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꽃 예쁘고 향기나는 쥐똥나무…근데 이름이 왜 그래?

중앙일보

입력 2021.05.26 07:00

업데이트 2021.05.26 09:05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93)

아침부터 작정하고 마당 설거지를 한다. 잠시 쉬고 있으려니 귀촌한 이웃 지인이 잘 가꾼 정원을 구경 가자고 부른다. 나름 정원 가꾸기 선진지 견학이라 따라나섰다.

여름으로 가는 정원 풍경은 꽃 잔치가 따로 없다. 눈이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꽃구경을 하다 보니 예쁘고 화려한 것은 모두 거금의 몸값을 하는 수종이다. 배경도 지지대도 한 송이 꽃을 위해 배치되었다. 여름엔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을 쳐주고 겨울엔 동사를 막으려 이불을 싸서 동여매 준다. 비싼 만큼 까탈스러워 죽기도 잘한단다. 몸값은 인간이 정해놓고 성에 차게 자라지 않으면 값어치를 나무란다. 돈과 명예 등 온갖 굴레의 서열 속 화려한 이면에 소심하게 살고 있는 인간 세상과 다를 바 없다. 비싼 나무에는 정원사가 붙는다. 사람이 나무의 시중을 드는 것 같다.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자태가 늠름하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잘 나고 볼 일이다.

혀 꼬이는 수입종의 이름은 몇 번을 들어도 외우기 어렵다. 꽃무리에 ‘으아리’라는 이름표를 단 꽃을 보니 지인이 생각나 사진을 보내며 웃는다. 화려하고 예쁘기가 이름하고는 안 어울린다. 순희라는 이름을 가진 지인의 남편이 “당신은 콧대 높고 까칠하니 이름만 순희야”라고 부부 싸움 중 투덜거리더란 말에 크게 웃었는데, 으아리 꽃을 보니 그가 생각났다. 꽃 이름은 누가 짓는 건지 궁금해진다.

여름으로 가는 정원 풍경은 꽃 잔치가 따로 없다. 눈이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사진 pixabay]

여름으로 가는 정원 풍경은 꽃 잔치가 따로 없다. 눈이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사진 pixabay]

블루베리, 수국, 장미, 명자, 보리수 등등. 내 집 마당을 차지한 이 나무들은 나무젓가락 같은 새순 가지를 얻어 와 삽목해 기른 것들이다. 환경과 위치가 안 맞으면 잘라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심어도 부담이 없다. 마음에 드는 나무가 있으면 한 가지 꺾어 와서 아기 키우듯 하다 보니 제 목숨을 부여잡고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잘 큰다. 그래도 1m 키를 키우려면 3년은 지나야 한다. 성격 급한 사람은 못 기다린다. 그런데, 그렇게 한 가지 꺾어 와 쉽게 삽목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비싼 만큼 정성을 들여 키운 묘목인데 한두 가지 정도 얻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고 공짜로 얻을 궁리만 했다. 다음에 갈 땐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다.

오늘 방문한 아름다운 정원엔 시 한 편에 담긴 주인공 나무가 있었다. 쥐똥나무다. 이른 아침, 한 편의 시를 감동적으로 읽어서인가 이 나무를 보는 순간 나는 바로 알아보았다. 입구부터 화려하게 줄 서서 몸매를 과시하는 여러 비싼 묘목들에 비켜서서 출구 한쪽에 조용히 서 있다. 정말 쥐똥같이 생긴 꽃들이 조롱조롱 열렸다. 향기도 좋다. 꽃이 저리 예쁜데 이름을 왜 그리 지었을까? 이름이 운명을 좌우하는 세상이구만….

이름값 하는 묘목들 사이에 숨은 듯한 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는 얼마에 사신 거예요?”라고 물으니 산 것이 아니란다. 뒷산에 많으니 언제든 와서 캐 가란다. 대신 향기도 안 나는 비싼 묘목 소개가 잠꼬대같이 귓등에서 흩어진다.

집에 돌아와 종묘상에서 보낸 묘목 판매 책자에서 쥐똥나무를 찾았다. 수입 묘목 값은 거액인데 토종 쥐똥나무는 동전으로 해결될 만큼 싼 몸값이라 놀랍다.

“쥐똥나무야, 소심한 나도 눈치껏 아등바등 애쓰며 살았단다, 글쎄~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물보단 건강이 서열이 되는 나이가 오더라고, 그러니 우쨌든 살아남아 보자” 중얼중얼하며 주문번호를 눌렀다. 지인이 보내 준 시 한 편 곁들인다.

입구부터 화려하게 줄 서서 몸매를 과시하는 여러 비싼 묘목 사이에서 조용히 비켜 서 있는 쥐똥나무. [사진 pixabay]

입구부터 화려하게 줄 서서 몸매를 과시하는 여러 비싼 묘목 사이에서 조용히 비켜 서 있는 쥐똥나무. [사진 pixabay]

쥐똥나무 
- 마경덕

늘 고만고만한 쥐똥나무
허리쯤 오는 제 키를
원래 그렇다고 믿는 눈치다
해마다 전지가위에 길들여지더니
공원 울타리 노릇이나 하면서 이대로 늙어갈 모양이다

꽃 같지도 않다고,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주눅이 든
쥐똥나무는 소심형
지난겨울 쥐똥처럼 생긴 까만 열매를 들고 서서
이걸 어디에 숨기나 쩔쩔매는 것을 보았다

쥐똥냄새 나는 이름이 싫다고
말도 못하는 쥐똥나무
이렇게 고운 향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 번도 각주를 달지 않은 쥐똥나무

겉모습에 취한 세상
향기는 보지 않고 쥐똥만 보는 시대,
쥐똥나무야 미안하다

공원에 나갔다가 반성문 한 장 쓰고 돌아왔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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