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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차는 과시 아니면 졸부?… 하루1000명 몰리는 자동차 문화 성지에선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성수동 뚝섬역 인근 골목에 들어서면 커다란 분홍색 컨테이너가 확 눈에 띈다. 영어로 ‘Peaches(피치스)’란 로고가 쓰여있다. 복숭아색의 컨테이너에 다가가면 2314㎡(약 700평) 남짓의 널찍한 공간이 펼쳐지고 1970년대식 포르쉐가 매끈한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좁은 길을 따라 고즈넉한 정원을 돌면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다운타우너(수제 버거)’와 ‘노티드 도넛’도 보인다. 그 가운데로 슈퍼카가 위풍당당히 버티고 있다. 종잡을 수 없지만 뭔가 흥분되는 이 곳은 지난달 29일 문을 연 자동차 문화공간 ‘피치스 도원’이다.

성수동에 위치한 자동차 문화 기반 복합 문화공간 피치스 도원. 사진 피치스, 한국타이어

성수동에 위치한 자동차 문화 기반 복합 문화공간 피치스 도원. 사진 피치스, 한국타이어

피치스 스티커가 뭐길래…

2018년 설립된 피치스는 자동차와 관련한 많은 일을 한다. 영상을 만들고, 패션 상품도 만들고, 스타일링(튜닝)도 하는 ‘자동차 문화 브랜드’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피치스 여인택(32) 대표는 “한국에선 진정한 자동차 문화가 없다시피 한다. 필수적인 운송 수단이거나 성공의 상징 정도로 정형화된 게 안타까웠다”면서 “차 문화를 다양한 문화 요소와 결합해 더 친숙하고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어 피치스를 만들었다”고 했다.

음악과 패션을 결합해 새로운 감각으로 자동차 문화를 선보이는 피치스는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매달 1500장으로 한정수량만 판매되는 피치스 스티커를 구하려는 이들도 많고, 길거리엔 피치스 스티커를 붙이고 달리는 차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피치스 공식 인스타그램과 여 대표의 팔로워는 10만 명을 넘고,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의 조회 수도 6000만회 이상이다.

피치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패션 디자이너, 뮤지션 등의 아티스트 인력으로 이루어져있다. 사진 피치스, 한국타이어  .

피치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패션 디자이너, 뮤지션 등의 아티스트 인력으로 이루어져있다. 사진 피치스, 한국타이어 .

세계적으로도 가장 힙한 자동차 문화 브랜드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먼저 협업을 제안해 온다. 유명 자동차 브랜드 ‘포르쉐’ ‘BMW M’ ‘메르세데스 AMG’를 비롯해 ‘나이키’ ‘워너브러더스’ ‘코카콜라’ 등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로 영상 콘텐트를 만드는 일이지만 관련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거나, 커뮤니티 이벤트·전시 행사 등을 개최하는 등 자동차를 매개로 여러 문화 활동을 진행 중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분 투자를 통해 피치스와 새로운 사업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피치스와 함께 ‘벨로스터N’ 영상 캠페인을 만들었는데, 기존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볼 수 없었던 감각적 시도로 주목받았다. 보수적 기업문화를 가진 현대자동차가 상업 광고 첫 화면에 다른 브랜드 로고를 내보내고 피치스 로고가 박힌 휠캡을 생산한 것은 업계에서도 이슈가 됐다.

현대 벨로스터N과 피치스가 협업해 제작한 영상 캠페인. 사진 유튜브 캡처

현대 벨로스터N과 피치스가 협업해 제작한 영상 캠페인. 사진 유튜브 캡처

어린아이, 여성도 즐기세요

피치스 도원은 자동차라는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끈끈하게 뭉칠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자성어 ‘도원결의’에서 이름을 따왔다. 생소할 수 있는 스트리트 자동차 문화를 대중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노티드 도넛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요식업 브랜드와 손을 잡았다.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엔 하루 1000~2000명 정도가 방문한다. 5월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이 찾았다. 여 대표는 “가족끼리 방문해 엄마는 도넛을 먹고, 아빠는 자동차 구경하고 아이는 미니카 트랙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피치스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중들에겐 생소할 수 있는 스트리트 자동차 문화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유명 외식 브랜드와도 협업해 공간을 구성했다. 사진 피치스, 한국 타이어

대중들에겐 생소할 수 있는 스트리트 자동차 문화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유명 외식 브랜드와도 협업해 공간을 구성했다. 사진 피치스, 한국 타이어

사실 한국엔 자동차 튜닝이나 슈퍼카·클래식카 등 자동차를 드러내며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 차를 통해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과시하고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움, 동호회 중심으로 확산한 자동차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반감 등이 뒤섞인 탓이다. 여 대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이다.

여 대표는 “여기엔 차주의 속도위반이나 갑질 등 비매너 행동도 분명 책임이 있다”며 “차 가격에 상관없이 멋진 태도를 가지고 차 문화를 서로 존중하며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놀이터를 제공하는 게 피치스의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젊은 세대들은 정장을 입고 운전석에 앉아 도심을 질주하는 광고 속 뻔한 이미지에 심드렁하다. 꼭 신차가 아니라 본인 스타일의 구형 차를 더 선호하는 등 다양한 선택권을 원하고 차를 통해 개성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피치스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콘텐트를 만들고 자동차라는 취향을 멋지게 드러낼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피치스 도원의 전시 공간. 피치스가 작업한 스타일링 카 등을 볼 수 있다. 사진 피치스, 한국 타이어

피치스 도원의 전시 공간. 피치스가 작업한 스타일링 카 등을 볼 수 있다. 사진 피치스, 한국 타이어

국내 자동차 업계도 피치스가 뛰어든 틈새시장을 주목한다. 우수한 기술로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동차를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려는 새로운 세대를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피치스는 최고의 파트너다. 여 대표는 “나이키가 일부 마니아층의 스포츠로 머물 뻔 했던 농구를 대중화시켰듯이 자동차계의 나이키 같은 브랜드가 되고 싶다”며 “피치스를 통해 사람들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마음을 더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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