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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스스로 유전자 코딩, 늙지 않고 영생하는 세상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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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호 22면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게놈 연구 권위자 박종화 교수

“인간 유전체 지도는 인류가 생산해낸 가장 중요하고 경이로운 지도다. 오늘 우리는 신이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면서 사용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울산 만명 게놈 프로젝트’ 완성 #“3년 내 10만명 게놈 해독 목표” #해독한 정보 토대로 RNA 조절 #늙은 세포 젊어지게 유도 가능 #게놈은 바이오산업의 반도체 #5년 내 암, 2042년 노화 극복할 것

2000년 6월 26일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인간 유전체 지도 초안 완성을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1990년 시작한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세포에 들어있는 DNA의 염기 서열 전체를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와 그 유전자가 생산하는 단백질을 밝혀내는 방법으로 암과 치매 등 각종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됐다. 혁명적인 신약 출현에 대한 기대로 세계 주요 제약업체와 관련 벤처기업들의 주가가 치솟았다.

코로나 백신 개발도 게놈 연구 산물

박종화 교수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에 마련돼 있는 중국 생명공학 회사 MGI의 게놈해독기 T7 앞에 섰다. 가격이 대당 13억 원에 달하는 이 해독기는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미국 일루미나와 경쟁하는 대표적 게놈 장비다. [사진 울산과학기술원]

박종화 교수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에 마련돼 있는 중국 생명공학 회사 MGI의 게놈해독기 T7 앞에 섰다. 가격이 대당 13억 원에 달하는 이 해독기는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미국 일루미나와 경쟁하는 대표적 게놈 장비다. [사진 울산과학기술원]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공식 완료된 것은 2003년. 이후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애초 기대만큼의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는 게놈 해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의료기기와 신약개발, 난치병 치료, 예방의학 등에 한발씩 한발씩 다가서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인류의 대응 또한 게놈 연구의 산물이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맹활약한 진단키트, 개발 시작 10개월 만에 나온 백신 또한  바이러스의 게놈 분석과 편집을 통해서 할 수 있었다.

이제 영국·미국·중국 등  세계 주요국들이 ‘100만 게놈 프로젝트’를 향해 달리고 있다. 자국민 100만 명의 유전체 빅데이터를 분석해 예방 및 정밀의학의 바탕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2019년 ‘최대 100만 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게놈 연구의 현주소는 물론, 미래가 궁금했다. 지난달 26일 ‘울산 만명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한 국내 게놈 연구의 권위자인 박종화(54)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공학과 교수를 21일 만났다.

이제 무슨 연구를 하나
“지난달 해독을 끝낸 한국인 인간게놈 1만 명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인 고유의 변이체 표준데이터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년 이맘때쯤 기초 표준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이 표준 데이터를 질병군과 비교·분석하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질병의 진단뿐 아니라 치료와 예방까지 할 수 있다. 특정 개인의 게놈을 비교해보면 자신의 건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디가  취약한지, 건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향후 3년 안에 스트레스 우울증에 대한 치료와 예방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게놈은 바이오산업의 반도체와 같은 거다.” (여기서‘해독’(解讀)은 게놈의 염기서열을 읽어들였다는 뜻으로, 의미를 알아내는 ‘분석’과 차이가 있다.)
왜 1만 명인가.
"1만 명은 한국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최소 단위다. 앞으로 3년 안에 한국인 10만 명 게놈을 해독하는 것이 다음 목표다.  희망하기로는 향후 7년 안에 100만 명 게놈 시대가 열리면 좋겠다.  여기서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다. 더 나아가 10년 내 1000만 명, 15년 뒤엔 5000만 명, 즉 전 국민이 자신의 게놈을 해독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연구가 꽤 지연됐다던데, 어려움이 뭔가.
"현재 1명 게놈 해독에 100만원의 비용이 든다.  펀딩이 쉽지 않다. 게놈 해독을 위한 참여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피를 뽑아야 하고, 자신의 게놈 정보를 연구 데이터로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울산 만명 게놈 프로젝트는 건강검진과 게놈 분석 리포트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참여자들을 모았다.  애초 2019년에 마친다는 게 목표였는데, 2년 정도 지연됐다.”

미·영·중 ‘100만 게놈 프로젝트’ 진행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구 선진국들의 연구개발 동향이 궁금하다.
"세계 주요국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데, 영국과 미국이 선두에서 달려가고 있다. 영국은 2018년 희귀질환 중심의 10만 명 게놈 데이터 구축을 이미 마쳤고, 이제 500만 명을 목표로 확대 시행 중이다. 미국은 2016년부터 100만 명 게놈 코호트를 구축 중인데, 2019년 7월 기준 23만 명 정도 확보했다고 한다. 미국은 게놈 프로젝트를 통한 민간 바이오산업 육성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는 반면, 영국은 공공의료 복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 일루미나의 게놈 해독기는 세계 유전체 분석 장비 시장의 74%를 차지할 정도다. 중국도 게놈 확보뿐 아니라 관련 장비 개발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누가 더 많은 인간 게놈 빅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곧 그 나라, 기업 생명과학 산업의 열쇠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다소 늦긴 했지만 우리도 세계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2019년 5월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 100만 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생명공학연구원 등이 시범사업을 거쳐 10년 기한의 바이오 데이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와 별도로 마크로젠과 테라젠 등 국내 유전공학 관련 기업들도 개별적으로 게놈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정한 특정 유전자만 검사를 허용하는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 걷어 내야할 관련 규제가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연구방향, 계획은 뭔가.
"게놈 분석을 통한 암 정복과 ‘극(克) 노화’가 연구의 주된 방향이다. 극노화, 즉 노화 극복이란 ‘늙는 것을 막아낸다’는 뜻의 ‘항(抗)노화’뿐 아니라 젊어진다는 뜻의 ‘역(逆)노화’를 합친 말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게놈 정보를 분석하고 진단해 몸에 맞게 생활습관을 바로 잡고,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보충하면 노화를 막을 수 있다. 역노화는 무슨 공상과학(SF) 같은 얘기냐고 하겠지만, 유전자 편집을 통해 늙은 세포가 젊어지도록 유도하고, 너무 늙은 세포는 없애줄 수 있다. 모더나의 mRNA 백신도 같은 원리로 만들어내는 거다. 내 계산으론 2042년쯤 되면 노화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암 정복 역시 mRNA를 이용해 면역 항암 치료제를 만들어내면 가능하다. 앞으로 5년 안에 인류는 암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더 먼 미래, 2050년쯤 되면 어떤 세상이 될까.
"유전공학의 발달로 사고만 안 나면 죽지 않는 세상을 선택할 수 있는 영생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이런 세상이 오면 헬스산업뿐 아니라 ‘자살산업’ 같은 것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세포의 재생 횟수는 평균 70회다. 줄기세포는 재생이 계속되는데 나이가 들면 이 줄기세포가 고갈이 된다. 돌아가신 분을 부검해보면 줄기세포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전공학을 통해 줄기세포가 계속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몸의 세포가 재생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여기서 걸리는 게 암이다. 노화와 암은 동전의 양면이다. 세포가 재생하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그게 암이 된다. 극노화 연구의 가장 큰 장애물은 규제다. 각자 자기에 맞는 면역 치료제를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인류는 지금 게놈 1.0시대를 지나 2.0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게놈을 해독해 DNA 돌연변이를 잡아내고, 진단과 치료를 하는 게 1.0이라면, DNA를 넘어서 RNA, epi DNA, 단백질까지 조절하는 게 2.0이다. 노화 극복의 열쇠가 여기에 있다.”

죽지 않는 세상 ‘자살산업’ 생길 수도

믿기 힘든 얘기다.
"클린턴이 ‘오늘 우리는 신이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면서 사용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 말이 인간게놈 해독의 의미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 표현이다. 인간이 게놈을 해독한 것은 인류와 우주의 기원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 엄청난 성과다. 20세기까지는 자연의 선택으로 우주 속 생명체가 살아왔다. 이게 우주 진화의 역사다. 이제 인간이 자신의 게놈을 해독하고, 편집해 원하는 대로 스스로 코딩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 다음은 이런 특이점에 이른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즉 윤리·철학의 문제가 남는다. 나는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단계를  IT(정보기술)-NT(나노기술)-BT(바이오기술)-MT(의료기술)-PT(철학기술)로 정의한다.”

박종화

1967년생. 고교시절부터 DNA 연구에 푹 빠졌다. 서울대를 중퇴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에서 생화학 학사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생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게놈 연구의 본산, 생어연구소의 총 책임자 팀 허버드 교수가 그의 지도교수다. 이후 세계 게놈 관련 연구개발의 대부라 불리는 조지 처치 하버드 의대 교수 아래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케임브리지대와 KAIST 교수를 거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정보센터장과 유전공학 기업 테라젠의 사장을 역임했다. UNIST에는 2014년 생명과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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