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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미달 사태는 지방소멸의 국가 문제…특별회계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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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장제국 사립대총장협 회장의 지방대 대책

장제국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은 지방대 미달사태는 국가의 의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송봉근 기자

장제국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은 지방대 미달사태는 국가의 의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송봉근 기자

대학의 ‘2021년 문제’-. 학령인구 감소세로 오래전 예견돼온 대학의 정원 미달 사태가 올해 본격화했다. 미달은 지방 사립대가 두드러졌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 극점(極點)의 일그러진 국토상은 가속한다. 지방대는 지역을 떠받치는 지(知)와 경제 거점이자 인재 공급원이다. 경쟁력·입시 중심적 사고를 넘어 나라의 틀, 균형발전의 관점에서도 2021년 문제는 조명돼야 한다. 현장에선 지방대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떤 대책과 제언 사항을 갖고 있을까. 전국 153개 사립대가 회원인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장제국 회장(동서대 총장)을 25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인구 급감 파도가 지역대 책임인가 #등록금 13년째 동결로 재정 바닥 나 #수익사업 허용해 교육 재투자 열고 #한계대학 자진 퇴출제도 마련해야 #국·사립 역할분담 통한 윈윈 절실

최근 전국을 돌며 지역별 총장 간담회를 열었는데.
“간담회에 나온 한 총장이 ‘우리나라 대학은 위치 선정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우리 대학도 서울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학생 모집 문제로 머리를 싸맬 일은 없지 않았겠나’라고 탄식해 모두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작금의 지역대 사태를 대변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전체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인원(4만586명) 중 무려 75%(3만458명)가 비수도권 대학이다. 인구 추이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번 미달 사태는 지역대가 뭐를 특별히 잘못 해서가 아니다. 급격한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현상 등 국가가 초래한 문제이다. 이를 모두 지방대 부실로 책임을 씌우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국가의 의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정원 미달의 파장은.
“현재 대다수 대학은 등록금에 학교 재정을 의지한다. 정원 미달이 학교 재정 악화로 직결되는 구조다. 13년째 지속한 등록금 동결은 대학 재정을 이미 바닥나게 했다. 2011년 대비 2019년 사립대의 등록금 인하 비율은 24.8%에 이른다. 이 기간 누적 감소액은 약 8조9000억원이다. 수도권 대학이 비수도권보다 등록금이 많았던 만큼 지역대 재정 상황이 더 나쁜 것은 명약관화다. 지역대 위기는 지방소멸로 가는 심대한 국가적 문제이다. 지역의 교육력 저하·경제 쇠락, 젊은 인구의 수도권 유출 가속화 등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 대학이 문을 닫은 남원시와 동해시는 아직도 폐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대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만 18세 학령인구 추계

만 18세 학령인구 추계

지방대가 방만한 운영으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극소수 부실 대학 문제가 전체의 경우로 호도됐다고 생각한다. 미달 사태로 지역대 이미지가 악화하면서 마치 지역대가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한탄스러운 세태가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차별화, 특성화에 성공해 수도권 유수 대학 못잖은 경쟁력을 지닌 대학들이 도처에 많다. 지역 경제와 국가 장래를 걸머진 보석 같은 대학이 극소수 부실 대학과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가선 안 된다.”
학령인구 감소는 오래전 예견됐다.
“지역대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정권에 따라 고등교육 정책의 방점이 달랐지만,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역대 정부가 하라는 대로 숨죽이며 철저히 순응해왔다. 물론 인구 급감 쓰나미는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대학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에 묶여 자구책도 제대로 모색해보지 못한 사이 학령인구 급감과 수도권 집중이 빚은 삼각파도가 사정없이 덮쳐버렸다. 우리 고등교육은 사립대가 80% 이상을 맡고 있고, 그 절대다수가 지방에 있다. 국가는 지역 사립대에 고등교육을 위임해왔고,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지역 사립대는 교육보국의 이념 아래 국가 발전의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적어도 비리 대학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극소수 대학들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그렇다. 이런 역할을 해온 사립대가 이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 만큼 국가가 일정 부분 도와줘야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이 지역 사립대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지역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지자체는 지역대 육성을 최우선 어젠다로 삼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
정부 규제를 언급했는데 바람직한 정부 역할은.
“대학 상황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학생) 중심으로 바뀌었다. 대학이 학생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예전에는 힘센 공급자의 지위 남용을 막고, 아무 물건(교육)이나 내어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정부의 간섭이 필요했다. 그러나 수요자 중심이 된 지금은 공급자가 스스로 개혁해 좋은 교육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의 역할은 간섭이 아닌 사립대 진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2021년도 수도권, 비수도권 대학 충원율

2021년도 수도권, 비수도권 대학 충원율

지방대의 학부·학과 통폐합과 정원 감축 등 자구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어떤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지는 각 대학이 가장 잘 안다. 건학 이념 실현, 지역사회 요구에 대한 부응, 현재 처한 대학의 사정, 학생 등 대학 구성원이 원하는 개혁 방향을 반영한 정책을 대학 스스로 추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구책이 나온다. 문제는 수많은 규제로 둘러싸인 대학의 대책이라고 해봐야 고작 정원 감축이나 학과 통폐합 정도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학들이 각자 특색을 살릴 수 있도록 해줘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정권과 관계없이 지속하는 예측 가능한 교육정책, 규제 완화와 꾸준한 재정 지원이 지역대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본다.”
재정난 해결을 위한 협의회 차원의 움직임은 있는가.
“등록금 인상이 어려운 현실에서 지금 대학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운영비이다. 정부 지원금은 모두 목적성이라 대학이 자유롭게 경상비에 사용할 수 없다. 정부의 13년째 등록금 동결로 대학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만큼 그 부분에 대한 보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내년도 대학혁신지원사업비의 대폭 증액이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대안이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에 시간이 걸린다면, 한시적 고등교육특별회계를 만들어 재정난에 처한 지방대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학의 퇴출 제도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지난 20일의 정부 대책에서 대단히 아쉬운 정책 미비점이 바로 청산대학의 퇴로 방안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 정리하고자 하는 대학은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청산 재산은 설립 주체에게 적정 수준으로 반환하고, 각종 청산비용으로 활용하게 해야 한다. 일부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난색을 보이지만, 퇴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대학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남게 될 것이고,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방대 활성화를 위한 다른 제언은.
“대학 설립운영 요건을 대폭 완화해 학교의 여유 재산을 수익 사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교육에 재투자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국·사립대 간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국립대는 글로벌 연구 중심으로, 지역 사립대는 실무·응용 중심으로 교육을 하면 국가적으로도 좋을 것이다. 국립대가 대학원 중심 대학이 되면 그만큼 지역대의 신입생 미충원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인구 10만 도시서 30년간 정원 채운 일본 미마사카대의 비결

식물·아동·사회복지의 3개 학과에 입학 정원 210명.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의 미마사카(美作)대학은 전형적인 소규모 사립대다. 쓰야마시는 인구가 10만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세에도 과거 30년 동안 정원을 못 채운 적이 없다. 2016~20년 평균 정원 충원율이 107%다. 지난해 일본 사립대 593곳의 31%(184곳)가 정원 미달인 상황에 비춰보면 발군의 성적표다. 비결은 뭘까. 우자키 미노루 학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세 가지를 꼽았다.

“무엇보다 압도적 교육력이다. 사회복지사 등 국가시험 합격률이 전국 상위로 국공립대 합격률을 계속 뛰어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졸업생의 사회복지사와 관리영양사 합격률은 각각 92%(전체 29.3%) , 93.8%(61.9%)다. 둘째는 졸업생의 높은 U턴 취직률이라고 우자키 학장은 말한다. 현재 재학생의 3분의 2가 외부 현 출신이다. 인근 고치·시마네현의 역외 진학 대학생 U턴 취업률은 이 대학이 61.3%, 72.1%로 단연 1위였다(2016년). 마지막은 소규모 대학의 장점 발휘다. 담임제도를 운영한다. 우자키 학장은 “지방 사립대는 ‘지방대의 으뜸’이 돼야 지속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공립화밖에 길이 없다”고 했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