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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스파이의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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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는 그 제목을 보면 장르적 성격이 강한 듯하고, 설정을 보면 2차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쉽게 파악되는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엔 이야기의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는,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1940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무역업에 종사하는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는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으로 지칭하는 자유주의자다.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남편 유사쿠를 사랑하고 그에게 의지한다. 그런데 만주에 다녀온 후 유사쿠는 변했다. 일본군이 자행하던 생체 실험을 알게 된 그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이에 사토코는 남편이 스파이가 된다면 자신은 기꺼이 ‘스파이의 아내’가 되겠다고 한다.

스파이의 아내

스파이의 아내

여기서 남편은 아내를 속이고, 혹은 아내를 위하여, 자신 혼자 미국으로 떠난다. 남편의 계략을 깨달은 순간, 사토코는 미친 사람처럼 “아주 훌륭해!”라고 외치다 혼절해 쓰러진다. 그런데 여기, 이상한 장면이 하나 끼어든다. 배를 타고 가는 유사쿠가 모자를 흔드는 신이다. 특히 모자를 흔드는 행동은 마치 아내의 액션에 대한 리액션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배신감을 느낀 사토코의 상상일 수도 있다. 과연 남편은 누구에게 모자를 흔드는 것일까? 이 장면은 누구의 시점일까? 그렇게 유사쿠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사토코는 다신 남편을 만나지 못한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