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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맹사성 놀린 말버르장머리 없는 젊은이, 알고보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01)

조선 세종 시기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좋은 음식이나 값비싼 옷을 탐내지 않았다. 그가 어느 날 고향을 다녀오는 길이다.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맹사성은 주변 주막으로 얼른 들어갔다. 주막 안은 사람이 많았다. 그런 중에 한 젊은 선비가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데려온 일꾼까지 마루에 걸터앉아 빈자리가 없었다. 맹사성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이 든 사람에게 자리도 양보할 줄 모르다니.’ 맹사성은 예의 없는 젊은 선비를 보니 화가 났다. “험, 험.” 맹사성은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젊은 선비가 맹사성을 흘낏 쳐다본다. “웬 늙은이야.” 젊은이는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했다. 허름한 옷을 입은 맹사성을 시골 노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쩌다가 비를 맞았소?” 젊은이가 퉁명스레 말했다. “비가 오니 비를 맞지, 비 오는 날에 눈을 맞겠소?” 맹사성도 일부러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아니, 이 늙은이가?’ 젊은 선비도 은근히 화가 났다. ‘좋아! 이 늙은이를 좀 골려 줄까.’

문정공 맹사성 정부표준영정 제80호(2008. 2. 4.) 작가 권오창. [사진 고불맹사성기념관]

문정공 맹사성 정부표준영정 제80호(2008. 2. 4.) 작가 권오창. [사진 고불맹사성기념관]

젊은 선비는 사람들 앞에 맹사성을 창피 주려 마음먹었다. “영감! 우리 심심한데 놀이 한 번 해보지 않겠소?” “그럽시다.” 맹사성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그래, 걸려들었군!’

젊은 선비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공’으로 물으면 ‘당’으로 대답하는 놀이인데 할 수 있겠소?” “그렇다마다요. 자, 그럼 내가 먼저 시작하겠소.”

먼저 맹사성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인공?” 젊은 선비가 대답했다. “서울로 가는 길이당.”

“무엇하러 가는공?” “과거 보러 간당.” “글공부는 많이 했는공?” “노인이 뭘 안다고 그러는당.” “내가 좀 봐 줄공?” “남을 놀리는 것은 옳지 않당!” 젊은 선비는 맹사성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그러자 맹사성은 그저 웃기만 했다.

맹사성은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복장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였다. 사진은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건립된 맹사성 기념관. [중앙포토]

맹사성은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복장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였다. 사진은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건립된 맹사성 기념관. [중앙포토]

며칠 뒤 맹사성은 궁궐에 들어갔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그들은 한 줄로 서서 맹사성에게 인사했다. “앞으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 주게나.” “명심하겠습니다.” 급제자들에게 맹사성은 하늘같은 존재였다. 그때 맹사성의 눈에 낯익은 급제자가 보였다. 얼마 전 주막에서 만난 바로 그 젊은 선비였다.

맹사성이 선비에게 묻는다. “어떻게 된 일인공?” 젊은 선비는 순간 얼굴이 파래졌다. ‘아이고, 나는 이제 죽었구나. 시골 늙은이가 이렇게 높은 분이라니!’ 젊은 선비는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죽어 마땅합니다.” “허허.” 맹사성은 큰 소리로 웃었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자 맹사성은 주막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젊은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뒤 맹사성은 그 젊은 선비를 많이 도왔고, 선비도 맹사성을 본받아 훌륭한 관리가 되었다. 맹사성은 이렇게 말조심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한국국학진흥원이 펼치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단’의 스토리 중 하나다.

맹사성은 고려 말기 과거에 급제한 뒤 세종 시대 이조판서와 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성품이 소탈하고 조용해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복장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였다고 한다. 또 관리로 청렴했으며 특히 출입할 때는 소를 타기 좋아해 보는 이들이 재상인 줄을 알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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