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관종의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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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2년 전 지상파 예능 프로에 출연한 인기 힙합 프로듀서에게 사회자가 대뜸 “관종 아니냐”고 물었다. “음악 작업할 때 옷을 특이하게 입는 걸 즐긴다. 자랑하는 것도 좋아해서 작업 영상을 SNS에 많이 올린다”는 설명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곧바로 “관종 맞다. 뮤지션은 모두 관종이다”고 답했다. 그 당당함에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나는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떳떳이 밝히는 건 너무나 낯선 장면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4050 기성세대에게 관종은 입에 올리기엔 왠지 쑥스러움을 동반하는 단어였다.

‘대선 코인’으로 한몫 노리는 자들
SNS 조작·왜곡에 대책 강구해야

그랬던 관종이 그새 시대의 대세가 됐다. 이젠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 네티즌도 누구나 자연스레 관종임을 인정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드러내면서 이를 타인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삼고, 그 사적 공간 안에서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보듬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 비대면 문화와 맞물리면서 SNS의 비중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SNS 전성시대와 관종의 보편화. 바야흐로 ‘관종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득세하는 형국이다. 문제는 사적 영역에서의 관종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관종이 판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공히 관심종자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킹메이커에 훈수꾼에 야바위꾼까지, 대선주자에 빌붙거나 줄 서서 한몫 챙기려는 자들로 여의도는 지금 문전성시다. ‘대선 코인’으로 한탕을 노리는 자들이 5년마다 서는 최대의 장을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이들에게 SNS는 자신의 입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수단이다.

자칭 평론가와 유튜버, 전·현직 교수, 철면피 의원을 망라하는 이들 관심종자는 관심만 받을 수 있다면 칭찬이든 욕이든 가리지 않는다. 관심이 곧 인지도 상승으로 연결되는, 그렇게 해서 올라간 클릭 수와 노출 빈도가 그의 몸값을 결정짓는 오늘날의 정치 현실에서 대중에게 각인될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는 계산이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나쁜 게 세상에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이들이야말로 관심이 ‘화폐’와 ‘권력’이 돼버린 이 희한한 시대의 불행한 자화상이다.

더 큰 피해는 이들이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퍼트리면서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대한 자극적이고 말초적일수록, 선악의 잣대로 상대편을 악마화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을수록 대중의 시선을 쉽게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 조사에서도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트위터에서 6배나 빨리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이라고 과연 다를까. 오죽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보다 코로나와 관련된 왜곡된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독설과 교언의 끝은 증오와 불신뿐이다. 그 속에서 토론과 타협은 설 자리를 잃고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뿐이다. 이래서는 국가라는 공동체가 지속될 수 없다.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자들 때문에 SNS를 아끼는 선량한 시민들까지 욕을 먹을 순 없다. 특히 내년 대선이 ‘SNS 대선’으로 불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소셜 미디어를 그들의 놀이터로 방치만 할 순 없다. 관종의 시대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더 늦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최악의 혼탁함을 막을 수 있다. 한 페친의 경고처럼 인간의 숨겨진 욕망은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화폐와 권력 앞에선 더더욱.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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