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랜덤채팅 '아이스방' 은밀한 만남…필로폰 거래 소굴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 자료사진. [연합뉴스, 여성국 기자]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 자료사진. [연합뉴스, 여성국 기자]

미성년자 성 착취‧성매매 등 성범죄의 통로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온 랜덤채팅 앱이 마약 범죄의 창구로도 활용된 것으로 드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익명의 상대와도 손쉽게 채팅을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의 특성을 활용해 손쉽게 마약을 구하고 수사기관의 추적까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름간 채팅앱으로 만난 마약 공범들

2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12단독 박창희 판사가 지난 20일 유죄 판결을 내린 사건에서 채팅 앱의 용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 판사는 박모(29)씨가 지난 2월 16일부터 3월 3일까지 16일간 7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박씨가 2~3일에 한 번꼴로 필로폰을 투약할 수 있었던 건 랜덤채팅 앱을 통해 마약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다른 3명의 남성을 각각 만나 가며 모텔에서 필로폰을 함께 주사했다. 투약 장소는 서울 송파구부터 경북 구미의 모텔 등 전국구였다. 이들은 모두 같은 앱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20대 여성인 박씨는 30‧40‧50대 남성을 따로 만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출소 직후 범죄…앱은 매매 창구 

경찰 등에 따르면 마약범들은 랜덤채팅 앱에 ‘아이스’, ‘얼음’ 등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작성해 놓으면 이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만난다고 한다. A씨의 경우, 지난해 4월 징역 8월을 선고받는 등 마약 관련 전과가 2회나 있었지만,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랜덤채팅 앱을 사용했다고 한다.

경찰이 적발한 마약. 사진 인천경찰청

경찰이 적발한 마약. 사진 인천경찰청

랜덤채팅 앱은 함께 투약할 사람을 찾는 것뿐 아니라 매매 수법을 공유하는 메신저 역할도 했다. 대전에서는 지난해 2월과 8월 같은 랜덤채팅 앱을 통해 필로폰과 대마를 각각 200만원과 80만원에 구매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채팅 앱에서 거래 장소를 정해 상가 실외기 뒤편에 돈을 놓고 그 돈을 챙긴 판매자가 같은 장소에 마약을 놓는 ‘던지기’ 방식의 거래가 성사됐다.

낮아지는 마약범 연령

랜덤채팅은 이른바 ‘조건만남’이라 불리는 성매매의 창구로도 이용된다.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가 랜덤채팅 앱과 관련한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 고시’를 시행한 것도 그래서다. 청소년의 불건전 교제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성인인증 절차를 거쳐 성인만 이용할 수 있게 했더니, 이젠 마약과 같은 성인 범죄에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약 수사를 전문으로 한 경찰 간부는 “최근 몇 년 사이 마약 유통 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다”며 “마약 투여자의 연령이 낮아지는 등 문제가 커졌지만, 랜덤채팅 앱을 통한 범죄는 검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화번호 인증 정도로는 차명폰‧대포폰 사용 범죄자를 검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검찰청 마약백서에 따르면 2016년 마약류 범죄를 저지른 20대는 1842명으로 전체의 13%였지만, 2019년엔 3521명(21.9%)으로 급증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