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스타트업의 사업 방향 수정, 자칫 하청업체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30 08:00

[더,오래] 김진상의 반짝이는 스타트업(99)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창업가의 모습은 위대한 비전과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무장하여 어떤 난관도 돌파하고 처음 마음먹은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 일 수 있다. 위대한 비전 부분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처음 마음먹은 사업을 성공시키는 모습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처음 마음먹은 사업으로부터 피눈물 나는 실패를 겪으며 방향을 바꿔 처음과는 다른 사업을 하면서 이룬 성공인 경우도 적지 않다.

새로운 제품과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은 너무 크다는 것을 인지해 방향 수정이 수시로 필요하다는 것을 창업가는 잘 알고 있으며, 이같은 방향 수정을 ‘피봇(Pivot)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변덕스럽게 수시로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말해 피봇은 기업이 최초로 설정한 전략적 가설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사업상 진전이 없을 때 하는 것이다.

피봇함으로써 사업 방향 수정의 효율성과 속도를 현격히 향상하는 방법은 에릭 리스가 쓴 『린스타트업』을 통해 많은 스타트업에게  알려졌다. 피봇은 감각에 의존해서 수정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소의 기능만 갖춘 제품(린스타트업에서는 이를 ‘최소유효제품’ 이라 칭함)으로 시장 반응을 검증하고 강화하며 끊임없이 제품 및 사업의 방향을 수정하는 경험적 데이터 방법론이다.

피봇의 본질적 의미를 연인 사이의 이별로 잘 표현한 그림.

피봇의 본질적 의미를 연인 사이의 이별로 잘 표현한 그림.

피봇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한 시기는 다음 현상과 관련이 있다. 먼저 잠재 고객 유입이 충분하지 않을 때다. 즉, 광고 및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에만 신규 고객이 유입되고 기존 고객의 자발적 입소문과 후기를 통해서는 신규고객의 유입이 지속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낮은 구매 전환율도 피봇 논의가 필요하다. 매장 또는 앱 방문은 늘고 있으나 막상 실질 구매 및 사용으로의 전환이 낮은 때를 의미한다. 고객이 높은 비율로 이탈할 때도 해당한다. 기존 고객의 제품 재구매 및 재사용이 떨어지거나 회원 탈퇴가 증가하는 경우다. 저조한 교차  판매 실적도 피봇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이 최초로 설정한 전략적 가설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사업상 진전이 없을 때 실시하는 것을 피봇(Pivot)한다고 말한다. [사진 pixabay]

기업이 최초로 설정한 전략적 가설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사업상 진전이 없을 때 실시하는 것을 피봇(Pivot)한다고 말한다. [사진 pixabay]

피봇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날처럼 새로운 시도로 새롭게 시장을 정의하고자 하는 창업가가 많은 시절이 있었나 싶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환경에 익숙해지고 사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또 모든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고 최대한 포용할 수 있도록 설정해야 한다. 피봇의 전 과정을 통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처음에는 피봇에 반대하던 직원이 나중에 던지는 의견이 최고의 피봇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투명한 포용력이 피봇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견딜 수 있는 응집력을 선물로 가져다줄 수 있다.

결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시키려는 마음이 앞서 광고홍보에 열을 올려서도 안된다. 광고 홍보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제품도 좋게 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광고홍보 역량이 뛰어난 기획사나 내부 인력이 투입되면 형편없는 제품도 초기 시장 반응을 뜨겁게 만들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제품과 사업 그 자체에 집중해야지 일시적 유행 만들기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회사의 관점에서 피봇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의 여러 제한적 자원과 특정 선호 때문에 피봇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철저하게 고객의 관점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이 피봇의 시작이자 중심이어야 한다. 피봇 실시 이전의 고객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전향적 자세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봇 이전의 고객은 우리 제품의 어떤 점이 피봇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알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피봇을 달성한 이후에는 훌륭한 영업홍보 채널이 되어 줄 가능성도 높다.

피봇은 양적 이슈가 아니라 질적 이슈다. 스타트업의 생산성은 많은 기능, 많은 제품 버전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스타트업의 생산성은 우리의 노력이 가치와 성장을 창출하고 있는가로 판단된다. 피봇을 통해 이와 같은 스타트업 생산성의 향상을 추구해야 한다.

피봇은 마법의 열쇠가 아니라 회사가 최초에 설정한 전략적 가설이 맞지 않을 때 실시하는 중대한 선택이다. [사진 pixabay]

피봇은 마법의 열쇠가 아니라 회사가 최초에 설정한 전략적 가설이 맞지 않을 때 실시하는 중대한 선택이다. [사진 pixabay]

피봇은 이전 제품 또는 사업 방향을 통해 학습한 고객·기술·시장환경 관련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지렛대로 삼아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의 데이터로 부정적 특징을 보이는 경우 피봇을 실시해야지, 일부 주변 인물·블로그·유명인의 평가에 좌지우지돼 결정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빠르고 기민한 피봇은 강력한 경쟁도구임과 동시에, 잘못 사용되면 일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봇은 마법의 열쇠가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이 피봇은 회사가 최초에 설정한 전략적 가설이 맞지 않을 때 실시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따라서 최초 가설에 온 힘과 열정을 쏟은 스타트업 구성원에게 피봇은 퇴사 또는 이직과 맞먹는 좌절감과 이질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피봇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스타트업조차 기존 사업과 제품에 참여했던 구성원이 새로운 피봇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초기 사업 가설이 모두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초기부터 함께 한 동료에 대한 지나친 소속감과 충성에 매몰돼 피봇을 가장한 무리한 사업 변경을 강행하는 바람에 자발적 가치 창출은 절대 불가능한 단순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최초 설정한 전략적 가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무리하게 피봇하느니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존버는 죽은 나무를 붙잡고 살아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은 나무는 태워 버리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무를 끊임없이 다시 심고 키우는 것을 말한다.

앰플러스파트너스(주) 대표이사·인하대/경희대 겸임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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