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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2.6%가 97.4% 망치고 있나, 교육력 살린다는 정부 착각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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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교육팀장의 픽 : 자사고 폐지

법원이 28일 경희고와 한대부고의 자사고 지정 취소가 부당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자사고 재지정을 취소했던 8개 학교와의 4차례 소송에서 4전 4패를 거뒀습니다. 교육청은 8개 학교에 대해 모두 항소의 뜻을 밝혀 법적 다툼은 이어지게 됐지만, 이들 학교는 자사고 지위를 당분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승소한 8개 자사고 교장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청의 항소를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의 8개 자사고 재지정 취소가 부당하다며 자사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뉴스1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승소한 8개 자사고 교장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청의 항소를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의 8개 자사고 재지정 취소가 부당하다며 자사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뉴스1

다만 이번 자사고의 승소로 정부가 추진하는 '자사고 폐지'를 막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닙니다. 법원 판결은 어디까지나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 과정이 부당했다는 것일 뿐, 자사고 폐지 정책이 위법이라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교육부는 이번 판결과 관계없이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모든 자사고를 2025년에 일괄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합니다. 승소한 8개 자사고는 2025년까지 잠시 생명 연장했을 뿐입니다.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 교육력 저하됐다"는 정부 

정부가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명분은 무엇일까요. 2019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교육 서열화 해소를 강력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1월, 교육부는 자사고 일괄폐지 계획을 발표합니다.

당시 교육부가 밝힌 자사고 폐지 이유 중 하나는 "자사고 우수학생 쏠림 현상은 일반고 교육력을 저하시키고 학생들의 자신감 하락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이어 "다양한 학생들이 한 교실에 있으면서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을 서로 이해하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2019년 11월 7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사고 외고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11월 7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사고 외고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2.6%뿐인 자사고가 일반고 몰락 주범일까 

이 말대로 일반고가 몰락한 원인은 자사고의 우수 학생 독점 때문일까요. 자사고를 없애고 모든 학교가 '평등'해지면 학교는 살아날 수 있을까요.

전국 고교생 133만여명 중 38개 자사고에 재학하는 학생은 3만4000여명, 전체의 2.6% 정도입니다. 교육부의 계획대로 자사고와 외고가 없어지고 모든 학교가 평등해져서 우수 학생이 각 일반고로 흩어진다면 어떨까요. 전국 일반고 학급 수가 3만9000여개니까 반마다 공부 잘하는 학생 한명씩 늘어나는 셈입니다.

전체 고교 중 자사고 비중.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체 고교 중 자사고 비중.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공부 잘하는 학생 한두명이 줄거나 늘었다고 해서 일반고가 죽거나 살아날 수 있을까요. 적어도 교육부는 지금까지 그런 근거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자사고가 사라지면 당연히 일반고 학생들만 명문대에 가겠지만, 그걸 '일반고 교육력 강화'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학생 선택에 따라 자사고 옥석 갈린다 

물론 자사고로의 우수학생 쏠림이 심한 지역도 있습니다. 38개 자사고 중 21곳이 몰린 서울입니다. 지난해 기준, 서울은 고교생 중 9.2%가 자사고에 다니니 꽤 많은 숫자입니다. '자사고 100개'를 목표로 한 이명박 정부가 자사고 지정을 남발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육 수요자인 학생·학부모는 바보가 아닙니다. 자사고가 됐다고 해서 무턱대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자사고 중에도 옥석이 가려집니다. 앞서 27일 동성고가 자사고 지위를 반납하기로 하면서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7개 자사고가 모집난을 겪은 끝에 스스로 일반고로 전환했습니다.

서울 자사고 지정취소 불복 소송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울 자사고 지정취소 불복 소송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는 가운데, 결국은 일반고의 3배 가까운 학비를 낼만 한 가치가 있는 학교만 자연스럽게 남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 서울 자사고 21곳 중 절반인 10곳이 신입생 모집(일반전형)에서 미달됐습니다.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에 따른 결과입니다.

자사고 측은 2025년 일괄 폐지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단을 내리거나 정부가 법령을 다시 바꾸지 않는 한, 자사고는 사라집니다. 단 2.6%에 불과한 자사고를 없애고 학교 선택권이 사라지면 일반고가 살아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그 2.6% 때문에 나머지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지 못했던 걸까요. 정부가 교육 실패의 책임을 자사고에 떠넘긴 것은 아닌지 의문입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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