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넘는 압구정 아파트, 2030 여섯명은 대출 없이 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27 00:02

업데이트 2021.05.27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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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만여 가구의 아파트가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며 거래되는 경우가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 실거주 의무 기간 부여,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등 재건축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규제가 오히려 압구정 아파트의 거래량을 늘렸고, 가격을 끌어올렸다.

4년간 50억 이상 거래 36건 전수분석
매수인 평균 49.5세, 매도인 61세
주담대 막혀 대부업체서 대출 받기도
갭투자로 20억대 차익낸 경우도 13건

토지거래허가제 지정 한 달, 거래 0
“집주인들, 집값 더 오를 거라며 관망”

문 정부 출범 이후 압구정 아파트 유형별 상승률 순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문 정부 출범 이후 압구정 아파트 유형별 상승률 순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들어 압구정동 아파트가 50억원 이상에 거래된 것은 36건인데, 이 가운데 61%(22건)가 올해 거래됐다. 20~30대가 대출을 받지 않고 50억원을 조달해 매입한 사례도 확인됐다. 실거주하지 않고 임대를 주는 형태의 갭투자로 4년 만에 2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거둔 경우도 있다. 26일 중앙일보가 50억원 이상 거래 36건의 등기부등본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정부는 2019년 12·16대책을 통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등의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압구정 아파트 평균가격 및 거래건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 정부 출범 이후 압구정 아파트 평균가격 및 거래건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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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현대7차 전용면적 245.2㎡의 주인이 된 30대 초반 A씨는 아예 대출과 임대차 계약 없이 52억원에 매수 계약을 했다. 이런 20~30대(1982년 이후 출생자)는 6명으로 조사됐다. 90년 이후 출생자도 3명이나 된다.

최근 압구정동에 관심을 갖는 젊은 재력가가 많아졌다. 소유권 이전이 완료된 매수인 46명(공동 명의자 포함)의 나이를 분석해 보니 평균 나이는 49.5세이며, 40대가 18명으로 가장 많았다. 50대가 15명으로 뒤를 이었고 60대 이상은 7명에 불과했다. 반면에 매도인 47명(법인 제외)의 평균 나이는 61.2세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5%(26명)가 60대 이상이었다.

매도인 중에는 가족으로부터 증여 또는 상속받은 아파트를 최근 정리한 사례가 많다. 매입 후 실거주하지 않고 갭투자로 수익을 낸 사례도 13건이다. 이 경우 시세 차익이 모두 20억원을 넘는다.

압구정 50억원 이상 아파트 매수·매도인 연령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압구정 50억원 이상 아파트 매수·매도인 연령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반도건설 자회사 케이피디개발은 현대7차 전용면적 254.2㎡를 2013년 5월 경매로 33억원에 낙찰받았는데, 8년 만인 지난달 5일 80억원에 팔았다. 세금을 제외한 차익은 47억원.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이 살고 있는 집의 옆옆집이다.

2016년 5월 28억2000만원에 신현대 11차 전용 183.41㎡를 매수한 뒤 지난해 12월 52억원에 매도한 B씨와 C씨는 갭투자로 4년여 만에 23억8000만원을 벌었다. 갭투자자는 압구정동 노후 아파트 대신 서초구 반포동, 용산구 한남동 등의 초고가 신축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압구정 50억원 이상 아파트 매수인 주소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압구정 50억원 이상 아파트 매수인 주소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매수인 가운데 대출 규제를 교묘하게 회피해 매입 자금을 조달한 경우도 있었다. 매도인이 근저당권 설정을 하고 잔금 일부를 나중에 받는 약정을 하거나 대부업체에서 매입 자금의 절반가량을 대출한 사례도 있다.

D씨는 지난해 12월 한 법인으로부터 현대2차 전용 198.41㎡를 50억원에 매수했다. 확인 결과 이 아파트를 매도한 법인은 D씨가 운영하는 병원과 주소가 같았다. 매매 계약 후 곧바로 임대를 내준 갭투자 사례도 최소 8건으로 추정됐다.

최근 압구정동 재건축 시계는 빠르게 돌고 있다. 압구정지구 특별계획구역은 6개로 나뉘는 데, 이 중 4개 구역이 조합설립인가를 마쳤다. 나머지 2개 구역도 조합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6·17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원이 2년 실거주해야 새 아파트 입주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조합 설립 신청을 마친 단지는 실거주 의무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또한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이 설립인가를 받은 뒤에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된다.

규제 적용 전 거래를 마치려는 매수·매도인이 많아지면서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2018년 4월 4건까지 줄었던 압구정동 아파트 거래는 지난해 11월 75건, 12월 80건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비수기인 올해 1~4월에도 107건(월평균 27건)이 거래됐다. 거래가 늘면서 가격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압구정동 아파트의 전용면적 1㎡당 평균 매매가격은 문 정부 출범 초기 1756만원이었는데, 지난달 3258만원으로 86.5% 뛰었다. 지난달 가격을 3.3㎡(평)로 환산하면 1억753만원이다.

그렇다면 압구정 아파트 재건축은 앞으로 어떻게 추진될까. 압구정동 재건축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27일 이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대책이 발효된 이후 압구정동에서 신고된 아파트 매매는 한 건도 없다. 거래는 끊겼지만 호가는 더 올랐다. 압구정동 한 공인중개사는 “팔아야 할 사람은 이미 다 팔았다고 보면 된다”며 “남은 집주인은 앞으로 값이 더 오를 테니 시장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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