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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가영의 시선

‘이준석 현상’이 ‘이준석’에 던지는 3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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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웅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 연합뉴스

김웅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 연합뉴스

“이준석이 출세지향적이고 관종같은 부류인데도 1등이라니 다 바꾸라는 모양이다.”

개인 지지 아닌 보수혁신 기대 반영 #지도부 전면 교체땐 보수당 최대 혁명 #자기 성찰과 연마 없으면 또 몰락

30년 가까이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에서 일해 온 한 인사가 최근 SNS에 이렇게 썼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준석 후보(전 최고위원)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는 걸 두고서다. 그의 글에서 국민의힘 터줏대감들의 고민이 읽힌다. 그들은 이 후보에게 좀처럼 손이 가지는 않지만 민심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준석 바람’이 심상찮다. 2007년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맞붙었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이처럼 국민의힘 당내 선거가 국민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다. 흥행의 아이콘은 단연 이준석 후보다. 최근 일주일간 인터넷 검색어 ‘이준석’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두 배에 달했다.
36세인 이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에선 낙선했지만 ‘0선 중진’으로 불릴만큼 꽤 화려한 정치 이력을 지녔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20대 중반부터 정당생활을 시작했고, 주요 고비 때면 비상대책위원이나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 역할을 해 왔다. 국민의힘 내에선 도통 찾아보기 힘든 30대인데다 토론을 주저하지 않아 각종 방송에 단골 패널로 등장한 덕에 얼굴도 상당히 알려져 있다. 이런 요인들이 분명 여론조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했겠지만 이런 것들만으로 '이준석 태풍'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지금의 '이준석 바람'은 사실은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현상이다. 전당대회에 나선 김웅ㆍ김은혜 의원과 촌철살인의 말과 글로 대통령과 여권을 저격하는 윤희숙 의원 등 초선까지 가세한 집단으로서의 ‘이준석’에 대한 호응이다. 지금까지 기본 룰이 ‘장유유서’이던 보수 정당에 오랜만에 세력으로 등장한 신진그룹에 대한 응원이다. 이들 중 가장 젊고 가장 논쟁적이며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이준석 후보가 집단 ‘이준석’으로 향하는 관심의 상당 부분을 빨아들이고 있는 거다. 이런 '이준석 현상'을 냉정하게 분석해야만 모처럼 기회를 잡은 국민의힘과 신진그룹 '이준석'에 미래가 있다. 언뜻 열광으로 읽히는 '이준석 현상'은 실상은 '이준석'에게 준엄한 가르침 3가지를 던져준다.
첫째, 지금의 이준석 현상은 결코 정치인 이준석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후보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이나 인물 됨됨이, 매력 등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당내 0선ㆍ초선 등 신진 그룹이 보수의 혁신을 이뤄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이 후보는 “지금껏 보신주의로 일관하던 국민의힘 중진들에 대한 염증이 ‘할 말 하는’ 모습을 보이는 저에 대한 지지로 표출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를 실천으로 보여야 한다.
둘째, 이 후보나 김웅·김은혜 의원으로 당 대표와 지도부가 전면 교체된다면 이는 대한민국 보수 정당 역사상 가장 혁명적 변화다. 보수 정당의 정치적 기반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난 4ㆍ7 재ㆍ보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20~30대의 55%가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다. 1년 전 총선 때와는 완전 딴판이다. 재ㆍ보선의 여세를 몰아 국민의힘이 ‘이준석’ 지도부를 구성한다면 이 지지를 이어갈 뿐 아니라 하기에 따라선 지지세를 확장할 수 있다. 특히 선거 참패 이후 되레 과거로 회귀하는 여당과의 대비가 확연해지며 지지층 확대의 시너지는 극대화될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이고도 중요한 마지막은 바람에 안주해 스스로 발전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보수는 또다시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부러움과 시기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한때 그들도 같은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 크다. 그러나 민주당과 이 정권의 핵심인 86세대들은 1980년대 이후 성장을 멈췄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 했던 몇 년이 그들의 이후 수십 년을 먹여 살렸다. 현 정권 출범 이후엔 퇴행적 행태를 보이며 국민의힘보다 더 꼰대스러운 모습으로 각인됐다. 지금껏 ‘이준석’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수십 년 국민의힘 당원들이 민심에 호응하는 건 이 기회에 혁신하면 정권교체가 가능할 거란 희망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진 세력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불안감을 불식시켜야 한다. 식견과 경험 부족에 대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 성찰과 연마에 나서야 한다. ‘이준석’을 향한 여론과 당원의 지지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여기는 독점의식을 버리고 열린 마음과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 '이준석 현상'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에 '이준석'과 국민의힘의 미래가 달렸다.

이가영 논설위원

이가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