내면의 힐링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집으로 들어온 갤러리·LP바·PC방·모닥불
올해는 유독 갤러리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집을 화랑처럼 꾸미고자 미술품을 구매하는 젊은 세대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근현대 미술품과 디자인 가구, 아트토이 등 일상 속으로 스며든 리빙 아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매 모델을 구축해 기존 미술품과 생활 디자인 사이의 미세한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고 말했다.
눈 뿐 아니라 귀를 즐겁게 하는 가구도 있다. 옛 전축판을 들을 수 있는 LP(Long-Playing record)바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로브라운(RawBrown)의 턴테이블과 LP 수납장이다.
집합금지 명령으로 오랫동안 PC방을 방문하지 못하는 게이머를 위한 ‘홈 PC방’도 등장했다.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담아 장시간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데스커(DESKER)의 게임용 책상이다.
캠핑장에서나 즐기던 ‘불멍(모닥불 바라보며 넋 놓기)’도 집 안에서 가능해졌다. 일본 벽난로 브랜드 에코스마트파이어의 실내 벽난로다. 옥수수, 사탕수수 등 식물성 원료로부터 얻어지는 바이오에탄올을 연료로 활용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1』 공동저자인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과 교수는 “집을 이상적으로 만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랑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특성이 레이어드 홈의 프리미엄화를 한층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집의 역할을 입체화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