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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국제사회 백신공급 협력하느라 확보 늦었다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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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27일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202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평화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27일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202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평화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늑장 백신’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설명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 27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평화회의에서 “백신(확보)에 있어서 우리가 좀 늦었다”고 인정했다. 이어 늦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국제사회의 한 책임 있는 나라의 역할을 하자’고 해 그 논의에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어느덧 보니 다른 나라들이 다 먼저 (백신을) 선점한 상황이 됐다. 우리 스스로 개발하겠다는 우리 백신 개발도 늦어진 상황에서”라는 것이다.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백신 공동구매 국제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83만5000회분이 항공기에서 내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백신 공동구매 국제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83만5000회분이 항공기에서 내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전 장관의 발언 

강 전 장관이 말한 ‘그 논의’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말한다. 코백스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이 주도하는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다. 최빈민국 인구의 20%까지도 백신을 고루 맞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정부는 인구의 20% 수준인 1000만명분의 백신 공급계약을 코백스와 맺었다. 강 전 장관의 주장은 코백스에 협력하느라 백신 확보를 위한 개별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늑장 백신 논란이 한창 거셌던 지난해 말 정부가 앞세운 설명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당시 백신 접종을 시작한 각국의 모습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자 ‘왜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초기 백신 확보에 소극적이었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여야의 정쟁으로까지 번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백신 안전성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일부 방역당국 관계자들은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설 필요가 없고, 외국 사례를 지켜보다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따라가도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18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외교부 합동 백신 브리핑 자료에는 접종 후 부작용 해외 사례까지 담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국제 인도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일부러 서두르지 않았다고 말을 바꾸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21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21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국산 백신 고집하다 실기? 

강 전 장관은 국산 백신 개발이 늦어진 상황도 언급했다. 자체 백신 개발을 고집하다 백신 선점 시기를 놓쳤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강 전 장관은 당시 무슨 근거로 국산 백신이 이른 시간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아직도 국산 백신은 아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언제 식약처의 사용승인을 받을지 확실치 않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진입한 제넥신도 다음 달에서야 2·3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미 11월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쯤 출시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범유행 상황에서 백신 늑장 도입은 뼈아픈 실책이다. 물론 1·2차 유행을 안정화한 K 방역의 경험을 토대로 백신이 당장 급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국산 항체치료제 개발도 한창 이뤄질 때였다.

일별 누적 백신 접종 인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별 누적 백신 접종 인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백신이 게임 체인저인데 

그러나 코로나19 백신이 ‘게임 체임저’라는 사실이 여실히 입증됐다. 일찌감치 백신 접종에 적극 나섰던 이스라엘이나 미국·영국 등은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회복 중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다음 달부터 실내 마스크 쓰기, 해외여행 제한조치 외 방역수칙을 모두 해제할 예정이다. 한국은 여전히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밤 10시 이후 영업제한’(거리두기 2단계 지역) 조처가 유지되고 있다. 다른 세상이다. 백신 접종에 소홀했던 ‘방역 모범국’ 대만은 신규 환자가 수백명씩 나온다.

정부는 현재 백신 접종률을 높이려 안간힘을 쓴다. ‘우리도 충분한 물량을 미리 확보해 접종 시기를 당겼다면 어땠을까’ 늘 아쉬움이 남는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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