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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 로켓과 폭탄보다 더 강한 무기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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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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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2021년 가자 전쟁’이 5월 21일의 휴전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파장은 만만치 않다. 가자에서 248명, 이스라엘에서 13명이 각각 숨지는 유혈극을 겪고도 아무런 상황 개선 없이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로켓(유도되지 않는 발사 무기체계) 4360발을 쏘고 이스라엘 전투기가 수백 회 출격했지만, 양측 모두 아무런 이득이 없다.

하마스, 전력격차에도 선제공격 #홍보·이념·정치 하이브리드 전쟁 #이스라엘, 폭격에도 참수 불발 #안보환경 유사한 한반도에 교훈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공격에 몇 배 단호하게 대응했지만, 국민 반응은 시큰둥하다. 현지 방송인 채널12가 휴전 뒤 실시한 첫 여론조사를 일간지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이 23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흥미롭다. 이번 전쟁에서 ‘어느 쪽도 이기지 못했다’는 의견이 50%, ‘이스라엘 승리’는 28%, ‘하마스 승리’가 16%였다. 휴전으로 평화를 얻었다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휴전이 ‘3년 이상 지속할 것’이라는 의견은 9%에 지나지 않았고, ‘1년을 가지 않을 것’으로 본 사람이 43%나 됐다.

지난 11일 이스라엘 남부 도시 에슈켈론에서 아이언돔이 하마스의 로켓포를 요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1일 이스라엘 남부 도시 에슈켈론에서 아이언돔이 하마스의 로켓포를 요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휴전도 조사 대상의 35%만 지지했고, 47%는 반대했다. 엄청난 전력 차에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무너뜨리고 ‘체제전환’을 이루지 못했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주목되는 건 상식을 뛰어넘는 하마스의 의사결정과 전쟁 수행 방식이다. 통상 전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지난 10일 ‘군사 대국’ 이스라엘을 로켓으로 선제공격한 측은 하마스다. 압도적인 군사력도 상대의 도발을 막는 억지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이 재래식 전력과 정보·사이버전 역량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11일간 대대적인 공중 폭격을 하고도 하마스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2019년 국방비 지출은 226억 달러로 세계 14위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공식환율 기준 29억3800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GDP의 7.7배를 군사비로 쓰는 나라를 향해 ‘달걀로 바위 치기’식으로 대항했다.

이스라엘은 전투기 F-15를 83기, F-16을 225기 운용한다. 폭격 지점을 사전 통보하고 폭탄을 투하했지만, 민간인 피해를 막지 못했다. 공중 폭격으로 하마스 군사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지하시설물을 100㎞나 파괴했다지만 로켓 공격을 중지시키진 못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고 있는 가자시티. [AP=연합뉴스]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고 있는 가자시티. [AP=연합뉴스]

하마스는 비용이 적게 드는 로켓에 매달렸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스테이티스타는 하마스가 사거리 12~160㎞의 로켓을 9종류 이상 자체 개발·생산한다고 전했다. 이란과 시리아가 지원한 로켓도 갖췄다.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하마스의 로켓 무기고에는 사거리 100~160㎞짜리 수십 발, 70~80㎞짜리 수백 발, 40~45㎞짜리 5000~6000발이 쌓여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주변을 공격할 수 있는 박격포 수천 문도 보유했다.

이스라엘 최대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와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75㎞, 의회와 중앙행정기관이 몰린 예루살렘은 80㎞쯤 떨어져 있는데 하마스 로켓이 떨어졌다. 이스라엘 전역이 하마스의 타격 범위 안이다.

더욱 놀라운 건 새로운 전쟁 양상이다. 전 세계는 2011년 개발된 아이언 돔 같은 독특하고 효과 큰 방어무기에 주목했지만, 물밑에선 도·감청과 사이버전 등 정보 전력 경쟁과 홍보전·이념전·정치전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하마스는 객관적 전력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국제 여론에 매달렸다. 전 세계는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여론이 나뉘었다. 적과 아군의 구분이 모호하고 재래식 전력보다 다른 요소들이 전쟁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

숫자로 보는 이스라엘-가자 충돌

숫자로 보는 이스라엘-가자 충돌

이번 전쟁을 새로운 21세기형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1년 가자 전쟁은 정규전은 물론 비정규전·사이버전·정보전에 정치전·홍보전까지 조합한 전방위 전쟁이었다. 군사 외에도 종교·사상·심리·문화·사이버역량·정치·경제 등 모든 사회 요소를 무기 삼아 싸운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전쟁이었다.

하마스는 홍보전술을 앞세웠다. 인간의 공포심과 동정심도 무기화했다. 하마스는 사망자 발표 시 ‘어린이 몇 명, 여성 몇 명 포함’을 꼭 집어넣었다. 여론이 들끓었다. 인적·물적 피해를 볼수록 여론전에서 유리해졌다.

가자 전쟁은 북한과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북한은 하마스처럼 로켓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핵과 장거리 미사일에 더해서 사거리도 길고 유도도 되는 미사일급 장사포까지 북한은 다양한 로켓 무기를 개발해왔다. 군사 시설을 지하화하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북한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바탕인 비정규전·사이버전·정보전과 정치전·홍보전에도 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가자지구보다 면적에서 330배, 인구에서 13배가 크다. 2021년 5월의 가자 전쟁을 계기로 이런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