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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광석 하나에 中 쩔쩔 맨다, 모두의 예상 깨고 웃은 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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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한 호주 광부가 서호주 필버라 지역 광산에서 채굴한 철광석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호주 광부가 서호주 필버라 지역 광산에서 채굴한 철광석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손에 강철(Steel·철강)이 1인치도 없다"

철강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중국에서 최근 산업계 관계자들이 한다는 한탄입니다. CNN이 홍콩발 보도로 전한 데 따르면 이런 우려를 하는 건 중국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철강 수급 문제가 심각해 중국의 경제회복에 타격을 입힐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겁니다.

[알지RG]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최근 상무회의에서 "우리는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를 잘 다뤄야만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27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리커창 총리는 전날 회의에서도 "원자재 매점매석과 가격 부풀리기를 단속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또다시 냈습니다.

중국과 무역 전쟁 중인 호주는 미소 짓고 있습니다. 호주는 중국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주요 원자재인 철광석(Iron ore) 최대 생산국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철광석 수입량의 60%를 호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철강 생산국입니다. 철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원자재인 철광석이 필요합니다.

1년 만에 반전된 상황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25일 중국의 주요 원자재 수입 통로인 닝보 저우산 항에서 선적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25일 중국의 주요 원자재 수입 통로인 닝보 저우산 항에서 선적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국과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 그동안 호주와 중국의 무역 관계가 밀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렇게 밀접한 무역 관계가 정치적 입장 차이로 깨지기 시작하면 누가 더 큰 손해를 보게 될까요? 지난해만 해도 아쉬운 쪽은 호주라는 평가가 우세했습니다. 철광석 외에도 호주산 원자재, 소비재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관세를 부과하면서 랍스터, 와인 등 주요 수출품목들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호주가 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중국에 코로나19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미국에 발맞춰 대중견제의 선봉에 선 데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난해 철광석 생산은 줄고, 올해 미국 등 주요국이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날 채비를 하면서 철강 수요가 급증한 겁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지난해 6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호주의 에너지 프로젝트 '스노위2.0'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스노위산 인근 공사 현장을 찾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지난해 6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호주의 에너지 프로젝트 '스노위2.0'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스노위산 인근 공사 현장을 찾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특히 호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철광석 생산국이 됐습니다.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철광석을 생산하던 브라질은 2015년 11월 철광산 사마르코댐 붕괴 사건 이후로 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남미 전역을 할퀴고 가면서 철광석 생산량은 더욱 줄었습니다. 중국이 철광석을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던 인도는 현재 산업용 산소를 의료용으로 쓸 정도로 '아비규환' 상태입니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지난달 호주 키스 피트 자원부 장관은 "브라질 등 경쟁국들의 철광석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호주가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마음이 급합니다. 왕이 외무장관이 아프리카 순방에 나서고, 미얀마 지도층과 밀착하는 데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습니다. 우선은 아프리카 기니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해 광산 개발에도 나서고 있지만 당장은 호주산을 대체할 수준의 생산처는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철광석 가격 고공행진, 10년래 역사적 고점 

지난 13일 기준 전날(12일) 중국 칭다오항에서 수입한 국제 철광석 가격은 1t당 237.5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지난 13일 기준 전날(12일) 중국 칭다오항에서 수입한 국제 철광석 가격은 1t당 237.5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철광석 가격은 최근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고공 행진 중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5일 중국 칭다오항 수입 물량 기준(CFR) 철광석 현물 가격은 t당 192.8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년 전인 95.2달러(지난해 5월 26일) 대비 100%가량 상승한 가격입니다. 최고가를 기록했던 지난 12일에는 t당 237.5달러로 전년 대비 160%가량의 상승폭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일주일간 중국 정부의 가격 방어로 최고가 대비 20%가량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10년래 역사적 고점입니다. 호주 ABC 방송에 따르면 철광석 가격이 가장 높았던 시기인 10년 전 광산 붐 당시에도 최고가는 t당 190달러가량이었습니다.

리커창 총리가 연일 투기 세력을 향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부가 호주로 이전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럼에도 철광석만은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호주에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한 번도 철광석에는 관세를 부과한 적이 없습니다.

中 교수 "더는 쓸 경제보복 카드 없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통신=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통신=연합뉴스]

두 국가의 무역 전쟁에서 호주의 우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우선 두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에서 원자재 확보전이 치열해졌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밝혔고 중국도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 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가 급증하면서 철광석 같은 원자재는 이미 '수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의견(JP모건, 골드만삭스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한국도 철강이 부족해 전 산업계가 곡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철강은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국가가 주도하는 인프라 투자 외에도 수요가 많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배출 감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강생산에 제동이 걸린 상태입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니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호주 철광석 업체에 "일부러 공급을 틀어쥐는 것 아니냐"는 항의도 했다고 합니다. 지난 5일에는 중국 정부가 "호주와 전략적 대화를 무기한 중단한다"고 선언했는데, 중국 푸단대의 국제관계학자인 쑹루정 교수는 '쓸 수 있는 경제 보복 카드가 소진된 탓'이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당분간 호주 우위 이어질 듯

지난 1월 호주에서 철광석 18만t을 선적한 '에이치엘 그린호'가 전남 광양제철소 원료부두에 도착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지난 1월 호주에서 철광석 18만t을 선적한 '에이치엘 그린호'가 전남 광양제철소 원료부두에 도착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결국 중국이 호주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카드는 '철광석 수입 중단' 뿐인데, 이는 쓸 수 없는 카드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면 호주가 단기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는 있지만, 철강 수요가 있는 한 중국을 대체할 수입국은 나타날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박재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철광석 수입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5~6년 내에는 호주산 철광석 대체 공급처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호주는 코로나19 기원 문제 외에도 2018년 미국 다음으로 가장 먼저 화웨이 제재를 했던 국가"라며 "코로나19가 끝나면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출구전략을 찾겠지만 1~2년 이내에 이런 기본적인 기류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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