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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가 때린다고 中 수긍할까…트릴레마 치닫는 '코로나의 기원'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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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 위치한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내부 실험 장면. AFP=연합뉴스

중국 우한에 위치한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내부 실험 장면.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 특히 실험실 유출설과 관련해 두 나라 사이에 긴장감 마저 감돌고 있다.

새 팬데믹 예방 위해 기원 밝혀야 해 #기원 규명으로 갈등…국제 협력 깨져 #논란 계속 땐 아시아인 혐오 범죄 우려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 우한(武漢) 현지 조사를 마치고 지난 3월 말 발표한 보고서는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시하면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다시 점화된 바이러스 기원 논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두 배 노력을 기울여 정보를 수집한 뒤 90일 이후 보고하라고 정보 당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두 배 노력을 기울여 정보를 수집한 뒤 90일 이후 보고하라고 정보 당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바이러스 기원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 당시부터 이미 진행됐다.

지난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지칭하며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헸다.

지난해 9월 홍콩 출신의 바이러스 학자인 옌 리멍 박사는 자신의 논문을 공개하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연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WHO도 지난해 2월과 7월, 올해 2월 등 세 차례 현지 조사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WHO 보고서가 발표된 후 현지 조사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현장 조사를 진행한 시간은 4시간에 불과했고, 중국 측에서 원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월 31일 한국과 미국·일본 등 14개국은 코로나 기원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우려를 나타내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WHO와 모든 회원국, 접근성·투명성·적시성에 대해 새로운 약속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엇갈린 반응

지난 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동물질병통제예방센터를 방문한 세계보건기구 코로나19 기원 조사팀. 조사팀은 코로나 의 실험실 유출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극히 작다고 밝혔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동물질병통제예방센터를 방문한 세계보건기구 코로나19 기원 조사팀. 조사팀은 코로나 의 실험실 유출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극히 작다고 밝혔었다. AF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는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 소속으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전문가인 제스블룸 박사 등 저명 과학자 18명이 기고한 글이 게재됐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우연히 유출됐다는 이론과 동물을 통해 감염됐을 이론 모두 유효한 상태"라며 "313쪽짜리 WHO 조사보고서에서 실험실 사고 가능성은 본문 4페이지와 부록에서만 이를 다뤘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될 때까지 자연 기원과 실험실 유출에 대한 가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가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중국 우한(武漢)의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연구원 3명이 코로나19 첫 발병 보고 직전인 2019년 11월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아팠다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확보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사이언스는 27일 바이든 대통령의 추가 조사 지시를 전하면서 유출설 조사 필요성을 재차 언급했다.

사이언스는 또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앤서니 파우치 소장의 언급도 전했다.
파우치 소장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자연 기원설이라고 생각하지만 100%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때문에 모든 사용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학 저널 '네이처'는 지난 27일 기사에서 실험실 유출설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쏘아부쳤다.

네이처는 "WHO는 조사를 통해 동물 기원이 실험실 누출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이후에 정치인·언론인과 일부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와 연결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제기했다"고 비판했다.

네이처는 "바이러스 기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中 "미군 실험실도 개방해야" 반론

지난 2월 9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과 중국 관계자의 기자회견. AP=연합뉴스

지난 2월 9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과 중국 관계자의 기자회견. AP=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WSJ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지금까지 해당 연구소의 직원과 연구원은 코로나19 감염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측도 "WHO 조사팀 현장조사 시 연구소 직원 전원이 코로나19 항체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 점을 근거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자오 대변인은 다시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완전히 투명한 조사를 원한다면 중국처럼 WHO 전문가를 초청하고 미군 포트 데트릭 생물 실험실 등 전 세계에 있는 미국의 실험실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의 실험실 유출설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2019년 7월 폐쇄된 미군 포트 데트릭 실험실이 코로나19 발생과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중간숙주

지난해 6월 중국 생물다양성 보전 녹색발전기금(CBCGDF) 관계자가 저장 성에서 구출된 천산갑의 코와 입 분비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6월 중국 생물다양성 보전 녹색발전기금(CBCGDF) 관계자가 저장 성에서 구출된 천산갑의 코와 입 분비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학계 전문가 대다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박쥐에 있다가 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전파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기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박쥐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중간 숙주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탓이다.

지난해 학자들은 중국 윈난 성 중간관박쥐에서 나온 코로나바이러스 RaTG13을 유력한 기원으로 주목했다.
코로나19와 전체 RNA 염기서열이 96% 이상 동일했지만, 사람 세포로 침투하는 부분인 스파이크 단백질은 유사도가 90% 수준으로 떨어졌다.

과거 사스(SARS)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은 중간숙주인 사향고양이에서 분리한 바이러스와 99% 일치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의 경우도 중간숙주인 낙타에서 분리한 바이러스와 99% 일치했다.

이에 따라 별도의 중간 숙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고, 천산갑에서 분리된 바이러스가 주목을 받았다.

이 바이러스는 코로나19바이러스이 스파이크 단백질과 97% 이상  유사했다.

전문가들은 박쥐와 천산갑의 바이러스 RNA가 재조합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19 바이러스와 99% 유사한 바이러스를 자연 중간숙주에서 분리하지는 못한 상태다.

중간숙주는 야생동물일 수도 있고,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일 가능성도 있다.

실험실 유출 가능성 제기되는 이유

지난 2월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 바깥에서 보안 요원들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 바깥에서 보안 요원들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1년 미국·네덜란드 연구팀은 유전자를 조작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독성이나 감염성이 증가시키는 실험을 진행했고,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기고했다.
미국 보건부의 생물 보안 국가 과학 자문위원회 (NSABB)는 '네이처'에 작업 결과를 공개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등 논란이 벌어졌다.

현재 생물학적 안전성 수준(BSL)이 높은 BSL-3 실험실에서는 사람을 감염시킬 수 없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또는 SARS와 같은 박쥐 바이러스에 대한 실험이 허용되고 있다.
돌연변이 유발 실험으로 이러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할 능력을 획득할 수도 있어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없지 않다.

실제로 2002년 SARS가 출현한 이래로 미국과 중국에서는 박쥐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할 가능성을 테스트했고, 새로운 병원체 출현 과정을 밝히려는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20년 동안 바이러스에 다른 유전자를 넣어 새로운 기능을 갖도록 하는 연구 성과가 축적돼 이제는 한 달 이내에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게 됐다.

코로나19와 유사한 RaTG13의 출처에 대한 의문도 유출설을 부채질했다.

이 바이러스 시료는 지난 2013년에 수집되었지만, 전체 유전자 서열은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2020년 2월 초에야 발표됐다.
더욱이 이 시료를 채취한 정확한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학자들은 RaTG13 바이러스가 2016년에 발표된 유전자 조각 KP876546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유전자는 윈난 성 광산에서 분리된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는데, 이 바이러스로 인해 광부 3명이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2016년 위난 성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를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실험을 하다 유출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 안젤라 라스무센 교수는 지난 1월 '네이처 메디신'에 쓴 기고문에서 "2019년 12월 출현하기 전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학자들에게 알려져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며 "기능 획득 연구는 철저한 조사와 정부 감독 아래 진행되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과 같은 위험한 연구가) 감시 레이더 하에서 진행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반박했다.

바이러스 기원 조사에 대한 우려도 

지난 2월 세계보건기구 조사단이 중국 우한에서 조사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세계보건기구 조사단이 중국 우한에서 조사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WHO 조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측은 "중국이 바이러스의 출처와 팬데믹 초기 상황을 이해하는 데 관련된 완전한 원자료와 원표본에 독립된 전문가들이 전부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기원 조사 요구가 자칫 '트릴레마(trilemma, 삼중고)'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
트릴레마는 세 가지 문제가 서로 얽힌 가운데 한 가지를 해결하려 하면 다른 두 가지가 잘 안 풀리는 상황을 말한다.

우선 코로나19 외에 또 다른 팬데믹 발생을 예방하려면 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우려한다. 기원 조사 요구가 거세질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국제적인 방역 협력체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국제 협력을 앞세우면 코로나19 기원을 규명하는 일이 멀어질 수도 있다.
시간을 끌면 기원을 규명하는 데 필요한 자료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실험실 유출설이 확산하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에는 반아시아인 정서가 번질 수도 있다.
지금도 빈발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반아시아인 정서가 확산하면 백신 수급이나 정보 교류 등 국제 방역 협력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원 조사에 대한 중국 측 반발이 더 커질 수 있다.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글로벌 보건 연구원인 데이비드 피들러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계속 중국을 자극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자료를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양국이 회의를 통해 전염병 외교를 촉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다음 팬데믹을 제대로 대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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