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니다"와 "거칠다" 사이…가평계곡에 빠진 이재명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2021.05.27 05:00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6일 오후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에서 열린 '경기도 청정계곡 생활 SOC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지사는 철거대상 불법시설의 99.7%가 자진 철거된 것에 대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뉴스1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6일 오후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에서 열린 '경기도 청정계곡 생활 SOC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지사는 철거대상 불법시설의 99.7%가 자진 철거된 것에 대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뉴스1

“‘한다면 한다’는 사람인 건 좋은데 엄청난 물리력을 동원해서 (계곡 시설물을) 다 때려 부쉈을 거란 의심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저에 대해 ‘독재자라 함부로 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분들이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6일 경기 가평 용소폭포 인근을 방문해 한 말이다. 이곳에선 2019년 11월 이전까지 음식점 4곳이 평상 14개를 차려놓고 영업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시설물이 없다. 경기도가 2019년 하반기부터 추진해 온 ‘계곡 불법 시설물 정비사업’의 결과다.

계곡 정비사업은 이 지사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취임 직후인 2018년 7월만 해도 29.2%로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에 꼴찌였던 이 지사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계곡 정비사업이 본격화된 뒤 상승세를 탔다. 2019년 12월엔 49.8%로 4위까지 올랐고, 지난해 2월 신천지 총회 본부를 직접 찾아가 신도 명단을 직접 확보한 뒤엔 71.2%(지난해 6월 조사)로 1위를 차지했다. (리얼미터 조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실행력과 함께 각인된 ‘거친 스타일’

계곡 정비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초반엔 경기도 내부에서조차 “불가능하다. 무리하면 충돌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컸다고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9년 11월 하천 불법시설물을 현장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청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9년 11월 하천 불법시설물을 현장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청

이에 이 지사가 선택한 해법은 ‘정면 돌파’였다. 이 지사는 2019년 8월 직접 경기도 양주 일대 영업소 2곳의 철거현장을 찾아 직접 작업을 지휘했고, 반대 주민들과 만나 공개 논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 지사는 “살짝 불쾌하다”고 하는 상인에게 “당연히 불쾌하죠. 저도 불쾌하긴 마찬가지”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경기도 산하 25개 시·군과의 조율도 원만하지만은 않았다. 이날 이 지사가 방문한 가평군의 경우, 초반엔 불법 시설물 정비 속도가 더뎠던 탓에 이 지사로부터 불호령을 들었던 곳이다. 이 지사는 2019년 10월 경기도 확대간부회의에서 “불법을 방치한 것도 문제인데, 이렇게 버티면서 인력 없다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당연히 수십 년을 그대로 방치한 것 문제 아니냐. 직무유기다”라며 가평군에 대한 감사를 지시했다.

이 때문에 계곡 정비사업은 이 지사의 농담처럼 “이재명은 거칠다”는 이미지가 각인된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기도 측은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설득하고 소통했다”는 입장이다. 1501곳 가운데 단 6곳을 제외한 99.7%가 자진철거에 나섰다는 게 근거다. 이 지사는 이날 “충분히 대안을 만들어서 제시하고 설득하고, 설득이 안 될 경우엔 법과 원칙에 따라 강력한 질서유지·원상복구·책임추궁을 하겠다는 정책에 주민들이 쉽게 동의했다”고 자평했다.

‘공복(公僕)’에겐 무관용…2030·여성 지지 얻을까?

이재명 경기지사가 26일 계곡 정비사업이 끝난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경기도는 이 지사 본인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들이 의무적으로 명찰을 달도록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가 26일 계곡 정비사업이 끝난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경기도는 이 지사 본인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들이 의무적으로 명찰을 달도록 하고 있다. 뉴스1

이 지사의 엄격함은 특히 공무원 앞에서 드러난다. 이 지사 본인을 포함, 경기도의 모든 공무원은 외부 행사에 나갈 때조차 명찰을 착용한다. 이 지사는 자신을 포함한 공무원들에 대해 ‘공복’(公僕·공공의 심부름꾼) 내지 ‘머슴’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이후엔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의 전 직원을 전수 조사해 부패방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2명을 고발하고, 농지법 위반 혐의가 있는 2명을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강성’·‘엄격’ 이미지가 향후 대선 경쟁에서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최근 여·야 경쟁 구도에서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2030 유권자들이 이런 이미지에 거부감이 적지 않아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이재명 지사는 실행력이 강한 일종의 ‘독일 병정’ 이미지”라며 “2030과 여성 유권자들은 최근 소통과 공감 능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런 이미지를 보강하지 못하면 의외로 고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다른 여권 주자와 달리 당분간 경기지사 직을 맡아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 지사는 ‘경기도를 내팽개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지사직을 유지해야 한다”며 “하지만 자칫 이 때문에 딱딱한 공직자 이미지에 갇혀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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