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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영하 20도 원주 역발상 “바나나·커피 키워 1.5억 벌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원프리카'는 강원도에서 보기 드문 열대작물을 재배하는 농장 겸 카페다. 이학원씨가 주렁주렁 열린 바나나를 보여주는 모습.

'원프리카'는 강원도에서 보기 드문 열대작물을 재배하는 농장 겸 카페다. 이학원씨가 주렁주렁 열린 바나나를 보여주는 모습.

국내에서 아열대작물 재배가 활발하다. 바나나뿐 아니라 망고·파파야처럼 동남아에 여행 가서나 먹던 과일이 제주도나 남부 지방에서 주렁주렁 열린다. 심지어 국내에서 가장 추운 강원도 내륙에서 바나나와 커피를 재배하는 농가도 등장했다. 감자와 메밀의 고장에서 나는 바나나 맛이 궁금해 지난 21일 원주로 향했다.

전직 교도관의 열대작물 사랑

강원도에도 열대작물이 상륙했다. 지난해 삼척시농업기술센터가 바나나 시험재배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원주 사례는 다르다. 겨울 기온이 높은 삼척과 달리 원주는 겨울 최저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내륙이다. 지자체나 연구기관의 도움 없이 온전히 개인이 이룬 성과여서 더 눈길을 끈다.

2019년 은퇴한 이학원씨는 교도관으로 일하며 짬짬이 열대작물을 길렀다.

2019년 은퇴한 이학원씨는 교도관으로 일하며 짬짬이 열대작물을 길렀다.

주인공은 카페 겸 농장 '원프리카'를 운영하는 이학원(61)씨. 교도관으로 35년을 근무하며 틈틈이 식물을 가꿨던 이씨는 2014년 선물 받은 커피나무 두 그루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다. 커피나무가 새빨간 열매를 맺는 게 신기해 고향 집 마당을 농장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이어 커피·블루베리·다래 같은 유실수를 심었고, 바나나 재배까지 도전했다.

“국내에서 재배한 커피는 음료로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은데 바나나는 키워서 먹을 수 있다는 말에 혹했어요. 열매를 먹어보니 수입산에 절대 뒤지지 않더라고요.”

원프리카에서는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도 볼 수 있다.

원프리카에서는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도 볼 수 있다.

이씨는 온실 같은 비닐하우스를 지어 본격적으로 열대작물 재배에 나섰다. 바나나뿐 아니라 파파야·구아바·패션프루트 같은 작물도 길렀다. 겨울 추위가 혹독한 강원도에서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꿋꿋이 작물을 심었다. 지난겨울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추위 탓에 한 달 난방비를 100만원 가까이 쓰기도 했다. 지금은 커피나무 150그루, 바나나 약 300주(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까지 재배량을 늘렸다.

수입산보다 강한 바나나 향

이씨는 2019년 은퇴한 뒤 농업과 제조업, 관광을 접목한 6차 산업에 눈을 떴다. 약 8000㎡(2600평) 면적의 농장을 관광농원으로 꾸미고, 아내가 운영하던 한식당을 지난해 9월 카페 '원프리카(원주+아프리카)'로 바꿨다. 체험 프로그램을 접목해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 열대작물을 보고 느끼도록 했다. 코로나 탓에 카페를 개업하고 얼마 안 있다가 체험 프로그램을 중단했는데도 현재까지 매출 약 1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커피나무와 바나나를 관상용으로 판매하고, 블루베리·다래 등 과실을 팔아서 거둔 수익이다.

“어른에게는 커피의 생장 과정과 핸드 드립 요령을 알려주었죠. 아이에게는 바나나에 대해 알려줬는데 간식처럼 좋아하는 과일이어서인지 상당한 호기심을 보이더라고요.”

카페 '원프리카'는 지난해 문을 열었다. 카페 뒷마당에 농장이 있다.

카페 '원프리카'는 지난해 문을 열었다. 카페 뒷마당에 농장이 있다.

원프리카는 커피뿐 아니라 직접 재배한 다래로 만든 주스와 스무디도 판다. 음료를 사면 작은 바구니를 주는데 이걸 가지고 뒷마당에서 식물을 구경하며 놀 수 있다. 농장에서 열대과일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들을 수 있고, 바나나가 익으면 시식도 가능하다. 지난 21일 열대농장에는 바나나 꽃도 피어 있었다. 바나나 한 송이를 따 먹어보니 바다 건너온 수입산보다 향이 훨씬 신선했고 과육도 부드러웠다.

'원프리카'에서 재배한 바나나는 수입산 바나나보다 훨씬 신선한 향이 났다.

'원프리카'에서 재배한 바나나는 수입산 바나나보다 훨씬 신선한 향이 났다.

이씨는 올여름 선보일 바나나길 조성 작업에 한창이다. 약 5m 높이로 자라는 바나나를 40m 길에 터널처럼 심어서 사이를 걷게 할 생각이다. 메타세콰이어길, 벚꽃길처럼 말이다. 6~7월쯤 공개할 예정이다. 이씨는 “원주에서 열대작물이 열리는 것도 신기한데 바나나길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어할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원주=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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