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왜 그에게 15억 줘야하나…日 ‘국민밉상’ 된 공주의 남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이 코로나병에 시달린다면, 일본 왕실은 ‘고무로병’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한 주간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바이러스와 동급으로 취급받는 이 인물, 수년간 일본 국민의 미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고무로 케이(小室圭·29)입니다. 현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 즉 일왕의 동생인 후미히토(文仁) 왕세제의 큰딸 마코(眞子·29) 공주의 약혼자죠.

[도쿄B화]

지난 2017년 약혼 사실을 발표하는 일본 마코 공주(오른쪽)와 고무로. 이때만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AP= 연합뉴스]

지난 2017년 약혼 사실을 발표하는 일본 마코 공주(오른쪽)와 고무로. 이때만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AP= 연합뉴스]

캠퍼스 커플인 두 사람은 2017년 연애 사실을 공개하며 약혼 발표를 합니다. 오랜만에 일본 왕실에서 나온 결혼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마코 공주는 본래 '호감형'이었습니다. 국제기독교대학(ICU)에 다닐 땐 학생식당에서 종종 목격되고,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로 해외 여행을 하기도 해 "소탈하다"는 평을 들었죠.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도 '마코 공주답다'고 했습니다. 고무로는 알려진 집안 출신도 아닌 데다가, 로펌에서 변호사가 아닌 사무원으로 일하는 청년이었거든요.

하지만 곧 고무로의 복잡한 가정사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핵심은 고무로 어머니의 '돈 문제'였습니다. 2002년 남편과 사별한 고무로의 어머니 가요(佳代)씨가 2010년부터 교제한 남성에게 수년에 걸쳐 400만엔(약 4000만원)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는 것이죠. 상대 남성이 이를 주간지에 폭로했고, 고무로 측은 "빌려준 게 아니라 증여로 생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고무로의 어머니가 왕실에서 돈을 빌리려 했다는 둥, 신흥 종교에 빠진 적이 있다는 둥 각종 의혹이 쏟아집니다.

결국 마코 공주는 "2020년까지 결혼을 미루겠다"고 발표했고, 고무로는 2018년 미국 뉴욕의 포담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3일, 고무로가 로스쿨을 졸업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대로 일본으로 귀국할 것으로 보이면서 "올해 안에 결혼이 성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 로스쿨에 재학 중 일시 귀국하는 고무로 케이. 영어가 유창하다고 한다. [아사히TV 캡처]

미국 로스쿨에 재학 중 일시 귀국하는 고무로 케이. 영어가 유창하다고 한다. [아사히TV 캡처]

고무로는 '일본판 메건 마클'?

그 사이 미움은 사그라들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네요. 지난 3월 주간 아사히가 이들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론조사를 했는데요. 응답자의 97.6%가 "싫다"고 반대 의사를 밝힌 겁니다. 사실상 '전국민 반대' 수준이죠.

그 사이 공주의 '막장 시월드'와 관련한 뉴스가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고무로의 어머니가 죽은 남편으로 인해 나오는 유족 연금을 받기 위해 새 남자친구의 존재를 주변에 숨겼고, 교제 남성의 생명보험 수급자를 자신으로 지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고무로가 학창 시절 동급생을 괴롭혔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지난달에는 고무로가 지금까지의 의혹에 해명한다며 무려 A4 28장, 4만자에 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태도가 너무 독선적"이란 평가에 욕만 더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400만엔을 갚지 않고 있단 사실도 드러났죠.

영국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세손빈이 아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일본에선 '고무로=마클' 설이 나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세손빈이 아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일본에선 '고무로=마클' 설이 나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쯤되니 고무로를 영국 왕실 해리 왕자의 아내인 메건 마클과 비교하는 기사도 나옵니다. 마클도 가족 돈 문제에 태도 논란 등으로 온갖 구설에 시달리다 결국 미국으로 떠났죠. 그러나 시련이 닥칠수록 사랑은 더 커지는 것일까요. 마코 공주는 지난해 말 "우리는 서로가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며 '결혼 강행'을 발표합니다. 아버지 후미히토 왕세제도 "많은 사람이 기뻐해주는 결혼은 아니지만, 부모로서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승낙 의사를 밝혔습니다.

'왕실전범' 개정에까지 영향

결혼은 헌법이 보장한 자유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게 무슨 소동이냐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이 '참견할 자격'을 주장하는 데도 일리는 있습니다. 왕실이라는 게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이고, 일본 헌법 제1조에 "일왕은 국민 총의에 기초한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적혀 있거든요.

국민통합에 기여해야 하는 왕실인데 어떤 인물때문에 국민이 왕실에 대한 애정을 거두게 되면, '상징으로서의 왕실'이 가진 의의는 훼손된다는 주장입니다. 더구나 일본에서는 꽤 오랜 기간 전쟁 범죄의 책임을 물어 '왕실을 폐지하라'는 주장이 거셌습니다. 그나마 아키히토(明仁) 상왕의 온화한 이미지에 힘입어 왕실이 70%가 넘는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데, 그 점수를 고무로가 깎아 먹고 있다는 겁니다.

올해 1월 공개된 일본 왕실 가족. 화목해 보이지만...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1월 공개된 일본 왕실 가족. 화목해 보이지만... [로이터=연합뉴스]

직접적인 돈 문제도 걸려있죠. 현재 일본 왕실은 '남계남자(男系男子)'로만 계승되고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왕족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대신 결혼할 때 전 왕족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한 지참금을 최대 1억 5000만엔(약 15억원)까지 받을 수 있는데요. 이 돈이 고무로 가족의 '빚잔치' 등에 쓰이는 걸 참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 문제는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왕실전범(典範)' 개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일본 왕실에선 수십년간 아들이 드물게 태어났고, 현재 왕실 후계자는 후미히토 왕세제와 후미히토의 아들이자 마코 공주의 동생인 히사히토(14) 왕자 딱 두 명인데요.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가 끊길 가능성이 있으니, 여성 일왕이나 여계(女系) 일왕을 인정하자는 논의입니다.

마코 공주가 왕실전범 개정 후 결혼을 하면 왕족의 신분을 잃지 않을 수 있고, 공주와 결혼한 고무로는 당당히 왕실의 일원이 되죠. "고무로가 왕족이 되는 건 차마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 왕실전범 개정 논의마저 두 사람의 결혼 이후로 미뤄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마코 공주의 의지가 확고한데다, 상대쪽에서 왕족과의 결혼을 거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시점에 진행해야 국민들의 반감이 그나마 덜 할지, 왕실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50부작 홈드라마'처럼 이어지고 있는 공주의 결혼 이야기 속에 일본 정치체제의 간단치 않은 고민이 숨어있습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