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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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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영화 ‘튤립 피버’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을 다룬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자본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투자상품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오스만 제국에서 들어온 튤립이었다. 희귀한 튤립이 부의 척도로 간주되면서 1636년부터 가격이 급등했다. 이 무렵 흑사병이 네덜란드에서 기승을 부리며 인구가 감소했는데 이러한 불확실성도 튤립 광풍을 부추겼다. 튤립 알뿌리 하나는 2500길더까지 올랐는데, 이는 당시 소 200마리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1633~1637년 네덜란드에서 튤립 거래액은 약 4000만 길더로 추산되는데, 이것은 암스테르담 은행의 예치금보다 10배 이상 많은 액수였다. 또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회사인 동인도회사가 만들어질 때 투자된 650만 길더보다도 3배가량 많았다.

역지사지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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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잘 알려져 있다. 1636년 절정에 달했던 튤립 가격은 1637년 2월부터 갑자기 폭락하기 시작했고, 불과 4개월 만에 최고점에서 90% 이상 빠져 역사상 최악의 폭락으로 기록됐다. 결국 네덜란드 정부는 1636년 11월 이전의 계약을 모두 무효로 하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았다.

다만 튤립 광풍이 완전히 허망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희귀 튤립은 여전히 고가에 거래됐고, 튤립 산업의 발달은 네덜란드 경제에도 기여했다. 튤립 광풍에 비교되는 암호 화폐의 폭등과 폭락은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또, 세계 자본주의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해진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