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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동탄'아파트, 고양엔 'DMC'···번지수 틀린 단지 이름 왜

중앙일보

입력

아파트.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아파트.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2002년 준공된 경기도 A아파트의 이름엔 '영통'이 들어간다. 이름만 보면 '수원시 영통구'에 있겠거니 하지만, 실제 주소는 바로 인접한 행정구역인 '화성시 반월동'이다. A아파트의 한 주민은 “수원 영통구에 있는 아파트로 알고 계약을 했었다. 계약서상 주소가 달라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행정구역과 다른 이름을 지은 이유는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이해하고 있었다. 더 번화한 지역의 이름이 ‘상대적으로 더 잘 사는 동네라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DMC가 왜 고양에… 

이처럼 아파트 이름 속 지명이 실제 주소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아파트들이 주로 브랜드를 내세웠다면 요즘은 인근 번화가나 역 이름 등을 내세우는 추세다.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와 가까운 경기도 일대에 DMC 이름이 붙은 아파트가 많은 게 대표적이다. IT·미디어 산업으로 주목받는 DMC를 내세우면 아파트 이미지도 달라지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고양시 덕양구 향동지구는 DMC가 들어간 아파트 단지만 6개다.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직선거리 2~3㎞인 점을 아파트 이름에 반영했다.

화성시엔 '남수원'이라고 붙은 아파트 단지가 2곳 있다. 이들 아파트 인근 상점과 빌라, 교회 등도 '남수원'을 많이 사용한다. 아파트와 수원시 행정구역까지는 3~5㎞나 떨어져 있지만,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이들 아파트 주변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주소지는 화성이지만, 생활권은 수원이기 때문에 아파트 이름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칭 변경하는 사례도 있어
건설사 등 사업자는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인지도를 우선시한 이름을 지으려 한다. 이때 브랜드 이름을 내세우거나 '역' 등 주변 기반시설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인지도 높은 인접 지역의 명칭으로 관심을 높이려는 것이다. 오산시에선 '남동탄', '서동탄'을 넣어 분양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대부분 수용한다. 화성시 관계자는 “사업자가 지은 아파트 명칭을 반려할 권한이 지자체엔 없다”고 말했다. 오산시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오산 외삼미동은 동탄신도시 바로 옆에 붙어있는 같은 생활권 도시인데도 아파트 가격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지자체 입장에선 다른 지역 지명이 반갑지는 않다. 일부 지자체는 주택사업승인 조건에 '다른 지자체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입주민들이 주도해 아파트 이름을 변경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집값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오산시, '정체성 함양 지명 사용 조례' 제정 

이에 오산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오산시 정체성 함양을 위한 지명 사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역 정체성을 찾고,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자원이 되는 지명을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오산시청 전경. 오산시

오산시청 전경. 오산시

이 조례를 근거로 최근 오산시 양산동 B아파트의 명칭 변경을 거부했다. 지하철 1호선 병점역(화성시) 인근에 있는 B아파트는 인근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다른 아파트가 있어 혼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 같은 평수로 건설된 병점역 주변 아파트보다 3.3㎡당 가격도 500만원~1000만원 정도 낮다.

그러나 오산시는 "B아파트는 오산시에 있고 화성시 병점역보다 오산시 세마역이 더 근거리에 있다. 또 병점역과 직선거리 1km(도보 15분 거리) 이상 떨어져 있어 병점역 역세권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아파트가 낸 건축물 표시 변경 신청을 거부했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도 최근 같은 이유를 들어 B아파트 입주민들의 요구를 기각했다.

정재호 목원대 교수(부동산금융보험융합과)는 "자산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유 지명을 해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주거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권 등 입지이지 명칭이 아니다"라며 "명칭에 연연하지 않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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