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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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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인구 35만명이 넘는 큰 도시지만, 아직 화장장이 없는 곳이 있다. 부산·울산·경남의 교통 요충지로 불리는 양산시 얘기다. 자그마치 16년간이나 땅속에 묻힌 것처럼 잠잠했던 ‘시립 화장장 설치’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김일권 양산시장은 지난 20일 오후 양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시립 화장장 설치에 대한 시민 의견수렴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5년 양산시가 시립 추모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 용역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지 16년 만이었다.

양산시가 시립 화장장 설치에 다시 나선 건 코로나19가 계기가 됐다. 그동안 양산시에서는 사망자가 생기면 장례식을 치른 뒤 인근 지역으로 화장하러 가는 일이 반복됐다. 당초 양산시는 2009년까지 시립추모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시립 화장장 설치 후보 지역 2곳을 선정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시기상조라는 여론에 밀려 추진이 중단되면서 고인을 화장하고 모실 추모공원을 짓지 못했다.

로컬 프리즘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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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하루 4~5명꼴로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유족들은 고인을 화장하고 모실 곳을 찾지 못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고 기간도 짧아 지속적인 민원은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양산시 측 설명이다. 그러다 최근에 문제가 생겼다. 양산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던 인근 지역 화장장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화장장 이용이 9일 가까이 중단되면서다.

김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인근 지역 화장장의 내부 사정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은 물론 양산지역 주민들도 화장장 이용이 9일간 중단되면서 안타까운 상황이 속출했다”며 “특히 울산이나 부산 등 다른 지역 화장시설 이용 때도 양산 시민들은 사망 당일 화장장 예약이 불편한 데다 봉안 시설은 이용할 수조차 없어 큰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양산시민 사망자 94%가 화장을 하는 상황에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과정까지 이렇게 험난해서야 되겠느냐”며 “내달부터 2개월가량 시립 화장장 설치 여부를 묻는 시민 의견 수렴을 위한 창구를 시 홈페이지에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양산지역 지난해 사망자 수는 1599명(1일 평균 4.4명)인데 이 중 1508명이 화장해 화장률은 94.3%로 높다.

사람의 일생에서 태어나고 죽는 과정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인구 35만명이나 모여 사는 큰 도시에서 고인을 맘 편히 보내드리고 망자를 추모할 공간조차 없어 타 도시로 떠돌아다녀야 한다면 누군들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산 자들의 공간만 중요시하면서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할 공간을 도외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닥쳐올 죽음을 예비하지 못하는 ‘죽은 도시’나 다름없다.

위성욱 부산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