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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탐욕과 과신으로 망치는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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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인간의 욕망(desire)은 자본주의 경제의 원동력이다. 현대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옹호했다. 1776년에 발간한 『국부론』에서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의 이익 추구 때문이라고 했다. 개인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이익이 증진될 수 있다고 보았다. 21세기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 놓은 개인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전자 상거래 등 신기술의 발전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와 그들 회사의 직원이 개인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노력한 결과이지 자비심이나 공적 의무감 때문은 아니다.

욕망과 자신감은 경제 동력이나 #탐욕이 넘치면 시장 불안정하고 #성공을 과신하면 위기 겪게 마련 #국가가 통제하고 경제질서 세워야

그러나 개인의 탐욕(greed)이 넘치면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작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는 “탐욕은 좋다. 탐욕은 정당하다. 탐욕이 일을 해결한다”고 외친다. 1980년대뿐만이 아니라, 미국 주식 브로커들이 뉴욕에 모여 ‘버튼 우드 협정’을 맺었던 1792년부터 지금까지 뉴욕 월가와 전 세계 금융시장에는 게코 같은 부도덕한 사기꾼의 탐욕이 넘쳤다. 수많은 금융 사고와 금융 위기가 발생했고 피해가 컸다. 정보가 완전하지 않고 불투명한 시장에서는 투자자가 손해를 보기 쉽다. 1995년 캐나다 광산개발회사 ‘브리엑스’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세계 최대 금광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투자금이 몰려 회사 시장가치가 3년 만에 무려 10만%가 올랐다. 그러나 결국 일반 광석에 금 성분을 추가해 광물 분석가들까지 속인 사기극으로 들통이 났다.

불확실한 미래에 과거의 성공 비결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믿고 자신감이 넘쳐 자신의 예견 능력을 과신(overconfidence)하는 투자자는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하여 결과를 보고 난 후, 자기는 진작부터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사후 확신 편향’을 갖고 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 주식은 결국은 오른다고 했잖아”라고 말한다. 이런 편향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져 크게 실수할 수 있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남들이 이익을 봤다는 자산이나 가상자산(암호화폐)에 덩달아 투자를 하여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어떤 자산의 적정한 가치가 얼마인지, 가격이 어느 정도 오르면 앞으로 떨어질지, 일반 투자자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개인 투자자들은 거대한 자금력, 조직력, 정보력 등을 전문지식을 갖춘 기관투자자에 비교하면 자금도 적고 잘못된 정보에 쉽게 휩쓸린다.

경제 변동이 심한 시기에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과도한 욕망과 자신감을 억누르는 자기 절제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투자든 사업이든 성공하려면 욕망과 자신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실력을 갖추고 행운도 함께 해야 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이라는 세계적인 회사를 만든 똑똑하고 자신감이 넘친 인물들이지만, 사실 운도 좋았다. 두 사람은 1955년 같은 해에 태어나 각각 20세, 21세에 창업했고 당시가 개인 컴퓨터의 초창기여서 성공하기 쉬웠다(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욕망은 인간의 기본 본성이어서 개인의 절제가 쉽지 않다. 인간의 탐욕과 과신이 경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국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과도한 욕심과 비이성적 행동이 시장을 지배하도록 방치하면,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많은 시장참가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동시에 국가는 인간의 잘살고 싶은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적 풍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욕망과 경제활동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경제 발전을 해칠 수 있다.

국가는 적절한 규제와 감독으로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당한 행위를 처벌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고, 위기를 예방하고, 경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사안일하게 대응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국가는 쇠퇴한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 많은 공직자가 힘들게 일하고 있지만, 부당하게 부동산 투기를 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적발됐다. 정부 정책의 실패로 집값이 급등하여 무주택 청년들은 미래가 암울하고, 평생을 일해서 집 한 채 마련한 국민은 세금폭탄을 뒤집어썼는데, 공직자들은 불로소득을 추구했다. 국가가 공직자의 탐욕부터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

미래는 불안하고 현실에 좌절한 수백만 청년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몰려 대박을 꿈꾼 지가 오래됐다. 투기 열풍에도 국가는 지금까지 주관 행정부처도 없이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허위 정보가 넘치고 가격 변동이 너무 심하다. 투자자의 행동을 비난하기 전에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선의의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대로 된 법과 정책을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 인간의 과욕과 과신을 적절히 통제하고 경제질서를 바르게 세워 시장의 혼란을 막고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