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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쌀집’서도 우르르…인재 2100명 빨아들인 ‘수원갈빗집’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5.30 05:00

업데이트 2021.05.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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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뉴스1]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뉴스1]

“이천쌀집과 설비업체에서 상당히 왔다고 하네요.”

키워드: 삼성전자 경력사원 채용
1분기에만 2100명 순증 ‘인재 블랙홀’
순혈주의 벗어나 ‘용광로 문화’ 정착
보다 유연한 조직문화 만드는게 숙제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임원이 사내 주요 간부들에게 전한 말이다. 지난 3월 공고한 경력사원 채용이 마무리 중인데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협력업체 출신 합격자가 많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천쌀집’은 반도체 업계에서 SK하이닉스를 부르는 은어(隱語)다. SK하이닉스의 본사가 유명 쌀 산지인 경기도 이천에 있다 보니 이렇게 호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수원갈빗집’으로 불린다. 수원 명물로 왕갈비가 꼽힌다는 사실에 착안한 표현인 듯하다. 아무튼 최근 이천쌀집에서 수원갈빗집으로 상당수 인력이 이동했다는 얘기다.

요새 삼성전자, 특히 삼성전자 DS 부문은 ‘인재 블랙홀’로 불린다. 반도체 개발은 물론 설비·환경·소프트웨어·기획·지원 등 거의 모든 사업부서에서 신입·경력사원을 빨아들이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대외비’를 이유로 정확한 채용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달에만 수백 명이 선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하이닉스 내부에선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올 초부터 이달 25일까지 기술사무직 퇴직 발령자가 301명”이라며 “2019년 1~9월(307명), 지난해 1~9월(313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라고 주장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이에 대해 “예년보다 퇴직자 수가 조금 많은 건 사실이나 유의하다고 볼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인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인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삼성전자 DS 부문 인력은 6만1374명이었다. 지난해 말 5만9270명에서 2104명 늘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해 평균 3300여 명(분기당 820여 명)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최근 3개월 증가세가 그 3배쯤 되는 것이다.〈도표 참조〉 익명을 원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으로 채용 인원이 더 늘어날 듯하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가 대규모로 경력사원을 선발하는 것은 2019년 4월부터다. 당시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2010년 발광다이오드(LED)·바이오·의료기기 등 신수종 사업을 발표하고 난 뒤 경력 공채를 크게 늘린 적이 있다.

이쯤에서 삼성전자에 숙제가 생긴다. 다양한 출신의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용광로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고, 노조와 상생협력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장희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에서) 과거의 순혈주의는 상당 부분 극복됐다고 본다”며 “농사지을 때 씨앗을 뿌려 키우는 것보다 모종을 옮겨 심는 게 생산성이 좋듯 경력 채용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앞으론 보다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간접 메시지도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엔지니어의 성과는 연구 환경과 설비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배경엔 삼성의 안정적 인프라 지원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결국 투자를 통해 인재를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가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MZ세대(밀레니얼 Z세대)가 부상하면서 조직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과제도 생겼다. 이미 삼성전자는 성과급 산정과 임금 협상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소통방식을 익히고 조직 운영을 투명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5월 6일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5월 6일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마침 지난 28일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백순환 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삼성 계열사 인사팀장 20여 명 앞에서 강연을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노사 간 교섭이 결렬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높은 때였다. 두 사람의 주문은 간결했다.

“이럴 때일수록 노사 양측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공동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회사가 먼저 변해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에 앞서 ‘변화’를 선언했다.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 발표를 통해 그는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준수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이상재 산업2팀장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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