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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이준석 바람' 짓밟는 '영남 꼰대' 국민의힘 선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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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5일 열린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출마한 이준석 후보가 비전발표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5일 열린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출마한 이준석 후보가 비전발표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당 대표 경선이 한창인 국민의힘에 신인 돌풍이 불고 있다. '0선 중진'으로 불리는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여론조사에서 쟁쟁한 다선·중진을 따돌리고 1위를 기록중이다. 6월 11일 열리는 제1야당의 전당대회 결과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최근 몇년새 보지 못한 이례적 현상이다.
그러나 국민적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공산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가 청년·호남의 비중을 낮추면서 '영남 꼰대당'식 경선 룰을 밀어붙이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우선,1차 경선(28일)을 좌우할 당원 여론 조사 대상 인원 1000명 중 호남에 배정된 표는 20명이다. 2%에 불과하다. 당초엔 호남의 국민의힘 당원 비율(0.8%)에 따라 8명만 배정하려 했다. 그러나 천하람(순천-광양-곡성-구례)·김재섭(도봉갑) 당협위원장 등 30대 선관위원들과 통계청장 출신 유경준 의원(강남 병·초선) 같은 전문가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비율을 1.2%P 올려 20명으로 늘리는 '선심'을 썼다. 전체 인구에서 호남의 비율(10%)을 고려하면 2%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호남을 포기하는 것"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현재 국민의힘 당원 구조를 두고 '영남 자민련'이란 비아냥이 나온다. 29만 당원 중 무려 55%가 영남이어서다. 선관위의 경선룰대로 하면 여론조사 대상 1000명 중 550명이 영남에 할당된다. 영남 출신이거나 영남이 미는 후보가 대표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다.
 청년 대표성 문제도 심각하다. 선관위는 당원들의 연령 분포에 맞춰 여론조사 구간을 3개로 쪼갰다. 40대 이하(27.4%)와 50대(30.6%) 및 60대 이상(42%)으로 삼분해 각각 비율대로 1000표를 할당한다는 거다. 이러면 당원의 72.6%를 차지하는 50대 이상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반면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회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청년들은 참여권에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된다. 20~30대는 전화 조사 응답률이 낮아 같은 구간에 속한 40대가 27.4%의 지분을 독식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경선룰로 보면 국민의힘은 노인·영남당임을 셀프 인증해버린 셈이다. '이준석 바람'으로 모처럼 당에 쏠린 민심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앙시엥 레짐'을 고수한다는 비난이 나온다.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권 교체 실패는 참아도 당권을 신진 세력에게 넘겨주는 건 못 참겠는다는 '그들만의 이해'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황우여 선관위원장과 정양석 사무총장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정양석 총장은 중도의 참여를 막는 역선택 방지 설문 신설과 호남·청년에 불리한 경선 규칙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원성을 사고 있다. 당장 선관위가 철통 보안에 열을 올린 경선 룰 초안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폭로됐다. 정 총장의 전횡에 반발하는 당심의 현주소다.
 유경준 의원의 전언이다. "지난 주말 정양석 총장에게 '호남에 딱 8표 주고 수권정당 만들겠다는 건가. 뒷감당할 수 있겠나'고 따졌다. 정 총장도 문제를 시인했지만 호남표 고작 20표로 늘린 것 말고는 바뀐 건 거의 없더라."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탄식한다. "서울시장 선거 때 20대 남자 70%가 국민의힘 찍어줘 겨우 이겼다. 그러나 20대 당원은 4%에 불과하다. 그러면 더욱 귀히 여기고, 경선 지분도 최소한 10%는 줘야 한다. 10년 만에 청년들이 당에 눈길을 줬는데 배제한다면 해당 행위다. 집토끼(영남) 배려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지만, 집토끼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가. 영남산 당 대표인가 정권 교체인가? 지역과 연령을 망라해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 당 대표가 돼야만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출 수 있지 않나.지금의 경선 룰은,이준석으로 상징되는 비영남 소장파가 당 대표되는 걸 막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이들의 지적대로 당내 인식은 민심의 향배와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경우 영남에서도 40% 넘는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재섭 비대위원은 "동네 60대 어르신도, 40~50대가 간부로 있는 우리 당 사무처 사람들도 '확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고 민심을 전했다.
 돌이켜보면 국민의 힘은 당명을 바꾸기 전부터도 당심-민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민심을 받아들인 선거에선 승리했고, 당심을 지키려 발버둥 친 선거에선 고배를 마셨다.민심을 이기는 당심은 없다는 진리를 되새길 때다.이제라도 연령·지역별로 균형을 갖춘 경선룰을 만들어 당심과 민심이 일치되는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