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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행도 무죄 된적 있다…정민씨 친구 새 쟁점, 블랙아웃

중앙일보

입력

한강에서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새롭게 공개한 한강공원 CCTV 장면. 친구 A씨가 펜스(울타리)를 넘는 장면이 담겨 있다. JTBC ‘뉴스룸’ 화면 캡처

한강에서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새롭게 공개한 한강공원 CCTV 장면. 친구 A씨가 펜스(울타리)를 넘는 장면이 담겨 있다. JTBC ‘뉴스룸’ 화면 캡처

고 손정민(22)씨 사건에서 ‘블랙아웃’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그 법률적 의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에선 블랙아웃 인정 여부가 사건의 실체와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것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A씨 블랙아웃 아닌 것 같다”

한강에서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새롭게 공개한 한강공원 CCTV 장면. 친구 A씨가 펜스(울타리)를 넘는 장면이 담겨 있다. JTBC ‘뉴스룸’ 화면 캡처

한강에서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새롭게 공개한 한강공원 CCTV 장면. 친구 A씨가 펜스(울타리)를 넘는 장면이 담겨 있다. JTBC ‘뉴스룸’ 화면 캡처

25일 정민씨 친구 A씨를 대리하는 양정근 원앤파트너스 변호사는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A씨의 ‘블랙아웃’ 상태를 둘러싸고 커지는 의혹에 대해 반박 입장을 내놓았다. 양 변호사는 “(CCTV에 찍힌) 한 장면을 두고 취하지 않았다는 루머들이 도는데 다른 자료들을 보면 만취 상태를 알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며 “오전 6시 10분을 넘어 집에 돌아왔을 때 토하는 장면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민씨 아버지는 실종 당일 오전 5시 12분쯤 A씨 가족이 한강공원에 도착한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A씨와 그의 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성인 남성 허리 높이의 펜스(울타리)를 넘어 한강공원으로 향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에 대해 손씨는 “술 취한 기운이 없어 보인다”며 “A씨가 사건 당시 블랙아웃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취지의 의문을 제기했다.

블랙아웃 여부가 혐의 좌우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블랙아웃 논쟁’의 결과가 정민씨 사건을 둘러싼 혐의 입증을 좌우할 수 있다고 본다. ‘블랙아웃’(Black-out)은 과도한 음주로 인해 알코올 혈중농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기억상실증을 말한다. 법원은 판례를 통해 블랙아웃을 “알코올이 임시 기억 저장소인 해마세포의 활동을 저하시켜 정보의 입력과 해석에 악영향을 주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 활동을 하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겉으로 볼 때는 멀쩡했던 음주자가 시간이 지난 뒤 취해 있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판례가 성립될 정도로 형사사건에서 블랙아웃은 혐의 입증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준강간죄나 준강제추행죄 등에서 유무죄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행 형법상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서 간음 또는 추행을 할 경우 강간 또는 강제추행죄와 동일하게 처벌받는다.

피해자 ‘블랙아웃’이 무죄 이유 되기도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 씨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25일 오전 손씨가 실종됐던 서울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진실을 규명하는 메모와 화환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 씨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25일 오전 손씨가 실종됐던 서울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진실을 규명하는 메모와 화환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블랙아웃은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신종식 변호사는 “법원은 ‘심신상실’ 등 의식이 없는 상태와 주취로 인한 일시적 기억 상실인 ‘블랙아웃’ 상태를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며 “간음·추행 당시 만취한 피해자가 심신상실에 이르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가해자에게 준강간죄·준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관계 당시에 동의했거나 용인한 것을 피해자가 추후에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준강간죄나 준강제추행죄로 입건되거나 기소된 가해자는 “관계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에 이르진 않고 단지 블랙아웃 증상을 보였다”는 주장을 입증해 혐의없음 처분 또는 무죄판결을 선고받기도 한다.

대법원 “블랙아웃 쉽게 인정해선 안 돼”

다만 가해자의 ‘블랙아웃’ 주장이 진술만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준강제추행 사건에서 피해자의 블랙아웃으로 2심에서 무죄가 나온 판결에 대한 상고심에서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심신상실 상태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음주 후 필름이 끊겼다’고 진술한 경우 음주량과 음주 속도 등 사정들을 심리하지 않은 채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쉽사리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알코올 블랙아웃을 주장하는 경우 범행 당시 피해자의 상태와 피고인과 평소 관계, 만나게 된 경위, 사건 이후 피고인과 피해자의 반응 등 제반 사정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최면수사 전문가는 “블랙아웃 상태는 대뇌에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것과 똑같다”며 “애초에 저장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최면수사 기법을 통해서도 당시의 기억을 밝혀낼 수 없어 이 경우 당사자를 통해 범행 당시의 전후 사정을 완전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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