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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北대사관 침입한 그 "北 위협에 FBI도 몸조심 경고"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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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19년 2월 22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북한대사관에 머문 5시간 40분으로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북한으로부터 암살당할 위기에 처했고, 스페인 정부는 그의 뒤를 쫓고 있다. 미국은 스페인 요청으로 그를 체포했고, 스페인으로 보내려 한다.

"스페인 北 대사관 습격 때 韓 국적자도 가담" #안 변호인 "한국, 스페인의 인도 요청 거부" #안 씨 "FBI, 미국서도 나와 가족 위험하다 경고" #5년 전 김한솔 구출, '탈북' 돕기 北 '타깃' 돼

2019년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혐의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2019년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혐의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첩보 영화 같은 삶의 주인공은 '대북 활동가' 크리스토퍼 안(41)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연방 법원에서 스페인이 청구한 범죄인 인도 재판이 열린 다음 날인 26일(현지시간) 시내에서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크리스토퍼 안이 2019년 2월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가는 장면. 스페인 정부는 미국 정부에 그의 송환을 요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크리스토퍼 안이 2019년 2월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가는 장면. 스페인 정부는 미국 정부에 그의 송환을 요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왜 들어갔나.
대사관 안에 있던 사람들이 망명을 도와달라고 요청해 들어갔다. 더 나은 삶을 찾아, 특히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고 싶어했다고 들었다. 그들은 서구가 악하다고 믿도록 길러졌다. 북한 정권이 지시하는 것 외 것은 모두 잘못됐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교육받았다. 그러다가 외교관이 돼 서구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무엇이 현실이지 알게 되면, 이 거짓말을 계속 자녀에게 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녀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대사관 안 분위기는 어땠나.
열기가 (상당했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기분도 매우 좋았다. 그곳을 떠난 뒤 그날 반 열기로 한 축하 파티를 기대하고 있었다. 에어비앤비로 돌아가 모두를 위해 근사한 저녁 식사를 만들 계획이었다. 장보기 목록도 만들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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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설렘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페인 수사당국과 안 씨 등에 따르면 일행이 대사관에 진입한 시간은 오후 5시께였다. 그로부터 12분 후 북한 외교관 부인이 건물 2층 창문으로 뛰어내려 대사관을 탈출했다. 지나가던 행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고받은 경찰이 대사관을 찾은 것은 오후 5시 50분. 그즈음 대사관 내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망명 계획이 들통났다고 믿은 북한 외교관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결국 망명을 부탁한 사람을 포함, 모든 북한인은 수사당국에 폭력과 강도를 당했다고 진술했다는 게 안 씨 측 주장이다. 안 씨 등은 컴퓨터와 하드디스크, 휴대폰 USB 등을 들고나와 미 연방수사국(FBI)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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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일찌감치 어그러졌다. 납치극을 꾸민 시간보다 사태를 수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 셈인데.
그렇다. 처음에는 설레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려움이 지배했다.
몇 명이 망명을 원했나.
말할 수 없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뒤 우리가 북한 외교관의 '집단' 탈북을 도울 것이라고 들었다.
다른 망명 루트도 있는데, 납치 자작극을 꾸민 이유는 뭘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게 하려는 것 같았다. 자발적 망명일 경우 북한에 남은 가족이 처벌받는다.

안 씨 일행이 대사관을 습격하기 며칠 전, 한국으로 망명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의 딸이 로마 시내에서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 외교관의 '납치 자작극' 요청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2017년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암살된 직후 그의 아들 김한솔 가족의 탈출도 도왔는데.
에이드리언 홍 창(반북 활동가)으로부터 김한솔을 도울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필리핀에서 휴가 중이었다. (만나기로 한 타이베이 공항까지는)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김한솔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며 에이드리언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를 구해야 했고, 내가 가장 가까이 있었다."
타이베이 공항에서 김한솔 가족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한솔은 누군가 자신과 가족을 해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순간 그가 김일성 장손이거나 북한 정부 내 지위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청년일 뿐이었다. 이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봤을 때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틀 전 아버지(김정남)를 잃은 그의 공포와 긴장감이 전해졌다.
처음 보는 당신에게 김한솔이 불안감을 드러냈나.
나도 17살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 경험을 해서인지,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으로도 그가 처한 어려움은 드러난 셈이다. 
반북단체 '자유조선'은 홈페이지에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과 그를 대피시켰던 크리스토퍼 안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반북단체 '자유조선'은 홈페이지에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과 그를 대피시켰던 크리스토퍼 안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김한솔 구출 과정에서 사진을 남겼는데.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천리마 민방위(반북 단체 '자유 조선'의 전신) 측 요청이 있어 타이베이 공항에서 찍었다. 우리가 그의 구출에 관여했다는 일종의 사진 근거를 남기는 것으로 이해했다.

천리마 민방위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사진에서 안 씨와 김한솔은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치고는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에 대해 안 씨는 "당시 한솔에게 최우선 순위는 가족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것이었다"면서 "아버지를 애도하는 것도 당시에는 그에게 사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내게 도와달라고 하니까 응하는 것뿐이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도와달라고 할 때 외면할 수는 없다. 소명 의식이나 무엇을 이루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마침 한국어도 할 줄 알고 (일반 미국인보다)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한국인이 돕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지금까지 몇 명의 북한인 탈북을 도왔나.
그건 말할 수 없다.  
'반북(反北) 단체' 자유 조선 회원인가.
나는 아니다. 회원 제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들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고, 내 여건이 되면 돕는 관계다.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침입과 김한솔 구출작접을 기획한 사건 용의자 '에이드리언 홍 창'. [AFP=뉴스1]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침입과 김한솔 구출작접을 기획한 사건 용의자 '에이드리언 홍 창'. [AFP=뉴스1]

자유 조선은 자유와 인권이 없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기치를 내 걸고 2019년 3월 1일 설립된 단체다. 설립자 에이드리언 홍 창은 스페인 대사관 습격 사건과 김한솔 구출 작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에이드리언 홍 창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해병대원으로 이라크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내 삶에 목적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친구 소개로 그를 만났다. 2009년께였다.
김한솔 구출부터 대사관 습격까지 홍 창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만들어냈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몽상가인가 실천가인가.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에이드리언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에이드리언 같은 사람을 냉소적으로 대하고 묵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너무 거창한 일이야'하는 시선들이다. 물론, 큰일이고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큰일, 긍정적인 일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일어난다. 에이드리언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다. 
2019년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혐의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2019년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혐의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북한이 당신을 쫓고 있다고 생각하나.
북한의 위협과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이 위험하다면서 몸조심하라고 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도 방심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내게는 미국이 가장 안전한 곳이므로 미국에 남아야 한다고 했다. 스페인으로 보내지면 암살당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exponentially)으로 증가한다. 역설적으로 FBI가 속한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 재판에서 내가 스페인으로 송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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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북한의 위험성을 잘 모를 것 같은데.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매우 혼란스럽다. 북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북 정권이 얼마나 잔인하고(brutal) 내부적으로 복잡한지 알 수 없다. 북한의 위협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북한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고, 거기에 전념하면 그들은 반드시 해낸다는 것을 봤다.  

안 씨 변호인단은 재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후 7년을 기다려 큰 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암살했다"면서 "북한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의 시간이나 비용이 들더라도 반드시 해낸다"고 주장했다.

후회는 없나.
목숨을 구해달라고 요청한 사람들을 도우려 노력한 것에 후회는 없다. 다만, 북한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거나, 북한 주민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내 사례를 자신들의 미래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은 아쉽다.
범죄인 인도 재판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나. 
북한의 잔혹한 전술(brutal tactics)에 대해 알게 되고, 그래서 우리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게 되면 상식과 논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낙관한다. 미국 검사나 판사 등 사법 시스템에 대해 반감은 없다. 각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으로 증언하는) 북한 대사관 사람들에게도 적대감은 없다.

한편. 안 씨 변호인은 전날 재판에서 "한국 정부는 스페인 정부의 한국인 용의자 송환 요청을 거절했다"면서 이 선례를 안 씨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참고해 달라고 판사에게 요청했다. 스페인 대사관 습격에는 4명 이상의 한국 국적자도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특정 사건과 관련, 구체적인 진행 경과 등은 상대국과의 조약 및 외교 관계상 비밀유지 의무와 향후 절차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LA)=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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