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담은 ‘16억짜리 열매’…70대 조각가는 고향에 건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29 12:00

고정수 작가는 조각상 하나를 만드는 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사진 고 작가 제공

고정수 작가는 조각상 하나를 만드는 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사진 고 작가 제공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70대 노인은 망치질을 멈추고 반문했다. 그는 모든 작품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자식’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최근 ‘자식’을 인천으로 떠나보냈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조각상 40여점(16억원 상당)을 인천시에 기증한 것이다. 평소 그의 작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구매자가 몰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는 오래전 떠난 고향에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는 베테랑 조각가 고정수(75)씨 얘기다.

꿈 잊지 못해 돌아온 소년

신흥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 고정수 작가와 어머니. 사진 고 작가 제공

신흥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 고정수 작가와 어머니. 사진 고 작가 제공

어릴 적 고씨의 보물 1호는 물감과 팔레트였다.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준 선물이다. 아버지는 자동차를 고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부친을 동경하던 아들은 자연스레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악재를 만났다. 뜻밖의 화재로 자동차 정비소가 무너지며 가세가 기울었다. 부모는 하나뿐인 아들이 취업해 가계에 도움이 되길 바랐다. 미대를 가고 싶던 고씨는 눈물을 머금고 공업고교로 향했다.

꿈을 접었지만, 미련이 남았다. 책상 한쪽 미술용품에 자꾸 눈이 갔다. 2년 만에 미술의 길로 유턴했다. 아들의 굳은 결심에 부모도 마음을 돌렸다. 당시 고3을 앞뒀던 그는 일반계 고교로 옮기면서 다시 2학년이 됐다. “1년이라도 더 미술반에서 공부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렇게 꿈을 찾아 되돌아온 그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미술반을 지도하는 송덕빈 교사였다. 송 교사는 스케치북을 쥔 고씨의 손에 망치와 정을 건넸다. 고씨가 그림보다 조각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아본 것이다.

스승의 기대에 제자는 결과로 답했다.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한 고씨는 2학년 때 국전(미술대전)에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상을 휩쓸었다. 28세에 조선대 조소과 최연소 교수가 돼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1988년 14년 만에 돌연 학교를 그만뒀다. 인생 2막을 전업 작가로 보내고 싶어서다. 주위의 만류에도 학교를 나온 그는 경기도에 작업실을 차렸다.

모성에서 출발한 ‘여체’와 ‘곰’

고정수 작가의 작품은 주로 여체와 곰이 소재다. 사진 고 작가 제공

고정수 작가의 작품은 주로 여체와 곰이 소재다. 사진 고 작가 제공

50년간 고씨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은 800여개에 이른다.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대부분이 여체와 곰 형태다. 그는 이 모든 건 어머니로부터 비롯됐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더해 교통사고로 불편한 몸에도 아들을 끝까지 뒷바라지했다고 한다. 이런 헌신에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던 그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조각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모성을 바탕으로 너그러움으로 포용하는 여인상’. 그가 여체를 소재로 조각상을 만든 이유였다.

여체를 조각으로 빚던 그에게 이번엔 곰이 눈에 들어왔다. “단군신화에서 볼 수 있듯 곰은 한없이 인내하고 포용하는 어머니와 닮았어요. 밝으면서도 부드러운 점이 여체 조각과 비슷하고요” 그렇게 여체와 곰은 고씨 산(産) 조각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자란 땅에 열매 남기고 싶어”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고 작가의 작품 '솔바람 소리 들으며'. 사진 고정수 작가 제공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고 작가의 작품 '솔바람 소리 들으며'. 사진 고정수 작가 제공

최근 고씨는 작업실을 정리하고 있다. 조각가로서의 긴 여정을 ‘마음의 뿌리’ 인천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힘들게 빚은 작품을 흔쾌히 인천시에 기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 싹을 틔울 수 있게 해준 토양에 열매를 남기겠다는 게 그의 뜻이다. “큰아들이 세계를 누비는 사진작가인데  더 바랄 게 뭐 있겠어요. 이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보려고요” 47년 만에 귀향을 꿈꾸는 노(老) 조각가의 마지막 소망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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