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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없어도, 직장인이어도···직장에 돈 바치는 희한한 나라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5.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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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의 촉 : 북한 노동 실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소개한 산업현장의 선전포스터. '동무는 오늘 전투계획을 수행하였는가?'라며 과업달성을 다그치는 문구가 선명하다. 근로시간을 비롯한 근로조건이나 산업안전은 뒷전이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소개한 산업현장의 선전포스터. '동무는 오늘 전투계획을 수행하였는가?'라며 과업달성을 다그치는 문구가 선명하다. 근로시간을 비롯한 근로조건이나 산업안전은 뒷전이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한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 북한의 인권 문제가 적시됐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에서 광범위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토대는 강제 노동이라는 견해가 많다. 인권 유린의 최전선이 아이러니하게도 신성한 노동이란 얘기다.

북한에는 실업이 없다. 완전고용이다. 취업 걱정은 당연히 없다. 이것만 없는 게 아니다. 근로자의 권리도 없다.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다.

도대체 법체계가 어떻길래, 어떤 식으로 산업 현장을 꾸리길래 근로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없을까.

북한 헌법 제70조는 근로를 '공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와 최저 근로조건을 보장하고 있다. 북한 노동법 제5조는 '사회주의하에서 모든 근로자는 노동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희망과 재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며 국가로부터 안정된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보장받는다는 세부 규칙도 있다. 한데 왜 직업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일까.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평양조차장객화차대. 근로자들 뒤로 '당 결정은 우리 생명'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안전모 이외의 별다른 안전도구를 갖추지 않은 근로자들이 무거운 바퀴 등을 맨손과 맨몸에 의지해 수리, 정비하고 있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평양조차장객화차대. 근로자들 뒤로 '당 결정은 우리 생명'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안전모 이외의 별다른 안전도구를 갖추지 않은 근로자들이 무거운 바퀴 등을 맨손과 맨몸에 의지해 수리, 정비하고 있다. 뉴스1

북한 헌법과 노동법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북한 헌법은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관리(제32~34조)를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노동력을 집단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다. 북한 노동법도 국가만이 노동 조직의 권한을 가진다는 집단주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실업의 영원한 소멸(북한 노동법 제5조)을 주장한다. 노동력의 강제 동원을 법으로 못 박아 놓은 것이다.

북한 노동법의 목표는 단 하나다. 근로자의 사상 혁명을 강화하고, 공산주의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 수시로 사상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이런 규정과 목표에 따른 일상이다. 하다못해 아동과 중·고교생도 모내기나 도로 정비 등에 노력 동원이란 이름으로 강제노동을 시킨다.

노동당 외곽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의 제8차 대회 개최 장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대회에 '직맹은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고조기를 앞장에서 열어나가는 전위부대가 되자'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내 사상 무장과 투쟁을 당부했다. 뉴스1

노동당 외곽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의 제8차 대회 개최 장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대회에 '직맹은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고조기를 앞장에서 열어나가는 전위부대가 되자'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내 사상 무장과 투쟁을 당부했다. 뉴스1

국가가 노동 조직 권한을 가지기에 노조가 있을 리 없다. 흔히 북한의 노동단체로 알려진 조선직업총동맹(직총), 조선농업근로자연맹(농근맹),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은 국가가 관리하는 노동 조직으로 노동당의 외곽 단체일 뿐이다. 근로자의 권리 보호가 아니라 노동력을 동원,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법 규정과 관리체계에 따라 근로자는 국가에 의해 강제로 직장에 배치된다. 따라서 근로자를 채용하기 위한 근로 계약이란 개념이 없다. '배치'가 곧 '채용'이다. 북한 헌법에 규정된 '공민의 권리'를 국가가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모양새다.

국가가 무조건 직장을 배치하고 일을 시키니 실업이 있을 리 없고, 직장에 명단이 안 올라간 사람이 없다. 직장에 명단이 없으면 노동 교화형에 처한다. 수용소에 갇혀 징역을 살면서 강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올해 2월 3일 모든 당 조직들과 일꾼들은 당 대회 결정을 철저히 관철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평양식료품포장재공장에서 당 대회 결정 관철에 앞장서자며 사상 무장을 하는 근로자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올해 2월 3일 모든 당 조직들과 일꾼들은 당 대회 결정을 철저히 관철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평양식료품포장재공장에서 당 대회 결정 관철에 앞장서자며 사상 무장을 하는 근로자들. 뉴스1

출근하지 않거나 태만하면 어떻게 될까. 1978년에 제정된 노동규율규정에는 출·퇴근 규율, 작업 교대 규율, 근로시간 이용 규율, 노동력 수급에 관한 질서, 이동 질서 등 근로자의 업무 태도와 노동력 동원 방식을 세세하게 적시해놨다. 이걸 어겨도 노동 교화형이다.

한데 예외 없는 법은 없다든가. 직장에 명단은 올라 있는데 출근하지도, 일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8·3 노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업소에 돈을 주고 직장 명단을 유지한다. 그래놓고 밀수나 시장 활동을 통해 돈을 번다. 기업소는 이들이 낸 뒷돈으로 국가에 낼 세금을 충당하거나 원자재를 사고, 간부들의 배도 불린다.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8·3 노동자가 직장에 내는 돈은 중국 돈 700위안(약 12만3000원)이라고 한다.

'8·3 노동자'는 1984년 8월 3일 시작된 '8·3 인민소비품 창조운동'에서 따왔다. 북한이 소비재 부족을 타개하려 가내 작업반 등에서 기업의 부산물이나 폐기물, 자재를 활용해 소비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락한 조치다. 철저한 국가 통제 하의 배급제 등 경제체제에서 예외적으로 개인이 물품을 생산해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8·3'은 자력갱생, 즉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8·3 노동자'는 노동력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관리 체제에서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근로자인 셈이다.

북한 두만강변 밀수 현장. 중앙포토

북한 두만강변 밀수 현장. 중앙포토

그렇다면 근로자에게 임금은 제대로 줄까. 북한에는 기본적으로 임금이란 개념이 없다. '노동의 양과 질을 기준으로 근로자와 그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생활비를 분배'한다. (헌법 제53·70조, 노동법 제37~45조) 배급제다. 추가 급여라는 명목으로 상금이나 장려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한데 이 생활비 배급이 고난의 행군 이후 뚝 끊겼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가 한 달에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평균 4000원, 미화로 0.5달러에 불과하다. 북한 시장에선 쌀 1㎏이 4000원에 팔린다. 한 달 벌어 쌀 1㎏ 사면 끝이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벌면 다행이다. 오히려 직장에 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탈북자들을 인터뷰해 북한의 노동실태를 올해 2월 폭로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는 월급이 없다. 공짜로 일한다. 직장 다니는 사람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자기 돈을 직장에 바쳐야 한다. 어느 직장이든 돈을 안 내라고 하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직장을 안 다녀도(8·3 노동자), 직장에 다녀도(일반 근로자) 직장에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희한한 노동시장을 가진 곳이 북한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평안남도에서 많은 청년들이 탄광과 농촌을 비롯한 사회주의 건설의 주요전구로 연일 탄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원지 파견을 결정한 청년들이 격려를 받고 있는 모습.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평안남도에서 많은 청년들이 탄광과 농촌을 비롯한 사회주의 건설의 주요전구로 연일 탄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원지 파견을 결정한 청년들이 격려를 받고 있는 모습. 뉴스1

혹여 원지(遠地) 파견이라도 가면 그야말로 나락이다. 북한 노동신문 등은 수시로 "청년들이 자원 노력동원에 나섰다"고 선전한다. 이른바 돌격대다. 실상은 모두 강제동원이다. 문제는 이렇게 먼 곳으로 노동력 동원 명단에 오르면 자기가 먹을 것을 가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기에 십상이다.

한 탈북자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이렇게 증언했다. "다른 지역으로 돌격대를 나간다고 하면 자기 집에서 쌀을 매고 가야 먹고 살 수 있다. 일하러 가면서 자기 식량을 챙겨가는 것이다. 보통 석 달씩 간다. 그래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다. 잡아다가 때리고 다시 보낸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아이 엄마 가리지 않고 돌격대에 편입시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당 결정을 목숨으로' 등 선전문구가 걸린 평안북도 안주시 소재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내부. 컨베이어벨트 등 작업장 주변에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당 결정을 목숨으로' 등 선전문구가 걸린 평안북도 안주시 소재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내부. 컨베이어벨트 등 작업장 주변에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 뉴스1

북한 노동법상 하루 소정 근로시간은 8시간, 주6일(48시간) 근무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근로시간 대신 노동정량제를 주문하기 때문이다. 목표나 과업 달성을 다그친다. 달성하지 못하면 질책이 쏟아지고, 심하면 노동교화소행이다.

실제로 북한 산업현장에는 '동무는 오늘 과업을 달성했는가' '전투계획을 수행하였는가'라는 문구와 함께 눈을 부라리며 손가락질을 하는 선전 포스터가 즐비하다. 건설현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의 건설현장에는 '안전모 등 개인 보호구 착용, 안전 난간 설치, 작업 발판 설치'와 같은 안전수칙이 곳곳에 있지만, 북한에선 이런 포스터를 찾을 수 없다. 대신 '과업 달성' '당이 결정하면 한다'와 같은 독촉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목숨으로 당이 결정한 목표를 이루자'처럼 일하다 목숨을 잃으면 영웅 대접하는 듯한 선전물이 빼곡하다.

북한 수해 복구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선식 선전선동 장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안내문이나 포스터는 찾을 수 없다. 대신 '목숨으로' 목표를 달성할 것을 다그치는 선전문구가 걸려있다. 뉴스1

북한 수해 복구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선식 선전선동 장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안내문이나 포스터는 찾을 수 없다. 대신 '목숨으로' 목표를 달성할 것을 다그치는 선전문구가 걸려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군의 건설현장을 시찰했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2018년 7월 10일 보도했다. 건설현장을 둘러보는 김정은과 간부들 중 누구도 안전모 등의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군의 건설현장을 시찰했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2018년 7월 10일 보도했다. 건설현장을 둘러보는 김정은과 간부들 중 누구도 안전모 등의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뉴스1

그래서인지 건설현장에 가림막이나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된 걸 보기 힘들다. 산업현장에서도 위험한 작업 도구에 사고 방지용 덮개를 하는 것과 같은 안전장치를 구비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대신 맨손으로 모든 작업을 수행하는 근로자만 목격된다.

호주의 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은 ‘북한 현대판 노예제의 이해’ 보고서를 냈다. 공동작성자인 렘코 브뢰커 네덜란드 라이델 대학 교수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월급만 못 받는다면 착취당하거나 돈을 떼인 거라고 볼 수 있지만, 직장을 그만둘 수 없고, 직장에서 업무를 거부할 수 없고, 나라를 떠날 수 없고, 주거지를 떠날 수 없다"며 "이는 다름 아닌 ‘현대판 노예’"라고 설명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7년 발간한 '세계 현대판 노예 추산(Global Estimates of Modern Slavery)' 보고서에는 "4000만 명이 현대판 노예제의 피해자"라고 적시돼 있다. 이 중 2500만 명은 강제노동 피해자, 1500만 명은 강제결혼 피해자라고 돼 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 아동들은 학교에서 직업 교육의 수준을 훨씬 초과하고 육체적으로 높은 강도의 노동에 강제 동원되고 있다"고 북한을 아동 강제노동의 대표적 국가로 거론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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