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겨냥 안된다"던 文정부, 두달새 무게추 美로 기운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1.05.24 18:32

업데이트 2021.05.24 18:48

미ㆍ중 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문재인 정부가 지난 21일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쪽으로 방향을 튼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불과 두 달 전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회의와 비교해도 변동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2 회의 공동성명에는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 문제는 아예 없었다. “역내 안보 환경에 대한 점증하는 도전을 배경으로…국제질서를 훼손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한ㆍ미는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합법적 교역을 방해받지 않으며, 국제법을 존중한다는 양국 공동의 의지를 강조했다”고 했는데, 앞뒤에 다른 문장이 없어 맥락상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정상 공동성명은 표현에선 비슷하지만 “남중국해에서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ㆍ상공비행의 자유”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중요성” 등으로 대상을 명확히 했다.

정부의 설명도 180도 달라졌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2+2 공동성명 발표 뒤 중국 관련 내용이 모두 빠진 데 대해 “한ㆍ미 간에 성명을 내는데 제3국을 겨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우리 의도가 그런데 그것을 미국이 수용했다”(3월 1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 차관은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 문제가 포함한 정상 공동성명이 나온 뒤에는 “우리의 90% 이상 수출입이 배, 항로를 통해 하는 것”이라며 “우리 근접 영내라고 하는 대만의 안정과 평화가 우리 국익에도 직결된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23일 KBS 일요진단)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과 공동성명을 내며 중국을 겨냥하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이 불과 두 달 만에 ‘대만 해협 문제를 한ㆍ미가 함께 거론하는 게 국익에 맞다’는 쪽으로 뒤집힌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렇다고 그사이 동북아 안보 환경에 지정학적 대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 미ㆍ중 간 무력 분쟁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해당 해역을 통과하는 한국 선박의 교역량이 갑자기 급증한 것도 아니다.
결국 두 달 사이 문재인 정부의 국익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입장 변경에 따른 파급 효과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느냐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북한 문제와 관련한 한ㆍ미 협력 필요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임기 내에 남북관계 개선 등을 이루기 위해 ‘중국에 대한 한국의 협력’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협력’을 맞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부 역시 명시적으로 시인하지는 않지만, 이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노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 확인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프로세스 진전 동력을 확보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대화의 기틀을 마련해 본격적 협상이 기대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대응책이 전향적으로 검토되기를 기대한다”며 코로나19 방역, 기후변화, 인도주의적 지원 등 3개 분야를 구체적으로 당장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사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무게추가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가능한대로 많은 국가와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모두 중요한 나라”라고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구체적으로 대만해협 관련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해서는 “양안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역내 정세의 안정이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일반적이고도 원칙적인 수준에서 포함한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은 북한 문제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 미국의 지원을, 미국은 중국 압박에서 한국의 참여를 주고받은 셈이다.

여기엔 다음 대선까지 불과 약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데서 오는 ‘임기 말 조급증’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ㆍ미 대화 재개, 남북 간 소통 등이 가장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임기 말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중국 견제 동참 요구를 일부 들어주고, 한국도 원하는 것을 넣는 전술적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고받기의 등가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북한 문제에서 한국이 얻은 것은 성 김 대북 특사 임명, 미국의 판문점 선언 및 싱가포르 합의 존중 약속, 바이든 대통령의 남북관계 협력 지지 확인 등인데, 한국이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하는 것은 훨씬 중대한 입장 변경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연임까지 8년을 내다보며 대중 압박 정책을 펼치고 있다.

외교가에선 ‘10개월 대 8년’에서 초래되는 위험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많다.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내에 남북관계 개선에 올인하는 것으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얻은 미국의 지지를 활용하겠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의 중국 관련 입장 변화에 따른 행동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상존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한ㆍ미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 문제가 포함된 데 대해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라면서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국가들은 대만 문제에서 언행을 신중해야 하며 불장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문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 중국과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도 한국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중국 외교부의 입장이 지난달 미ㆍ일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다섯 번이나 지칭해 비판했을 때보다 수위가 낮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지혜ㆍ강태화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