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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금리 인상 이주열 운 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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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 경제가 정상화 궤도로 진입하고 있다. 올해 4% 성장이 예상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할 전망이다. 경제 회복에 속도가 붙으며, 이례적인 통화 완화 기조도 적절히 조정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이유다.

“인상 여부 경제상황에 달렸다” #올 성장률 전망 4%로 1%P 상향 #전문가 “한은, 금리인상 기대 높여가 #통화정책 정상화 씨앗 뿌려졌다” #금리 인상 시작되면 가계빚 직격탄 #본격적인 긴축은 시기상조 시각도

한국은행은 27일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예상했다. 지난 2월 전망치(3.0%)보다 1.0%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한은의 예상대로 된다면 3% 넘는 성장률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도 3.0%로 기존 전망치(2.5%)보다 0.5%포인트 올렸다. 커지는 물가상승 압력을 반영,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1.8%로 0.5%포인트 높여 잡았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한 번에 1.0%포인트 올린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경기 회복세에 대한 자신감과 낙관적 전망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주열은 “금리정책 실기하지 않겠다” 돈줄 죄기 신호

이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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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회복세에 수출과 설비투자가 호조를 보이고, 소비 심리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영향이다. 지난 1분기의 ‘깜짝 성장’(전분기 대비 1.6%)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경제가 제 궤도를 찾아가면서 통화정책도 정상화를 향해 뱃머리를 돌릴 준비를 하는 모양새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현재의 0.5%로 동결했지만 ‘당분간’ 완화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중에 경제 상황에 따라 돈줄을 죌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전체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내 (기준금리) 인상 여부는 경제 상황의 전개에 달려 있다”며 “경제 상황이 호전된다면 그에 맞춰 이례적인 완화 조치를 적절히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통화정책 조정에 대한 시그널을 줘야 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많았다고도 덧붙였다.

“Fed도 고려 요인이지만 국내 여건 중요”

올해 한국 경제 4% 성장 예상.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올해 한국 경제 4% 성장 예상.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통화정책이란 거함의 기수를 순식간에 바꿀 수는 없다. 본격적으로 방향을 틀 때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이를 보여주듯 이 총재도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빠르지만 코로나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며 “경기 상황에 맞춰 금리 정책의 정상화를 서두르지 않겠지만, 또 실기하지도 말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란 입장도 드러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산매입축소(테이퍼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며 긴축을 향해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총재는 “Fed의 통화정책이 중요한 고려 요인은 맞지만 한국의 통화정책은 국내 경제 여건에 맞춰 결정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Fed가 완화 기조를 유지할 때 통화정책을 조정하면 한국이 국내 요인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금융 불균형의 누적을 막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기대를 점진적으로 높여가고 있다”며 “통화정책 정상화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평가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면서 투자자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자산시장 과열 속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가계 빚이 늘고 있어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가계 빚은 1765조원을 돌파했다. 문제는 늘어나는 빚뿐만이 아니라 금리 변동에 취약한 한국의 가계 빚 구조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은행 대출(잔액 기준)에서 변동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70.5%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가계 빚이 그 직격탄을 맞는 약한 고리가 될 수밖에 없다.

연도별 경제성장률

연도별 경제성장률

한은이 통화정책 변화의 신호탄은 쐈지만 금리 인상 등 실제 행동에 이르는 길은 아직 멀다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일단 이런 시각을 뒷받침하는 것이 이날의 ‘만장일치 금리 동결’이다. 금리 인상 소수의견의 등장까지 예상됐지만 본격적인 긴축 신호를 보내기에는 시기상조로 본 셈이다.

섣부른 통화정책 전환이 코로나19의 충격을 털고 회복세를 보이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고용시장 전망 등을 보면 한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은은 올해 취업자 수가 14만 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상적인 한국 경제의 성장 기조라면 취업자 수는 연간 20만~30만 명 정도 늘어야 한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예년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4%의 성장률에 비춰보면 ‘고용 없는 성장’ 혹은 ‘고용이 부진한 성장’인 셈이다.

접종 따른 집단면역도 금리에 영향 줄 요인

대출금리 상승 시 이자 부담

대출금리 상승 시 이자 부담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한국 경제가 4%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제 내부의 업종이나 기업 규모, 계층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온도 차는 커지고 있다”며 “단순히 총량 지표만 보고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과 기업 투자가 견인하는 성장률 착시 현상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백신 접종에 따른 집단면역도 통화 완화 정도에 영향을 줄 요인으로 꼽힌다. 이 총재는 “집단면역 자체도 중요하지만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경제활동 제약의 완화 정도와 그에 따른 경제성장세의 개선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한은이 실제 긴축으로의 방향 전환에 나설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융 불균형 누적에 유의할 것이란 입장을 드러냈지만 ‘선(先) 경제 정상화, 후(後) 물가 및 금융 안정’이라는 통화 당국의 상황 인식에는 큰 변함이 없다”며 “확고한 경기 회복세를 확인하기 전까지 현재의 통화정책 방향에 변화를 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올해 3분기 이후 수출 증가세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내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며 “4분기 중 금리 인상 소수의견 제시 등으로 인상 절차를 시작하고 실제 인상 시점은 내년 7월 정도로 예상된다”고 했다.

하현옥·윤상언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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