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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형사로 통하는 ‘비밀의 숲’…치악산 둘레길이 열어준 비경

중앙일보

입력

치악산둘레길 9코스 자작나무길을 걷다가 만난 풍경. 과거 임도를 내면서 가로수로 자작나무를 심었다.

치악산둘레길 9코스 자작나무길을 걷다가 만난 풍경. 과거 임도를 내면서 가로수로 자작나무를 심었다.

5년을 기다린 길이 열렸다. 치악산을 크게 한 바퀴 도는 140㎞ 둘레길이 지난 20일 공식 개통했다. 치악산은 정상을 오르다 보면 치가 떨리고 ‘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험하지만 둘레길은 다르다. 다채로운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순한 길이다. 2019년 개방한 1~3코스는 길 일부가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터라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4~11코스는 이번에 처음 공개한 길이다. 그중 8~11코스의 하이라이트를 직접 걸어보고 왔다.

117년 역사 자랑하는 성당 

치악산둘레길은 5년 만에 완성된 길이다. 11개 코스로 이뤄진 140㎞ 중 원주시에 포함된 길이 104.5㎞이고, 영월군과 횡성군도 지난다. 하여 원주시가 길 조성을 주도했고, 횡성군과 영월군이 거들었다. 지리산둘레길이 지리산국립공원 바깥만 걷는 것과 달리 치악산둘레길은 국립공원을 넘나든다. 치악산이 거느린 작은 산도 오르고, 원주혁신도시와 작은 산골 마을도 지난다.

1904년에 설립된 용소막성당. 강원도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옆에는 성당보다 오래된 큼직한 느티나무 몇 그루가 있다.

1904년에 설립된 용소막성당. 강원도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옆에는 성당보다 오래된 큼직한 느티나무 몇 그루가 있다.

8코스 ‘거북바우길’을 먼저 걸어봤다. 출발지점은 우아한 풍모를 자랑하는 용소막성당이다. 1904년에 설립됐으니 한 세기 이상을 버틴 유서 깊은 성당이다. 성당 한편에 성서 번역의 선구자였던 선종완 신부를 기리는 유물관도 있다. 성당에서 서쪽 구학산(983m) 방향으로 걷다 보면 아담한 사찰 ‘한국사’를 지나 구학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까지는 사유지인데 산 사면을 간벌했다. 그늘이 없어 덥지만 시야가 훤하다. 전망대에 서면, 원주 신림면 마을과 치악산 정상 비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학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원주시 신림면 마을.

구학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원주시 신림면 마을.

원주와 충북 제천에 걸쳐 있는 구학산에는 5년 전 조성한 ‘구학산둘레숲길’이 있다. 치악산둘레길은 이 길 일부를 활용하면서도 걷기 불편한 길 대신 과감히 새 길을 냈다. 잡목과 덩굴을 걷어내면서 구학산 정상을 바라보는 거대한 거북이 모양의 바위를 발견했다. 코스 이름이 거북바우길인 이유다.

구학산에 길을 내다가 발견했다는 거북바우. 산 정상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학산에 길을 내다가 발견했다는 거북바우. 산 정상 쪽을 바라보고 있다.

자작나무와 나란히 걷는 길 

둘레길은 등산로와 다르다. 봉우리를 향해 가열차게 오르는 게 아니라 풍광을 감상하고 길벗과 담소를 나누며 느긋하게 걷는 길이다. 9코스 ‘자작나무길’이 그렇다. 오르막길도 있고, 전체 길이는 15㎞에 달하지만 환한 자작나무를 내내 보며 걸어서 마음마저 밝아지는 기분이다.

9코스 자작나무길은 걷는 내내 자작나무와 함께한다.

9코스 자작나무길은 걷는 내내 자작나무와 함께한다.

9코스는 신림면 ‘석동종점’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한다. 구미동 방향으로 걷다가 여골로 접어들면 임도가 이어진다. 과거 임도를 조성하면서 가로수로 자작나무를 심었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처럼 빽빽하진 않아도 제법 줄기가 두툼한 자작나무가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길에서 만난 원주시민 유병상(65)씨는 “치악산을 수시로 오르다가 더는 힘들어 산행과 산책의 중간쯤 되는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새 길을 걸으니 기분도 새로워져 좋다”고 말했다.

9코스는 치악산자연휴양림을 지난다. 이달 개장한 숲속의집 객실이 눈에 띈다.

9코스는 치악산자연휴양림을 지난다. 이달 개장한 숲속의집 객실이 눈에 띈다.

임도를 걷다 보면 치악산자연휴양림이 나온다. 1994년 개장했는데, 이달 초 5개 숲속의집을 새로 열었다. 휴양림에서 하룻밤 묵으며 삼림욕을 즐기고 둘레길까지 걸으면 완벽한 숲 치유가 따로 없을 터이다. 휴양림을 통과해 바람골 정상을 지나면 종점인 금대삼거리까지 경사도가 급해진다. 원주시에서 9코스는 반시계방향으로 걷길 권하는 이유다. 반대로 걸으면 급한 오르막길 때문에 시작부터 힘이 쭉 빠진다.

국립공원 한편에 숨어 있던 원시림 

치악산에서도 물 맑기로 소문난 금대계곡은 원주 사람의 피서지다. 10코스 ‘아흔아홉골길’이 금대유원지에서 시작한다. 금대계곡서 내려온 물이 흐르는 원주천을 따라 걷는 천변길이 무척 매력적이다. 워낙 환경이 좋은 국립공원 변두리여서인지 천변에 전원주택이 줄지어 있다.

10코스 아흔아홉골길 초반은 맑은 원주천을 따라 걷는다.

10코스 아흔아홉골길 초반은 맑은 원주천을 따라 걷는다.

천을 끼고 걷다가 곰네미교를 건너면 숲길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가 아흔아홉골이다. 뒷돌이골, 탑골, 일론골, 은행나무골 등 수많은 계곡을 마주치는데 허무맹랑한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곰 사냥꾼이 이곳을 지나다가 곰 99마리가 99개의 계곡을 오르고 걸 보고는 질겁하고 도망갔단다. 그만큼 계곡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하자. 아흔아홉골에는 낙엽송이 유난히 많다. 단풍 든 가을 풍경이 기대된다.

11코스 잣나무숲은 길을 내면서 새롭게 발견했다. 느긋하게 삼림욕을 즐기기 좋다.

11코스 잣나무숲은 길을 내면서 새롭게 발견했다. 느긋하게 삼림욕을 즐기기 좋다.

11코스 ‘한가터길’은 원주혁신도시에서 가까워 공식 개통 전부터 많은 사람이 걸었다. 올해 1월 5일 폐역이 된 반곡역을 지나 한가터삼거리 쪽으로 올라가면 잣나무숲이 나타난다. 원주시 관광개발과 전찬봉 주무관은 “수년 전 둘레길 코스 조사차 아무도 찾지 않는 숲을 헤매다 너무 근사한 잣나무 군락을 만나 모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1코스에는 계곡도 많다. 짙은 원시림 속을 흐르는 계곡물 주변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다.

11코스에는 계곡도 많다. 짙은 원시림 속을 흐르는 계곡물 주변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다.

잣나무숲을 지나서 전체 코스의 종점이자 시점인 국형사 쪽으로 가는 길은 내내 울울한 원시림이다. 이끼가 잔뜩 낀 계곡도 많다. 과연 치악산이 숨겨둔 ‘비밀의 숲’이라 할만한 풍광이었다.

여행정보

원주시에서 주말마다 치악산둘레길 1·3코스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둘레길 22개 지점에 있는 스탬프를 인증서에 찍어서 완보를 인증하면 원주시에서 선물을 준다. 원주종합운동장 옆 원주시걷기여행길 안내센터(033-762-2080), 원주시청 매점에서 패스포트를 1만원에 판다. 자세한 길 정보는 둘레길 홈페이지(chiaktrail.kr) 참조.

원주=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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