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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도 명품 M&A ‘쑤욱’…한국 보면 이유안다

중앙일보

입력

명품 브랜드는 역사와 전통,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값비싼 가치를 강조하며 고유한 시장을 형성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과 소비자 성향의 변화로 ‘변해야 사는’ 일대 기로에 섰습니다. ‘명품까톡’에선 글로벌 력셔리 업계의 뉴스와 그 이면을 까서 볼 때 보이는 의미를 짚어봅니다.    

강세장을 상징하는 황소상. 사진 언스플래쉬

강세장을 상징하는 황소상. 사진 언스플래쉬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명품 시장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업 실적과 별개로 명품 인수합병(M&A) 시장은 의외로 활기를 띠었습니다. 전 세계 투자금이 명품 산업 분야로 대거 들어왔다는 얘깁니다.

명품시장 자금 유입 활발 

최근 글로벌 회계·컨설팅 그룹 딜로이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명품 시장에선 총 277건의 M&A가 이뤄져 2019년(271건)보다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들을 헐값에 사들인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전체 거래의 약 70%는 EV/EBITDA를 11배 이상 주고 이뤄졌습니다.

패션&럭셔리 M&A 지역별 건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패션&럭셔리 M&A 지역별 건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여기서 잠깐, EV/EBITDA는 기업을 인수할 때 매매가격 산정에 많이 활용되는 지표입니다. EV는 기업가치(Enterprise Value)를 줄인 말입니다. EBITDA는 ‘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인데 순서대로 이자, 세금, 유형자산 감가상각비, 무형자산 감가상각비를 제외하기 전 영업이익을 뜻합니다.

[명품까톡](5)

쉽게 말해 직장인의 세전 연봉처럼, 세금이고 로열티고 이것저것 차감하기 전에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시가총액이 1000억원인 회사가 매년 순수하게 100억원을 번다면 EV/EBITDA는 10이 되죠.

‘슈프림’등 몸값 대박  

결국 투자자는 EV/EBITDA를 보고 이 기업을 사들였을 때 몇 년이 지나면 투자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EV/EBITDA가 5인 회사는 투자원금을 회수하는 데 5년이면 된다는 거고, 20인 회사는 원금 회수에 20년이 걸린다는 거죠.

루이비통과 협업한 슈프림. 중앙포토

루이비통과 협업한 슈프림. 중앙포토

업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자본시장에서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적용하는 EV/EBITDA는 10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투자자들이 명품 기업 인수에 11이상을 적용했단 건 원금을 회수하는 데 11년이 걸려도 좋으니 사겠단 거고 그만큼 해당 기업의 미래 전망이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실제 지난해 명품 분야에선 EV/EBITDA가 18~20인 거래도 나왔습니다. 패션 그룹 VF코프가 27억1700만 달러(약 3조400억원)에 미국의 패션 브랜드 ‘슈프림(Supreme)’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죠.

자본 시장의 ‘큰 손’들이 패션·명품기업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당연하지만 성장 가능성 때문입니다. 특히 의류·액세서리·화장품·향수·시계·주얼리 같은 ‘개인 명품’이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계속 성장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2020년 패션&럭셔리 인수합병(M&A) 건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0년 패션&럭셔리 인수합병(M&A) 건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말 그럴까요? 한국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미 샤넬 백이나 롤렉스 시계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선다는 건 널리 알려졌죠.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인 로로피아나의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 최고경영자는 앞으로 1~2년 사이 명품·패션 업계가 빠른 회복세를 보일 거라며 “중국과 한국, 중동 지역이 명품 판매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명품 소비의 중심이 기존 유럽과 미국에서 중국과 한국 등으로 바뀔 거란 얘깁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고객들이 샤넬 매장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고객들이 샤넬 매장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서 이익 급증한 ‘에·루·샤’  

이런 전망은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루이비통코리아 매출은 1조467억원으로 전년 대비 33.4% 늘었고, 영업이익은 1519억원으로 무려 177% 급증했습니다. 샤넬코리아 역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491억원으로 34% 늘고 에르메스코리아 영업이익도 1334억원으로 15.9% 증가했습니다. 적어도 한국 시장에선 코로나19에 타격은 커녕 대박을 친 셈입니다.
실제 딜로이트가 지역별 코로나 피해 정도를 조사해보니 개인명품의 경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피해가 가장 적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회복 역시 아태지역이 훨씬 빠를 전망입니다. 딜로이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빠른 성장세에 힘입어 오는 2025년까지 개인명품 판매가 연평균 5~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브랜드 성공을 위한 5대 요인은

딜로이트는 코로나 이후 명품 시장을 이끌 5대 트렌드를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이른바 ‘가치 소비’입니다. 같은 소비를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더 유행을 덜 타고, 브랜드력이 확실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에 지갑을 연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도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처럼 심지어 중고시장에 내놔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똘똘한 하나’를 사려는 경향이 뚜렷하죠.

둘째는 편안함과 웰빙 추구입니다. 멋을 위해서라면 몸이 조이고 걷기가 힘든 불편함을 감수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무리 고가의 명품이라 해도 편안하게 걸칠 수 있는 마치 스포츠웨어나 집 안에서 입는 옷 스타일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집 근처 1마일(1.6㎞) 반경 안에서 입을 수 있는 ‘원마일웨어’나 캐주얼 셋업 등의 인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제페토에는 구찌 IP를 활용한 의상 및 액세서리 60여종과 구찌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의 3D 월드맵 '구찌 빌라'가 있다. 사진 네이버제트

제페토에는 구찌 IP를 활용한 의상 및 액세서리 60여종과 구찌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의 3D 월드맵 '구찌 빌라'가 있다. 사진 네이버제트

셋째, 디지털 전환입니다. 업계에선 2025년엔 명품 시장 제1 판매 채널이 온라인으로 바뀔 거로 봅니다. 단순히 자사 쇼핑몰을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수요 공급 계획을 전면적으로 다시 짜야 하고, 온라인상에서 재미있고 다양한 마케팅을 펼쳐야 합니다. 소비자가 관심 있는 제품을 편안하게 둘러보고 쇼핑할 수 있도록 빅데이터 분석 등 인공지능(AI)과 고도의 정보기술(IT)이 필요합니다.

넷째, 지속가능성과 윤리경영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환경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매우 민감합니다. 명품 패션에서 살아있는 동물 털로 모피를 만들지 않고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옷이나 가방을 만드는 사례가 빠르게 느는 것도 새로운 시대와 소비자들의 성향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다섯째, 고객 맞춤형 현지화 전략입니다. 과거엔 현지 명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 건 대부분 해외 여행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현지 소비자들이 그 나라 명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기 시작했죠.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이런 소비 성향이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국가별로 가격이 비슷해진 데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 나라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조달해야 할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동경을 채워주는 명품 시장은 코로나 이후에도 개인명품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어떤 브랜드가 젊은 소비자와 변화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명품 시장의 구도는 새롭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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