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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765조 사상 최대 가계빚, 출구전략 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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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765조원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많았다. 2003년 이전 가계신용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사실상 최대 기록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사진은 25일 서울 시내 거리에 붙어있는 대출 관련 전단.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765조원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많았다. 2003년 이전 가계신용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사실상 최대 기록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사진은 25일 서울 시내 거리에 붙어있는 대출 관련 전단. [연합뉴스]

가계부채가 적신호를 넘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765조원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신용이란 한 가정(세대 단위 경제주체)이 은행이나 보험·대부업체 등 금융사에서 빌린 돈과 신용카드 사용액 등 외상 구매액을 더한 것을 말한다. 더 심각한 것은 기록적인 가계빚 속에 인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4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3% 상승했다. 이는 2017년 8월(2.5%) 이후 최대 폭의 상승이다. 정부의 물가관리 목표치인 2%를 뛰어넘은 것이다.

인플레로 금리 오르면 이자 눈덩이 #자산가격 하락 겹쳐 개인파산 우려

기록적인 가계부채의 주원인은 소위 ‘영끌’과 ‘빚투’다. 부동산 값 급등세 속에 영혼이라도 끌어모을 듯 갖은 수단으로 돈을 빌려 집을 마련하는 사람들과 빚을 내서라도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해 벼락거지를 탈출해 보겠다는 청년들이 몸부림친 결과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빗썸·업비트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 가운데 32.7%(81만6000명)가 20대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30대가 30.8%(76만8775명)를 차지했다. 암호화폐의 신규 투자자 절반이 2030세대란 얘기다.

가계부채 급증에 인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이는 건 우리나라뿐 아니다. 2년째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속에 각국 정부의 재정 지원 등으로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위험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벌써부터 긴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필요성이 제기됐다.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내리는 등 금융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발 금융 불안은 우리나라 등 전 세계에 연쇄 파급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결국 우리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고, 그렇게 되면 부채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계 파산 위험이 커진다.

그간 수차례 경고 속에 충분히 예견된 일이지만,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어머니와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동반자살했다고 한다. 빚을 내 암호화폐를 샀다가 수십억원을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칫 가계부채발 금융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시장은 오는 27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 통화 당국은 지금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고, 앞으로 닥칠 금리 인상과 자산가격 하락에 대비할 것을 주문하는 등 보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길 바란다. 그게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가계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빚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