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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호남과 친문 아우르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대권 플랜

중앙일보

입력

■ “20세 청년에게 1억원 지급하는 ‘미래씨앗통장’은 점진적으로 재원 마련”
■ “민주당 대선 경선 룰은 지도부가 정할 일… 호남은 본선 경쟁력 따질 것”
■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용된 민주당 적통으로서 자부심 가져”
■ “코로나19 백신 공급 우려는 기우 될 것… 부동산은 수급 통해 안정시켜야”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코로나19 이후의 회복’을 시대정신으로 설정했다. 청년과 서민·중산층의 주머니를 채워주되 기업가 정신을 해치지 않는 ‘질 좋은 성장’을 지향한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코로나19 이후의 회복’을 시대정신으로 설정했다. 청년과 서민·중산층의 주머니를 채워주되 기업가 정신을 해치지 않는 ‘질 좋은 성장’을 지향한다.


정세균(71) 전 국무총리는 최근 에세이 [수상록]을 내놨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초창기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마스크 가격을 후려치지 말라’고 조달청에 지시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게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잖아요? 돈벌이가 되니 밤낮없이 일을 하는 거예요.”

“나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용된 민주당 적통”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에도 정 전 총리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소개돼 있다. “국회의장이 된 후, 세균맨 인형을 선물 받았고 책상에 놓았다. 일부에서 ‘세균맨은 일본 캐릭터인데, 왜 대한민국 국회의장실에 있느냐?’란 지적이 들어왔다. 지지자들은 ‘그러면 한국 만화 캐릭터 중에서 정세균 의장과 닮은 걸 찾으면 되지 않느냐?’며 뽀로로의 루피 인형을 선물했다. 국무총리에 취임한 이후에도 그의 책상에 세균맨과 루피 인형이 나란히 있는 게 확인됐다.”

마스크 생산업자(시장)의 욕망을 이해하고, 굳이 일본 캐릭터 인형을 치우지 않고 한국 캐릭터 인형과 같이 두는 포용력은 정 전 총리의 온건하고 실용적인 이미지가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쌍용그룹 임원 출신, 국회의원 6번 당선, 당대표와 산업부 장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까지 지낸 그에게 남은 공직은 대통령뿐이다. 물론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저 거기에 있으니 오르는’ 산(山)이 아니다. 5월 8일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정 전 총리는 ‘소명과 회복이라는 시대정신’을 출마 이유로 꺼냈다. 4·7 보궐선거의 승패를 가른 스윙보터(이해관계에 민감한 중도 성향)를 잡기 위해 대권 후보로서 어떤 콘텐트에 주력할 것인지, 정세균이라는 브랜드의 생각과 매력을 유권자들에게 스며들게 할 방편은 무엇인지를 묻고 들었다.

“인센티브를 줬더니 마스크 부족이 해결되더라”

2020년 12월 정세균(오른쪽) 당시 국무총리가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동석했다. 두 사람은 민주당 대선 후보를 놓고 경쟁 중이다. / 사진:경기도

2020년 12월 정세균(오른쪽) 당시 국무총리가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동석했다. 두 사람은 민주당 대선 후보를 놓고 경쟁 중이다. / 사진:경기도

[수상록]에서 스스로를 ‘꼰대’라 지칭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글을 남겼을 텐데.

“종사하는 분야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우리 신세대들에게(정치인으로 롱런한 나의 상황 대처와 생각이) 하나의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바르게 살아야 하느냐, 이익을 좇으며 살아야 하느냐’가 상충될 때, 이해관계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옳고 그름을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뜻을 전하고 싶었다.”

코로나19 대란 때 “(정부가 업자를 상대로) 마스크 가격을 후려치지 말라”고 당부했던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기업인 출신이다. 국민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공무원 사고에서 보면 싸게 사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너무 집착하면 물량 확보가 안 된다. 그럼 어떤 게 국민을 위한 것인가? 답은 뻔하다. 내가 마케팅 박사 출신이다.(웃음) 오히려 약간의 인센티브를 줬고, 주말 생산에는 가격을 더 줬다. (공급을 늘린 토대 위에서 수요를 조절하는) 마스크 5부제를 병행했더니 마스크 대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결국 시장과 통하는 경제정책이어야 주효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정 전 총리의 분수경제, 항아리경제, 질 좋은 성장론은 어떻게 시장의 효율성과 젊은 세대의 공정성을 품을 수 있을까?

“기회의 균등에 관한 젊은 세대의 고민에 공감한다. 기성세대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차원의 소통과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옛날에는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사다리가 모든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공평하게 주어졌는데 지금은 그 사다리를 걷어내는 상황이 됐다. 내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상속제도, ‘미래씨앗 통장’은 포퓰리즘과 성격이 다르다. 그냥 푼돈 나눠주는 임시방편으로는 자산불평등 상황을 바로잡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사회에 나갈 때 최소한의 출발이 가능한 자산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떠냐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20살이 되는 청년에게 1억원을 지급하겠다’는 미래씨앗통장의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하나?

“갑자기 돈이 어디서 떨어지나. 갑자기 예산을 늘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지금부터 신생아에 대해서 내년부터 일정 금액을 적립해서 20세가 될 때 지급하자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그 소스(재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 상속·증여세 쪽에서 활용하면 (증세 없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청년을 위한 최고의 복지 정책은 퍼주기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기업, 특히 대기업을 옥죄는 것부터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기본은 일자리다. 문제는 일자리가 만들고 싶다고 쉽게 만들어지느냐는 것이다. 우리 산업 구조는 소수의 재벌기업과 다수 중소기업이 있는 호리병 구조다. 우리 국민도 중산층이, 기업도 중견기업이 강화돼야 한다. 내가 (참여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끝내고 고민한 게 ‘고용 없는 성장’이었다. 우리(진보 진영) 쪽에서 그냥 성장만 이야기하면 매도당한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질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더니 아무도 시비를 안 걸더라.(웃음) ‘고용 있는 성장, 균형 있는 성장, 혁신주도 성장을 통해 추격경제가 아니라 선도경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분수경제는 낙수경제와 대비되는 용어로 비친다.

“그 핵심 중 하나로 최저임금 인상이 들어가 있다. 노동자에게 분배를 좀 더 해줘야 경제가 더 성장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 경제 기조였던 ‘낙수효과’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주장했다. 경제성장의 원천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밑에서 위로 올라가야지 재벌이 떨어뜨리는 것으로 안 되더라. 그래서 분수경제는 분배를 강조한 것이다.”

“단순한 인기보다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

2018년 5월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2018년 5월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담은 문재인 정부 J노믹스와 비슷한 결로 들린다.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쭉 이야기한 것을 관통하는 성격이다. 선후를 따지면 2011년 분수경제론 책을 냈으니까 내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소신에 변함은 없다.”

5월 6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단과 만났다. 사실상 첫 대권 행보인데 어떤 의미를 뒀나?

“우리 정부 들어와서 공정경제3법을 비롯해서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한 측면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조금 더 자유롭고 유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너무 과도하게 기업 활동을 옥죄거나 기업가 정신을 좌절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어떻게든 기업가 정신을 격려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경청할 만한 만남이었다. 다만 당장 무엇을 흔쾌하게 수용하기 힘든 측면은 있다. 그래도 소통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것은 반영하는 게 의미 있다고 본다.”

민주당 대표 경선이 끝났다. 출마 선언 타이밍을 생각보다 늦게 잡는 듯하다.

“아직 게임의 룰이 전혀 안 나와서 조금 이른 감이 있다. 국민들 말씀도 많이 듣고 있고, 나름대로 정책 개발도 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다.”

게임의 룰이 정해지지 않아서 출마 선언이 늦어진다?

“그런 측면도 있다. 그건(게임의 룰을 정하는 건) 당의 몫이다.”

정 전 총리를 돕는 캠프 측에선 ‘대선 경선 일정이 늦어져도 불리할 것 없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룰은 선수가 정하는 게 아니다. 주최 측이 정하는 것이다. 정권재창출의 일차적 책임은 당 지도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당의 지도부가 어떤 전략과 전술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안을 내놔야 한다. 그 과정에서 후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차례 총선에서 종로 험지에 출마해 보수당의 유력 후보를 이겼다. 그러나 대선은 전국 단위다. 몸으로 뛰어다닌다고 지지율을 뒤집기 쉽지 않다.

“전략, 전술이 종로 선거 때와 달라야 할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이다. 진정성을 갖고 국민과 소통하고, 정세균이라고 하는 정치인이 시대정신과 맞으면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코로나19 위기 극복 이후 ‘미래지향적 회복’이 시대정신이다. 일상의 회복, 경제 회복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이 중요하다. 원상회복이 아니라 전환기적 회복이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된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IMF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김대중 대통령처럼. 지금 코로나19 상처는 그 상흔이 그때보다 더 넓고 깊다. 단순한 인기보다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 경제를 필두로 외교·안보 역량 등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일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국민께서 그런 사람의 범주에 저를 포함시켜주신다면 기회는 만들어질 수 있다.”

지지율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2020년 8월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2020년 8월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총리로 일하느라 다른 후보보다 대선 행보가 늦었다. 정계에선 일단 정 전 총리가 거점인 호남 지지율부터 끌어올려야 한다고 보더라. 그렇게 하려면 역시 호남 기반인 이낙연 전 대표부터 넘어야 한다.

“(지지율이) 미리 올라가는 것보다 일정 시간을 두고 서서히 올라가서 결정적 타이밍에 정점에 이르면 가장 좋은 모양이 된다. 누가 먼저 출발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누가 먼저 골인하느냐로 결정되는 거 아닌가.”

호남만으로 국한해서 질문하자면 정 총리의 핵심 지지 기반은 전북 쪽이다. 상대적으로 호남 안에서도 전북과 광주·전남의 정서는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다.

“호남인들은 호남 사람이라고 해서 그냥 지지하지 않는다. 호남 특히 광주의 정치에 대한 감각이나 의식은 남다른 점이 있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보기에는 (호남 민심이) ‘누가 호남 사람이냐’가 아니라 ‘누가 본선 경쟁력이 있느냐’, ‘누가 중도층을 견인할 수 있느냐’를 볼 것 같다. 원래 선거는 중도가지고 싸우는 거 아닌가. 그리고 민주당은 (특정 계파나 지역에 치우치지 않도록) 국민경선으로 후보를 뽑는다.”

대권주자 정세균의 베이스는 호남과 친문이 양대 축으로 꼽힌다. 4월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리마인드시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나는 민주당의 적통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고, 국회에 진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나를 장관으로 발탁했고, 당대표로 밀어줬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나를 총리로 기용했다. 세 분 대통령에게 인정받은 행운아다. 우리 당원들이 그런 부분도 고려하지 않겠나 싶다. 가장 정통성 있고, 많은 일을 해봤던 ‘선수’를 한번 쓰실 수 있다고 본다.”

세 분 대통령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나는 어떤 일이든지 주어졌을 때 성과를 낸 사람이다. 성과를 내면 다음 일이 주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외곽조직인)연청(민주연합 청년동지회)이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내가 중앙회장을 했었다. 김대중 후보 대선 기획단에서 일하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자로서의 면모, 애민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다음에 노무현 후보 대선 기획단에서도 정책실장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서민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 중심의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고자 노력할 수 있었다. ‘정치가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가’, 그런 걸 함께 느끼는 시기였다. 두 분 대통령 모두 나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그 색깔을 내가 분양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과 우리 사회의 부족했던 점을 청산하는, 권력기관 개혁을 비롯해 법과 제도의 정비, 이런 쪽에 열정이 있다. 제가 세 분 대통령을 모시고 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에게 중책이 주어진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선출직이라면 문자 폭탄에 민감할 필요 없어”

정계에서는 정세균 전 총리가 호남과 친문의 지지를 확보한다면 민주당 대선 경선의 판세를 흔들 수 있다고 본다.

정계에서는 정세균 전 총리가 호남과 친문의 지지를 확보한다면 민주당 대선 경선의 판세를 흔들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일부 극성 친문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다. 이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듯하다는 말이 있다.

“(미소를 지으며) 유권자들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걸 받아들이는 측이 너무 스트레스받을 일은 아니다. ‘이 부분은 격려를 많이 하는가 보다’, ‘이 부분은 마땅찮게 생각하는가 보다’ 그냥 그렇게 느끼고 지나가면 될 일이지 그게 뭐 대단한 것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지적도 있다.

“시대마다 패션(특정한 시기의 유행)이 있다. 어떤 때는 낙선 운동도 하고, 도덕성이 강조되기도 하고, 국제화가 강조되기도 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아마 극성 당원들의 이런 것도 또 이렇게 패션처럼 지나갈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게 긍정적인 측면,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다 긍정적인 면만 있겠나. 그렇기에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 특히 선출직의 경우에는 그냥 ‘유권자나 지지자의 일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너무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집중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일부분이니까. 그게 전부인 양 생각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19 방역 총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지금 국민은 백신 공급과 집단 면역 시점에 대해 회의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걱정 안 하셔도 된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걱정을 부추기는 일은 지혜롭지 못하다. 누가 뭐래도 ‘K방역’은 세계 일류다. 이제 시즌2인 백신으로 넘어갔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는 차질 없이 이행될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스케줄은 빠듯한 게 아니고 약간의 차질이 있을 상황까지 고려해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백신이 초고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직도 안심할 순 없다. 그런 문제만 안 생기면 전혀 걱정할 일 없다. 그리고 우리 기업들도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신종플루 때를 떠올리면, 백신이 남아도 문제가 됐다.

“9900만 명 분량의 백신이면 사실은 남아돌 가능성이 있다. 일부는 (연말 집단면역 이후) 내년에 쓸 수 있도록 그런 것까지 정부는 다 (계획을) 해놓은 것이다. 사실은 4000만 명 분량으로 생각했다가 6000만 명, 7900만 명까지 갔다가 9900만 명 분량까지 늘렸다. 국민이 걱정하시니까 그 걱정 덜어드려야 하니까. 거기에 천문학적인 재정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중에서 일부라도 폐기되면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과 언론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그런 상황까지 고려해서 철저하게 대비했기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린다. 오히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회복을 어떻게 잘하느냐’, 이것이 더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집값 급등이 꼽힌다. 부동산을 안정시킬 대안이 있나?

“국민 누구나 다 자기 집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런 꿈을 투기꾼이 빼앗아가면 안 된다. 1가구 1주택자와 무주택자를 잘 보호하고, 무주택자들이 집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가 균등하게 잘 이뤄지게 하는 것이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투기수요는 억제하고 공급은 대폭 늘려서 수요와 공급이 시장에서 잘 맞아떨어져서 가격이 안정되는 것, 그게 우선이다. 그래서 선(先)가격안정, 후(後)합리화, 이것이 정부가 취해야 할 주택 정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내 소통의 자양분은 경청과 인내”

문재인 정부가 중시해온 공공임대주택 위주의 공급은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이 원하는 모양새가 아닐 수 있다.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중산층에게는 합리적 가격으로 자가(自家)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주거 빈곤층에게는 아주 저렴하게 장기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그런 전제 아래에서 세제 개편, 금융제도 등을 정비하는 과제가 있다. (세금, 대출 관련해서) 합리화(완화)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당장 하는 게 아니고 주택 가격이 안정된 연후에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최종적으로는 저렴한 장기임대주택에 들어간 다음 최선을 다해서 한 15년쯤 월급 받아서 저축하면, (정부는) 장기 모기지 같은 금융을 개발해서 자기 집을 보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책무라고 생각한다.”

국무총리 시절 책상에 둔 세균맨 인형과 루피 인형을 놓고 ‘건강한 한·일 관계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도 있더라.

“꿈보다 해몽이 좋을 수 있다.(웃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즈음에 젊은 남성이 세균맨 인형을 나에게 선물했다. 세균맨은 악당이지만 강인하니까, ‘강력하게 잘하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의정부에 있는 여고생이 손편지와 함께 뽀로로 인형을 보내줬다. 그 인형이 나와 닮았다고 하더라.(웃음) 이게 (정치적 속뜻 없는) 진실이다. 한·일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하는 건 우리의 숙명이다. 어려운 것은 좀 미루고, 쉬운 것부터 푸는 노력을 해야 우리 국민이 편안한 길이고, 과거사 문제도 완화하는 길이라고 본다.”

거의 항상 포커페이스가 유지되는 듯하다. 화를 낼 때가 있나?

“자주는 아니지만 있다. 격렬하게 화내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나. 오히려 그걸 폭발시키면 여진이 오래간다.”

언젠가부터 정 총리 같은 ‘여야를 아우르는 적이 없는 정치인’은 한국 정치에서 희귀한 존재가 됐다.

“소통을 잘하는 건 경청을 잘하는 것이다. 여든 야든, 상대방 말씀을 인내심 갖고 잘 경청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좋게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것들이 국회에서도 그렇고, 인간관계에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정 전 총리는 “나는 이제 실업자라서 명함이 없습니다”라고 웃으며 주먹 인사를 건넸다. ‘조직의 정세균’이라는 평판에서 알 수 있듯 흡인력은 정치인으로서 그의 최대 강점이다. 인터뷰 시점에서 여론조사 지지율이 5% 아래인데도 민주당 경선에서 그의 경쟁력을 경시할 수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문제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운 일반 국민은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어떤 ‘스토리’를 내놓느냐가 대권주자 정세균의 행로를 결정할 터다. ‘현 정부와 차별화하지 않고 계승하면서도 국민의 선택을 얻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을 그는 걷고 있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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